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 사춘기를 마칠 때 즈음 외국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나는,
항상 성공과 행복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성공해야 한다고,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땐, 영어가 편하지 않았고, 비록 오랜 시간을 통해 그 장벽을 넘었다 할지라도, 나에게 무엇보다 편한 것은 한국어 그리고 한국문화였다. 그럼에도 항상 내 몸은 언제나 미국사회 그 안에 담겨 있었고, 외국인으로서 나는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이 필요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도, 어찌 보면 그 성공에 대한 집착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미국에서 의사가 된다면, 무언가 안전한 성공의 신분이 보장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난 항상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는 것에 대해 인색했던 것 같다. 무엇을 노력해서 얻어내어도, 과연 내가 그 결과물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불안해했고 (혹자는 이것을 imposter syndrome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그래서 그 성취결과를 좀 더 확실한 내 것으로 단단히 만들기 위해서, 그다음 단계를 일찌감치 준비하기 시작하는 버릇도 생겼던 것 같다. 마치 내가 미국 의대를 합격했을 때, 무한히 기뻤지만, 과연 내가 정말 미국의대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도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의구심도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자세는 항상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다음 단계를 꿈꾸고 준비하도록 만들었다. 나름 원하던 미국 대학에 합격했지만, 곧 미국 의대라는 꿈을 설정해 버리고, 그 꿈을 좇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미국의대를 진학한 뒤에는 항상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도 많이 했다. 레지던트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내가 원하는 세부분과의 펠로우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고, 심장내과 펠로우가 된 이후엔, 과연 어떤 의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옳은" 길인지에 대해서도 항상 고민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도 내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얼마 전 난 이제 만으로 4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어텐딩으로서의 진로를 시작했지만, 과연 나는 여기에서 어떠한 진로를 일구어 나가야 할지, 연구를 더 하는 교수가 되어야 할지, 아님 임상으로 집중하는 의사가 되어야 할지.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아야 할지. 지금 있는 직장에서 내가 원하는 의사로서의 꿈과 자아를 다 실현할 수는 있을 건인지, 항상 고민하는 내 모습의 연속이다.
그래서 사실은 어렵다. 내가 현재에 너무 안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날의 내가 보면 지금의 난 예전의 내가 원하던 것들을 많이 일구었다고도 할 법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지금 나의 모습이 혹여 휙 날아가진 않을까, 그래서 좀 더 내 입지를 탄탄히 하고자 그다음 단계를 고민하다가, 결국엔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이러한 내 고민은 반복될까.
사실, 답은 알고 있는데 그저 어려운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현재의 일상 그리고 지금의 내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미래의 성공이 현재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그래도 인생을 꽤 살아봤으니 이를 알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이게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