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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나 May 23. 2023

[발레]동양미로 그린 한 폭의 아름답고도 애절한 이야기

발레 심청

<심청>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 발레이자, 시그니처 레퍼토리로 4년 만에 돌아왔다. 한국의 고전을 세계에 널리 알린 발레단의 대표적인 창작작품으로 1986년 국립극장 초연 이후 프랑스 파리, 러시아 모스크바, 미국 뉴욕과 워싱턴 등 세계 15개국 40여 개의 도시에서 찬사를 받으며 K-발레의 위상을 보여줬다. 초연 이후 37년간 안무, 연출, 무대, 의상 등 끊임없는 수정 보완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심청>에서는 연출과 안무는 그대로 하되 무대 전환의 테크닉을 개선하여 기존 3막 4장(인터미션 (2회) 구성에서 총 2막 120분으로 러닝 타임을 단축했다. 


객석에 입장하자, 무대 스크린에 크게 띠어진 ‘효’라는 하나의 단어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심청전은 고전소설이자 판소리계 소설로, 맹인인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띄우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효녀 심청의 이야기이다. 한국인에게 심청전이란 어렸을 때부터 동화나 구연동화로든 익숙한 이야기이다. 포스터에서 황후의 의례를 입고 있으면서 토슈즈를 신고 있는 다소 이질적인 심청의 모습처럼 본 극에서 <심청전>을 발레와 어떻게 합쳐졌을지, 그리고 심청전에서 어떤 부분들에 집중하여 발레로 그려낼지 궁금증과 기대감이 고조됐다. 


극이 진행되기에 앞서 서곡이 연주되고, 이때 관현악기와 북, 플루트의 멜로디를 중심으로 곡이 전개되며 사랑스럽지만, 그녀의 삶이 평온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막이 열리고, 심청의 탄생으로 극이 시작한다. 심청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어른이 된다.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심청이 오두막집에서 나오는 장면은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으며 시선이 집중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하프의 음색을 강조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 심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심 봉사에게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마을에 온 뱃사람들에게 자신을 판다. 이때 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가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 고민하는 심청의 애절한 마음이 안무로 표현된다. 특히, 그런 심청의 행동을 만류하는 심 봉사와 선장이 심청을 둘러싸며 춤을 추는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린다. 심 봉사와 심청은 헤어질 수 없다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선장은 그런 심청을 강압적으로 데려오듯, 심청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며 그녀를 이끌고 그녀를 들어 올린다.

그 후 바로 선상 장면이 전개된다. 폭풍우가 치기 전, 선장과 선원들은 기존 발레 작품에서 보기 드문 남성 군무를 선보인다. 표정, 각도, 박자가 완벽한 3박자를 이루어 강인한 남성미를 자랑한다. 특히, 타악기(북)를 중심으로 정박의 멜로디를 선보이며 격정적이면서도 위험한 바다의 모습을 표현한다. 그때 폭풍우가 불고, 모든 것을 삼킬 듯하게 파도가 일렁거린다. 이를 보여주듯, 군무는 휘몰아치고, 점프 장면이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이뤄지며 그랑점프(그랑줴떼와 줴떼 앙트루낭)를 선보인다.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심청의 모습을 보여주듯, 선원과 선장들은 춘향을 강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춘향은 그들의 손에 의해 움직이며 춤을 추며 턴을 돌고, 점프하는 듯한 동작을 이어 나간다. 타의에 의해 흔들리는 몸과 애절한 그녀의 표정이 맞물려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한다.  


특히, 노를 소도구로 이용하여 뱃머리까지 심청의 심리적 거리를 표현하였으며, 선원들이 노를 바닥에 찍음으로써 떨리고 무서운 심청의 심정을 대변하며 불안하고 비극으로 치닫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더불어 조명으로 천둥과 번개를 표현하고,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사나운 바다의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하여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한다. 이에 겨우 몸을 가누며 도착한 뱃머리에 도착한 심청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내려보는 장면이 전개된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심청이 인당수로 자신의 몸을 날린다. 심청이 가장 비극에 달한 순간, 제일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 순간이 개인적으로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요정 나라 같은 용궁의 모습이 등장한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머리 장신구를 단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마치 바다에 사는 각양각색의 생물을 연상하게 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경쾌하고 밝은 멜로디 속에서 진주, 인어, 물고기들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를 진전시키거나 등장인물의 성격을 발전시키지 않고 주로 막간에 단순 유희 목적으로 사용되는 짧은 발레)이 전개되고, 심청이 등장하며 그의 독무가 진행된다. 용왕의 독무는 힘 있고 경쾌하게 진행되며 이때 심벌즈가 강조되며 왕으로서의 강인함이 부각된다.  


