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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나 Aug 28. 2023

[뮤지컬 곤투모로우] 내일이 왔었다... 내일로 갔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2023년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본 작품은 갑신정변(근대 개혁운동)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피신한 김옥균의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창작된 작품이다. 2015년 창작산실 최우수 대본상을 수상하고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박스 시야 리딩 공연을 거쳐 2016년 초연되었다. 갑신정변(1884)부터 한일합병(1910)까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을 다루고 있으며, 김옥균과 그를 암살하려고 하는 고종, 고종의 명을 받아 위장하여 김옥균에게 접근한 한정훈의 이야기를 그렸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극인 만큼 본 작품은 혼란스러운 시대 속 혁명을 꿈꾸는 인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에 김옥균을 영웅적으로 그린다. 극은 27년이라는 긴 시간을 150분으로 압축하여 긴박하게 다루고 있으며, 어두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 급변하는 사건과 시공간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텍스트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오페라적 연출을 연상시킨다. 무대는 바둑을 좋아했던 김옥균에게 집중하여 전반적인 디자인을 바둑판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정치적이고 계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드러낸다. 당시 불안정한 왕권의 모습을 보여주듯 친일파 이완과 대신들은 고종의 위에 서 있다. 왕좌는 평지에 있고, 대신들의 자리는 왕좌 위에 배치함으로써 당시 역전된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보여준다. 더불어 망한 나라, 망해 가는 나라 조선을 표현하듯 궁궐의 모든 사람은 상복을 입고 있으며, 고종의 경우 왕임을 표현하기 위해 상복 위에 빨간색 부분에 왕을 상징하는 황룡이 수놓아져 있다. 


‘혁명’을 소재로 한 만큼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같이 굉장히 고취적이면서 웅장한 멜로디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본 작품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서정적이었으며, 부분적으로 음악이 비어 있어 웅장하다기보다는 굉장히 간결하다는 느낌을 준다. 관객은 무대 위 등장인물에게 감정적으로 쉽사리 동화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이는 극에서도 나오듯, 갑신정변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소수의 지식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개혁이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음악적으로 시사하는 듯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경우 관객은 굉장히 감정적으로 극 중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데 비해, 본 작품은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은 혁명이 당시 백성들과는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소수의 움직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조형균, 백형훈, 김준수, 김태한

당일 관람했던 캐스트는 조형균(김옥균), 백형훈(한정훈), 김준수(고종), 이완(김태한)이었는데, 조형균과 백형훈의 목소리가 비슷해서 음성적으로 김옥균과 한정훈이 서로 뜻을 공유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잘 드러났다. 여기에 김태한의 목소리가 낮으면서도 압도적이어서 친일파가 득세하던 당시의 모습과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거기에 소리꾼 김준수의 목소리는 미성이면서도 어리고 자신감 없는, 불안한 목소리를 주로 내어 당시 고종의 불안한 입지와 흥선대원군과 민비, 그리고 여러 대신들에 의해 억압받으며 어른으로서, 군주로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소위 ‘어른아이’ 같은 모습을 그려냈다. 특히, 고종의 마지막 넘버 ‘월광’에서는 소리꾼 김준수의 판소리 창법이 뮤지컬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고종이 가지고 있는 한과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거세된 의지가 잘 드러났다.

뮤지컬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이지나가 참여한 작품인 만큼 본 작품 또한 제의적인 미감을 극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정훈에 의해 살해당한 김옥균의 시신을 고종은 조각조각 내어 전국 8도로 보내고, 머리는 조선 밖으로 버리라는 명을 내린다. 이때, 김옥균의 몸이 여러 갈래의 천으로 표현되고, 이것들이 하나씩 뜯겨나가는 형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때, 제의적인 춤을 춤으로써 김옥균의 넋을 위로하면서도 시각과 청각적인 것이 맞물려 고종의 잔인한 복수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연출적인 면에서 그동안 무대에서 보지 못했던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엿보였다. 먼저, 보통 소수의 인물로 혁명을 준비하는 장면은 남자 배우들로만 구성되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개혁당 당원들이 갑신정변을 준비하는 장면에 정장을 입은 여성 배우를 배치한 점이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 한정훈이 김옥균을 암살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상태로 비디오를 되감듯이 과거로 돌아가는 연출을 해서 김옥균을 만나기 전 한정훈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배우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무대 위에서 이런 연출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더불어 장면이 바뀌면서 무대 구조가 움직일 때 대부분이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되면서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노래와 대사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반면, 한정훈이 고종의 무책임함으로 인하여 이완의 병사들과 대치하여 싸우는 전투 신에서는 조명과 적절한 슬로우모션을 사용하여 굉장히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전반적으로 극은 김옥균과 한정훈이 꿈꾸는 내일, 즉 조선이 자주국으로 서는 날이 올 듯하나, 오지 않음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에 음악 또한 극적으로 향하다가 고조점을 찍지 못하고 다시 추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비애와 한의 감정이 강하게 드러나며, 김옥균과 한정훈, 그리고 고종의 애달프고도 처절했던 움직임과 행동임이 반복되며 실패-성공의 구조가 아닌 반복되는 실패 구조를 보여준다. 대개의 극은 완전히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다가 성공으로 끝나거나 실패로 끝나는 희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그들이 꿈꾸던 나라는 왔는가.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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