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귀는 행복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행복이나 안정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다.
꾸베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듯이 개인은 행복을 찾고 있다.
좋은 글귀를 읊거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했지만
오늘 하루를 만족하는 삶을 주지 않았다.
마음먹는 걸로는 행복한 하루를 얻을 수 없다.
대신 내가 찾은 방법은 비의식적 행위이다.
언어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으로 하루를 채우며 시작한다.
향을 맡는 행위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이 논리의 시작인 인간의 의식 혹은 무의식적 감각을 생각해야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열심히 하자라는 단어라든지)는 세상을 단순화시킨다.
단순화는 논리를 만들어 주지만,
행복하고 싶다 -> 기쁘자 -> 오늘도 파이팅
이 생각은 행복의 의지를 표상할 뿐
행복의 상태를 직접 주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행복의 자극이다. 좋은 소식을 접하거나
자연을 보거나, 빵 냄새를 맡는 것은
자극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목욕을 하거나 바람을 쐐는 것은
행복을 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신경세포의 어떤 자극을 활성화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 향을 맡는다.
꾸뻬 씨의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하려면 눈을 감고 건포도 맛을 천천히 음미해 보라고. 냄새는 리스크가 없다. 음식처럼 먹어서 배가 아프지 않고, 똥 냄새를 맡아도 자극을 활성화할 뿐 해를 입지 않는다.
나에게는 두 개의 라벤더 병이 있다.
하나는 8년이 넘어 상한 냄새가 난다.
나는 이것을 죽은 라벤더 향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1년이 안 돼서 짙은 라벤더 향을 풍긴다.
나는 두 개를 번갈아 맡는다.
죽음과 삶을 번갈아 체험하며
내 감각을 깨운다.
이렇게 활성화되는 무의식은
오늘 하루를 지배해 행복한 나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