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고등학생으로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난 정말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언어도 다를뿐더러, 교육 시스템, 그리고 문화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새로운 부분 하나하나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 나이어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는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고, 친한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미국생활과 문화에 대한 부분은 조금씩 눈치껏 적응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아마, 겉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듯 보였을 테다.
그럼에도, 인생의 진로나 대학진학, 그리고 학업의 방향 등, 무언가 굵직한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난 여전히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의지하던 어른들(예를 들어 부모님)의 경험과 조언은 이제 내가 처한 상황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혼자서 막막한 고민을 했던 적이 많았다.
고등학생으로 시작한 유학생으로서 현실적으로 어떠한 꿈과 진로가 가능한 것인지.
내 상황에서 아이비리그 같이 좋은 대학은 갈 수 있는 것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꼭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야 하는 것인지.
혹시 의사가 될 수는 있는 것인지.
대학을 졸업하면 어떠한 기회들이 있는지.
전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 전공이 중요하기는 한 것인지.
어떠한 종류의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군대는 대학 중간에 다녀올 수 있는지.
이러한 막막한 고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져 나갔다. 다행히도 내가 있던 미국 고등학교에는 나를 면담해 주는 담임선생님 (어드바이저라고 불렸다)과 대학입시카운슬러가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가지고 오는 질문들마다 상세히 신경을 써서 답변을 해주곤 했다.
그런데도 난 그들의 답변에서 항상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항상 내가 가지고 온 질문을 경청하고 같이 상담해 주고, 내가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 설명을 차근차근 해주었지만, 절대 나에게 어떠한 선택이 정답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이비리그 대학교를 지원해야 할지, 아님 다른 학교에 얼리디시전으로 (한국식으론 수시 같은 개념?) 지원을 해야 할지. 얼마나 많은 학교에 지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입시에 성공하기 위해선,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뭔가 전략적인 조언들은 항상 부재했다.
한국식 교육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러한 모호한 조언, 즉 어드바이징의 개념은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목표 A를 위해선 B와 C를 이렇게 해야 돼"라는 정답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결정해야 할 진로의 방향. 그리고 그를 위해 해야 할 방법에 대한 아무리 많은 질문을 던져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의 조언들일뿐. 어떠한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정말 말 그대로의 advising은 결국 모든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나 스스로 찾게 만들었던 것 같다.
왜 미국 선생님들은 그냥 내 상황에 있어서 현실적이고 올바른 정답의 길을 쉽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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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대는 갈 수 있을지?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하는지?
어떠한 전공을 해야 하는 것인지? 언제 무슨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무슨 리서치를 해야 하는 것인지?
언제 미국의대 입시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많은 수의 미국의대를 지원해야 하는 것인지?
미국 의대에 합격을 하지 못한다면, 차선책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등학생때와 마찬가지로, 정말 나를 위해 성심성의껏 상담하고 도와주시던 교수님들이 정말 많았지만, 결국에 항상 결정은 내 몫이었다. 나의 인생이었고, 그들의 "advising"을 바탕으로 한 내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하면, 그들이 도와주는 식이었다.
결정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많았던 나머지. 때때론, 그들이 좀 더 현실적으로 보편적인 정답의 길을 나에게 제시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스스로 되뇌곤 했다. 그러면 내 고민들이 조금은 더 쉬워졌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래서 난 불평하곤 했다.
"미국 선생님들은 정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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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지난 몇 주간.
나는 이직이 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계획하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우연치 않게 이직의 기회가 나를 찾아왔고, 그 기회를 검토하고 꽤 오래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이 나에게 있어 어텐딩으로서는 첫 직장이기에, 이직이란 문제는 신중히 해야 하는 부분이었던 만큼, 나는 주변 몇몇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분들에게 이 문제를 상담하게 되었다.
역시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 어떠한 분도 어떠한 길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확고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오히려 내가 조금 달랐다. 오히려 그들이 나에게 어떤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자체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이 이러한 결정을 나 대신 내려준다는 것은 오히려 어불성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이젠 나이를 좀 더 먹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물론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때에 비해서는 좀 더 어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인생의 큰 결정을 할 때에 있어서는 참 복잡하고 어려운데 말이다. 그 누군가가 옆에서 어느 한쪽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nudge를 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내 고민과 결정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도 같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나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러한 결정들은 내 인생에서 나 스스로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들이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결과 또한 오롯이 내 몫이란 것도 말이다. 물론 그 결정들에 대한 결과들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할 테고. 이젠 혼자가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도 생겼지만, 그렇게 조금 더 커진 책임감조차도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결국엔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다.
삶의 결정에 있어서 그 리스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서, 조마조마하고, 누군가 결정을 대신 내려주길 바라던 갓 유학생의 시절보단,
지금은 오히려 내가 내린 결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마음이 편해진 것 같은데..
또 어찌 보면, 앞날을 위해 전전긍긍하던 나의 간절함이 줄어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