음악이 점차 고조되며, 특히 플루트 소리가 강조되면서 심청과 용왕이 함께 파드되(주로 여성과 남성 무용수가 함께 추는 쌍무)를 시작한다. 그 후 심청을 환영하는 파티가 벌어지고, 군무 중에 물속에 사는 존재임을 표현하듯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렁이는 안무들이 중심이 되며, 춤과 노래가 더욱 경쾌하게 진행되고 리듬이 빨라진다. 용왕은 심청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려 옷과 왕관을 수여한다. 그 순간, 음악이 단조로 바뀌기 시작한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처음 보는 아름다운 세계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잠시, 혼자 남아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심청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 음씩 올라가며 음악이 고조되고, 용왕이 춤을 추는 심청을 서포트하며 심청과 하나 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심청은 애절하면서도 사무치는 느낌을 안무로 표현하여 이 과정에서 용왕은 심청을 다시 뭍으로 보내주게 된다. 심청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연꽃이 무대 위에 등장하고, 그가 연꽃 안에 들어가서 연꽃잎이 닫히며 위로 올라가며 1막이 끝난다.

경쾌한 음악으로 2막이 시작되고, 배경은 궁궐로 바뀐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해태 동상 등으로 꾸며진 궁의 모습이 매우 정교하며 평면적인 구조물이 마치 진짜 건축물처럼 보인다. 왕과 신하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연회가 진행되면서 연꽃을 들고 사람들이 등장한다. 왕이 커다란 연꽃을 만지는 순간 연꽃이 열리면서 심청이 신비롭게 등장한다. 심청을 환영하듯 궁녀들의 춤과 봉산탈춤이 연상되는 군무가 풍부한 화성 속에서 진행되며 왕은 심청을 왕비로 맞을 것을 알린다.

플루트의 선율이 강조되며 푸른 밤이 되고, 왕과 심청은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사랑의 문라이트 파드되를 춘다. 이 부분은 매년 국내외 발레 갈라 페스티벌에 초청될 만큼 드라마틱한 안무와 황홀한 선율의 조화가 눈부시다. 우아한 백 캄브레(camber backward, ‘활 묘양의 휜’이라는 뜻으로 허리를 뒤로 구부리는 동작)와 아라베스크(Arabesque, 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쪽 다리를 그 다리에 대하여 뒤로 직각으로 곧게 뻗친 기본자세), 연이은 동작의 조화는 사랑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아름다운 호흡으로 표현되어 낭만적인 밤을 선사한다. 다양한 리프트 동작들은 심청과 왕의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이후 심 봉사를 찾기 위한 봉사들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고,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음에 슬퍼하던 심청의 앞에 심 봉사가 나지막이 등장한다. 심 봉사와 재회한 심청은 눈물을 쏟아내고, 모두가 부녀의 상봉을 축하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전반적인 의상은 심청과 여성 무용수의 경우 실크같이 얇은 천을 사용하여 여리여리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춤 선을 아름답게 살렸다. 남성 무용수의 경우 다소 뻣뻣한 천을 사용하여 위엄있거나 강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토슈즈를 신고 발레를 하고 있지만, 한복을 입고 있는 만큼 몇 가지 동작은 한국의 전통 무용을 떠올리게 하여 이색적이면서 독특한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대표적인 발레 작품인 <지젤>, <백조의 호수>, <오네긴>과 달리, 한국 소재를 기반으로 한 만큼 언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으며, 극의 전개를 따라가기도 수월했다. 


발레 공연을 보면, 무대 배경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극들과는 달리, 수채화 같으면서도 동화같은 분위기로 꾸며진다. 발레 <심청>의 배경이 되는 과거의 한국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름답고도 애절한 한 편의 동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심청의 독무가 거의 없고 극 전반이 대개 군무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또한 본 작품이 1986년에 초연되었지만 계속해서 수정 ・ 보완되는 만큼, 자신의 인생의 결정을 스스로 한 심청의 주체적인 모습을 조금 더 강조하는 측면을 더하는 현대적인 각색을 더 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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