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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rkim Feb 19. 2024

미국 환자에게 받은 인종차별

그리고 드는 생각들

내가 일하는 병원 환자들 중엔, 가끔씩 거두절미하고 의사랑 전화를 해야겠다는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날 오후도 내 외래 환자 중에 한 명이 이러한 메시지를 나에게 남겼고, 난 별생각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 환자는 이미 외래에서 몇 번 진료한 적이 있어 잘 알고 있는 환자였다. 그날, 전화상으로 그 환자는 나에게 어떠한 서류를 작성해 주길 원했지만, 나는 그에게 의학적인 소견으로 비추어 그러한 서류를 작성해 줄 수 없다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갑자기 돌변하면서, 나에게 격분을 토해내면서 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그는 항상 젠틀한 사람이었다.


뭐 여러 가지 말들이 두서없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정신없도록. 나도 사람이기에 그렇게 정신없이 나를 몰아세울 때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말을 시작하기 전 1초씩 의식적으로 참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의사로서의 대화법을 이어나갔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런데, 그 사람의 이 대화의 끝 즈음에 남긴 말이 강렬했는데.


"넌 영어에 액센트가 있어"

"미국인을 싫어하냐?"


이 말을 들은 순간, 이제 더 이상 이 대화는 의미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리고 거기서 대화를 최대한 짧게 그래도 예의를 갖춰서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웃긴 것이, 그 환자는 계속 나에게 포고했다.


"넌 해고됐어. 더 이상 내의사가 아니야"


지금 생각해 봐도, 누가 누구를 해고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숨을 쉬고, 난 알았다고 내 "해고"를 인정했고, 난 다른 의사를 찾는 것도 알아봐 주겠다는 비굴한(?) 톤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아마 이 대화에서 그가 이겼다고 생각할 테다. 그리고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차피 그 사람 인생에서 해고를 당했으니.


********************************


사실 그날 당일 전화 이후 막상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말의 내용 자체가 상식적인 선을 벗어 나는 무례함으로 가득한 일방적인 인신공격이 많았기에, 과연 그 내용들을 하나씩 곱씹어 가면서, 내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나, 뭐 그렇게 고민해 보고 분석해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더군다나, 나는 어차피 항상, 미국과 한국 그 사이에 어딘가에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면서 내 지난 20여 년을 살아왔기에, 그 누군가가 나보고 진짜 미국인이 아니라고 한다 해도, 그게 나의 정체성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 난 어차피 미국인도 아닌데, 뭘"이라는 정말 유요한 방어기제가 내 안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차별적인 코멘트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 내가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라는 그들의 잘못된 선입견인 것 같다.


내가 외국인으로서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삶의 터전을 내리고 살기에, 나는 미국인이기를 갈망하고 미국생활을 동경하며 살 것이라는 잘못된 assumption. 지난 20년간 유학생활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까지, 내가 자의로서 선택한 부분도 있지만, 타이밍과 환경에 의해서 내 인생의 진로와 방향이 형성된 부분도 많았고, 그 와중에서 나는 항상 미국과 한국 그 사이 어딘가에 내 마음을 두고 살았던 것 같다. 결국 한국에도, 미국에도, 그 어느 한 곳에서 100%의 마음을 두지 못했던 내 모습이 정말 온연한 나의 정체성인데. 아마 겉으로는 나도 그 여느 이민자들처럼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미국인으로 동화되려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미국인 또는 미국이민자로서의 삶을 목표로 갈망하고 살아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내 주위의 대다수의 한국인 또는 외국에서 온 지인들은 대부분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미국에서 정착하여 잘 생활해나가고 있다. 오히려 그렇게 확고한 목표와 정체성의 지향점이 있는 것이 부럽기도 한 적도 많았다. 나는 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어렵게 생각하고만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말이다.


근데 난 아직도 내 깊은 마음속을 잘 모르겠나 보다. 미국에서 그렇게 긴 노력 끝에 의사가 된 후, 그리고 여기에서 내 가족과 함께 일상을 꾸려 나아가면서도, 겉으로는 꽤 미국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아직도 근본적으로, 내 마음은 그래도 미국과 한국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마치 정말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할 거라는 듯한 선입견으로 나에게 외국인임을 각성시켜 주는 저러한 차별을 받았을 때, 난 다시금 되뇐다.


난 정말 얼마만큼 미국화되었고, 얼마만큼 미국인이고 싶었던 것일까?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에 대한 답이 아직도 어려운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지난 20여 년간 많은 시간과 고민들을 이 미국 땅 안에서 해왔고 살아왔지만, 난 아직도 내 정신적 고향을 한국으로 여기고 있고, 나에게 있어 어린 시절 추억이라 하면, 한국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내 아이들과는 집에선 한국말로 대화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레 한국 가요를 듣고, 꽤 자주 한국 뉴스와 영상을 접하면서, 그렇게 겉으론 미국이민자, 안으론 한국인처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쯤 난 정말 마음 편히 온연한 미국인으로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님 그게 가능하긴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미국 땅에서 저런 말들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그러한 아이들이 저런 말들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상처가 될까.

상상만 해보아도 마음이 아프다.


보스턴에 살면서 스키 타는 재미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2024년 1월 1일 뉴햄프셔에서 찍은 푸르른 하늘과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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