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직업병
보통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슨 과 전공인지를 묻게 마련이다. 그럼 나는 심장내과 (cardiology) 전공이라고 답한다. 물론 그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그 안에서 더 세분화된 전공을 묻는 사람들도 있다. 심장내과 자체도 분야가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세부분과 전공을 묻는 것이다 (보통 이 분야에 대해 뭘 좀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그럼 나는 심부전 (heart failure) 전공이라고 답한다. 주로 심부전을 가진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해 심장이식이나 VAD (ventricular assist device)라고 하는 인공심장펌프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도 보고 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나는 수술을 하는 의사는 아니다. TV에 나오는 흉부외과나 심장외과의사들처럼 수술적인 치료로 사람을 극적으로 살려내지는 않는다. 심장이식이나 심장수술이 필요한 경우 흉부외과의사들과 협력해서 환자를 치료하지만 (특히 심장이식이나 VAD가 필요한 경우에), 내가 직접 수술하지는 않는다. 그 외의 대부분의 경우, 각종 진단검사와 약물치료, 그리고 수술이 아닌 minimally invasive 한 시술들을 함으로써 심장질환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그런 일들을 주로 하는 셈인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내 의사생활의 모습이 조금 slow 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큰 심장수술을 하는 의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나에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있다.
그것도 꽤 자주 말이다.
특히, 수련의가 아닌 어텐딩으로서의 의사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이러한 일들이 꽤 빈번해졌다.
아마 심장이라는 인체 기관이 워낙에 사람 생명에 있어서 vital 한 기관이어서 그런 것일까. 몇몇 심장질환들은 비록 수술적 치료를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진단과 치료법에 있어서, 시간의 촌각을 다투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서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온다거나, 아님 심부전의 극단적인 상태인 심인성 쇼크 (cardiogenic shock)등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심장내과의사인 내가 진단하고 추진해 나가는 치료방향에 의해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기도 하고, 아님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항상 내가 의사로서 내리는 진단과 치료 결정에 있어서 생명을 다루는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그 후에는 내가 내린 결정들을 곱씹어보는 일이 잦다.
"내가 오늘 내린 진단이 정말 올바른 진단이었을까? 혹시 더 위험한 병이었는데 내가 간과한 것은 아닐까?"
"내가 아까 내린 처방이 올바른 처방이었을까? 좀 더 aggressive 하게 시술이나 외과의와의 협진을 통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이러한 생각들을 되뇌고 있는 나 스스로의 모습을 정말 자주 발견한다. 깨어있는 순간뿐만이 아니다. 잠을 청할 때나, 아님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도, 오늘 낮,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고민은 멈추질 않는다.
"과연 나는 정말 옳은 진단과, 최선의 치료법을 택했던 것일까? 다른 의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때로는 어둠 속에서, 핸드폰으로 환자 차트를 몰래 한번 더 확인해 보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환자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정말 그 여파가 너무나도 심하다. 겉으로는 항상 침착해 보이지만 (침착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직업병이다), 머릿속은 그 결과가 좋지 않은 환자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자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진단이 올바르지 않았을까? 아님 치료 접근법이 올바르지 않았나? 사실 정말 위중한 심장내과 환자들 경우엔 그 위중도가 너무 심한 나머지 그 어떤 치료법으로도 생사여부가 불투명한 경우가 꽤 많기도 하지만, 담당의사로서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할 때 자책감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치 내가 그 환자의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는 착각에 함께 빠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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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턴 때 선배 내과의사들한테 꽤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우리가 뭘 해도 어차피 살 환자는 살게 되어 있고,
우리가 뭘 해도 어차피 결과가 좋지 않을 아픈 환자들은 결과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질병과 우리와의 싸움 앞에서 우리 의사들은 약한 존재일 뿐이라고.
환자의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는데 낯설었던 인턴에게 다독이는 말이었겠지만,
말이 쉽지,
내가 케어하던 환자의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난 아직도 어렵고, 그런 환자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할 때마다 사실 가슴이 쓰리다.
얼마 전 현재 친한 동료의사와 이런 얘기를 나누었었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
결국엔 우리 모두 이렇게 의사로서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그러면서 나를 다독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