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인터뷰를 겪으면서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Where do you see yourself in 10 years?"
"What is your goal after this?"
예를 들어서 의대 입학 인터뷰에선, 의대 입학도 하지 않은 나에게 어떤 전공으로 레지던시를 하고 싶은지 묻고. 레지던지 인터뷰할 때면, 내가 어떤 펠로쉽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펠로쉽 인터뷰를 할 때면, 내가 미래에서 어떤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 인터뷰할 때는 내가 원하는 커리어의 방향이 무엇인지 정말 자세히 물었다. 삶의 매 스테이지마다, 사람들은 내 꿈과 계획이 무엇인지 정말 구체적으로 물었다. 생각해 보면, 그 순간순간이 아닌 아직 미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구체적인 진로의 꿈을 장황하게 나열하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더욱이 그 꿈은 시간이 지나며 변할 가능성이 정말 많음에도), 미국 사회에선 지금 현재의 시기보다 한 단계 뒤, 아니면 두 단계 뒤의 모습까지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에게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하고 기회를 주는 분위기인 듯 했다. 안타깝게도 난 성격상 내 앞에 뻔히 보이는 길도 확인해 보고 조심조심 건너는 성격이었기에, 감히 5년 또는 10년 뒤의 포부와 꿈에 대한 계획을 누군가 앞에서 그렇게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은 항상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주위를 돌아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기 진로의 노선이 명확하고 계획이 확연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적어도 이 미국 사회에서는 꽤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사람들이 조금은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나도 내가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을 5년 전,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그래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그때부터 정진하고 준비했더라면, 지금 현재의 나는 조금 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욕심의 마음일까. 이른바, 목표와 종착지가 명확하다면, 20-30대 진로를 찾아 나아가는 여정에 있어서 오차도 줄이고, 낭비 없는 시간과 에너지의 투자로 조금 더 진로의 길이 닦여나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말은 원래 쉽다는데,
아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말들이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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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가, 언제나처럼 몇 안 되는 우리 대학교 동기들을 만났다.
작은 liberal arts college라는 학부 중심의 대학교를 다녔었기에, 한국 유학생의 숫자는 굉장히 적었고, 그러다 보니, 나와 그들이 서로 부대끼며 보낸 미국 대학생활은 정말 젊은 날의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20년 전 대학을 다닐 당시 우린 모두 매한가지, 뭐 이뤄놓은 것 하나 없는 유학생들이었지만, 나름 항상 꿈에 대해서 밤늦게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거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거나, 아님 뭐 어디에서 어떤 직장에서 일해보고 싶다던가. 비록 실현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었고 불확실성만 가득했지만, 우리는 나름 진중했고, 비록 갈 길이 먼 듯했지만, 그 꿈들을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해 보자고 파이팅 하던 추억들이 많다.
이제는 20년이란 시간이 지나, 30대에서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우리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그들과 지난 얘기를 하다 보며 놀란 것은, 그동안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들은 비록 정말 그때 우리가 말하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노력 끝에 개개인 각자가 꿈꾸던 모습과 비슷한 방향으로는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때 우리가 밤마다 말하고 꿈꾸었던 것처럼.
거꾸로 생각해 보면, 새삼 내가 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의 힘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과 바램들을 언어로 정리하여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아님 글로 옮겨 적었을 때), 그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꿈들과 포부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힘과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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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을.
최근에 이제는 더 이상 지원자가 아닌 패컬티 인터뷰어로서 우리 병원 펠로쉽 지원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몇 번 주어졌었다. 사실 이 펠로쉽 지원자들은 주로 PGY-6 또는 PGY-7이나 되는 수련의로서 경력이 꽤 오래된 된 연차들이었기에, 대부분 지원자들의 인터뷰 내용은 꽤 매끄러웠고, 성숙했다. 그러다 보니 별로 분별력이 없어지진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인터뷰가 계속 이어질수록 다시 한번 느꼈다. 결국엔 표준적인 답변과 실적들을 가진 지원자들 사이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지원자들은, 주로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과 꿈을 가지고 진로에 대한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란 것을 말이다. 구체적인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지원자들의 답변 속에서 그들의 의지와 일관성 같은 것이 와닿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동안 그들이 쌓아온 인생의 행적들과 실적들로써 그 꿈의 합리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는 있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진로와 비전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확연히 차이가 났었다.
그러게 말이다.
결국엔 꿈을 가진 사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나도 다시 한번 되뇌었다. 나에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그래서 그 걸어가는 길, 말하는 대로 노력하고, 말하는 대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