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로 밸런타인 30년 산

by 김남형

20여 년 전 어느 맑은 가을날,

인천국제항만 00실 실장으로 근무 시, 친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오전에 저와 친한 손님이 실장님 사무실을 방문할 예정인데, 잘 부탁드려요."


점심시간이 될 무렵, 60대의 멋진 양복을 입은 노신사가 선물백을 들고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남동공단에서 30년째 사업을 하는데, 오늘 중국에서 조선족 3명이 우리 공장에 일하러 오는데, 입국할 때 시간이 많이 걸려 가장 먼저 입국심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얘기였고, 어려운 일도 아니고 지인의 부탁도 있고 해서 해주기로 했다.


출입국관리실장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말했더니 그렇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방문한 사장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사장은 "실장님 드리려고 밸런타인 30년 산을 가져왔고, 시중에서는 백만 원이 넘는데 면세는 30만 원에 정도 한다."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밸런타인 30년 산을 직접 봐서 호기심도 생겨 상자를 벗겨보니 안에도 또 투명한 플라스틱이 한번 더 술을 휘감긴 것을 보고 비싼 술은 다르긴 다른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정신을 바짝 들었다

공직자가 되면서 하나의 신조가 '절대로 단 1원도 뇌물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전 공직자 신조가 있어 뇌물은 받지 않는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서 "여기 지하 1층 식당에 김치찌개를 잘하는 사 주겠다"며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면서 사무실을 나설 때였다,


그런데, 사장은 사무실 입구에 살짝 선물백을 살며시 놓았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가져가셔라"라고 말하자, 사장 또한 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백을 다시 집어 들었다.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는 중에 사장은 "30년간 사업을 하면서 밸런타인 30년 산 면세를 수백여 개 선물했는데 오늘처럼 선물을 안 받으신 분은 처음이다. 대부분 처음에는 거절해도 슬며시 문 옆에 선물을 놓으면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간다"면서 아부 섞인 말을 어어나갔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 출입국관리소장이 전화로 다급하게 "아까 얘기했던 세분 만이 면접과정에서 불법입국 정황이 많아 강제 추방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바로 "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적법절차의 의거 법대로 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 말없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저하고 장난하세요. 아까 얘기한 세명만 입국하는데 문제가 너무 많아 강제추방해야 한다고 하네요"


사장은 썩은 고구마 같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럴 일이 없는데 " 하면서 목소리에 힘이 축 늘어지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난 표정과 함께 단호하게 말했다
"사장님! 이런 불법적인 부탁을 하려면 오지 마세요. 죄송하지만 그냥 가주세요"


사장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밸런타인 30년 산 술을 들고 물에 빠진 생쥐의 초라한 모습으로 걸어 나갔다.


'만약 밸런타인 30년 산을 사무실에서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악몽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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