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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기교육연구소 Jun 07. 2023

누구의 영광인가

1.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해볼까 한다. ‘이야기’에는 당대 사회의 욕망이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물론 이를 한 개인의 욕망이나 무의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야기’가 대중적 호응을 받는다면 이를 단순히 개인의 욕망과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개인의 통찰력이 대중의 욕망과 무의식을 발견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이 될 것 같다.      

두 번째 , ‘이야기’에는 의제 설정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이 의제 설정은 매우 순간적으로 이뤄지면서 동시에 그 지속력이 약하다. 이야기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으며, 상상력은 간혹 대중의 상상력이 되기 때문에 대중은 사회의 모순이나 문제점에 공감하기가 쉽다. 이야기의 힘은 이런 상상력과 공감시키기 능력에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당대 대중의 외면을 받지만 정확하게 대중의 욕망과 무의식을 짚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이야기는 당대 대중들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문제와 닿아있거나, 혹은 복잡한 이야기 규칙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놓고 드라마의 ‘이야기’에 대해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굴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일종의 발굴에 관한 글이며, 발굴은 대체로 고고학적 성격과 지질학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실험과 검증, 그리고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하다. 이 글이 발굴하고자 하는 지점들은 특별히 ‘이야기’라는 지층 속에 숨겨진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다.      


2.      

출처 :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더 글로리’는 의제 설정 능력에서 탁월한 힘을 보여줬다. 학교 폭력의 세계를 주요 테마로 하되 이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불러오기 위해 계급문제까지 극단적 형태로 다루고 있다. 영상화된 이야기의 힘은 상상력을 더 강하게 자극하는 효과를 보여주는데, 이 드라마의 경우, 동은(송혜교)의 비극적인 상황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강렬한 것이었다. 가끔 뉴스에서 만나던 설정들인데,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와 극단적인 주거 환경 등은 시청자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적당했다. 이로 인해 동은의 비극성은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클리셰’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환경의 인물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차별적인 구조는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동정심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기능을 했다. 동은은 현실의 냉정한 반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인물 유형의 창조라기보다는 기존의 익숙한 인물 설정을 ‘이야기’의 환경 안에 집어 넣고 이 인물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라는 일종의 실험적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결국 동은은 장르적 성격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맞고, 버려지고, 결국 살아남고,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다.      


3.      

동은의 적대자들은 동은의 가치를 모두 무시하거나, 동은의 존재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근대사회에서 시민들이 절대적 기본 조건으로 합의한 기본 인권을 빼앗아 그를 끊임없이 가축화하고 인간존재라기보다는 동물적 학대를 통해 그 인간성을 말살한다. 그렇다면  한 인간이 스스로의 인간성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교는 십대 학생들이 경험하는 사회다. 드라마는 이 부분을 그렇게 집요하게 파고 들지 않는다. 동은의 캐릭터에 비하면 학교는 매우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이다. 특히 그의 적대자들 중 하나로 묘사된 담임의 행동은 동은을 둘러싼 또다른 폭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요즘 선생님들이 저런 행동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등을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 올려보고자 한다. 이 무심한 폭력 앞에는 우리 사회의 무의식과 욕망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훗날 동은은 자신의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한다. 이 선택과 동은의 경험은 동어반복이면서 미세한 변주를 보인다. 이 초기의 폭력적 경험은 절대자인 교사의 타락과 자신이 절대자로서 교사의 위치에서 새로운 권력을 획득하면서 동어반복적이면서도 변주다. 그리고 이 안에서 우리는 대중의 욕망에 근저한 교사와 교육에 대한 욕망과 배제를 함께 마주한다.   

   

4.      

동은의 교사 세계를 먼저 살펴보자. 

동은은 복수를 위해 교사를 선택한다. 동은이 교사를 선택한 것은 연진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이며 연진의 담임교사가 되어 연진의 딸을 볼모로 복수를 도모하기 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사에 대한 일반적 인식 속에서 여전히 교사는 권력의 정점이며, 그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임을 드라마 속 교사들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꼽아보자. 이 드라마 안에서 약자나 학생을 도와주는 교사는 어디에 있는가. 동은마저도 학생들에게 말하는 것이라고는 이 교실에서는 계급 따위 없다는 이야기뿐이다.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우리 학교의 교실이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무의식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책임과 학교의 책임을 나누지 않는 대중의 무심함에 대한 폭로이기도 하다. 또 한편 교사는 강력한 교실 내 권력을 통해 사회적 권력의 비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교실 권력의 정점이기도 하다. 동은의 담임과 동은의 동료 교사들은 교실 내 부조리를 외면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인식이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출처 : 드라마 더 글로리 스틸컷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교육 체제 이후 학교는 권력기관의 국가 이데올로기 재생산 기구라기보다는 각 개인의 자유주의적인 선택의 결과에 대해 학습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학습의 공간보다는 안전한 사회 생활을 위한 학습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요청받고 있다. 과도기적인 상황 속에서 교사의 역할은 분명 과거와는 달라졌으며, 사회적 요청 또한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역할에 대한 대중 매체의 요구는 여전히 근시안적이며 전근대적인 방향에서 살펴보고 있다. 

드라마는 계급 대결의 구도를 보이는 학교 교실과 이를 조정하지 않고 부르주아적 입장을 대변하는 교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술했듯, 현대 교사들은 복잡한 관계의 조정자로서 ‘교육적 해결’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부여받고 있다.      


5.     

동은이 교사를 선택하는 동기와 과정은 사실 이 드라마의 사실성에 심각한 질문을 던질만한 지점이다. 이는 교사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과도적 의미 부여 때문이기도 하며, 일반 대중이 느끼고 있는 공포감에 기인한 설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교실 권력의 최정점으로써 교사가 지닌 위치와 언제든 그 권력을 가지고 학부모와 학생을 누를 수 있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회적 공포심에 이 설정을 기대고 있다.

드라마는 대중의 숨은 공포심을 바탕으로 동은의 선택을 역이용한다. 자기보다 돈과 힘이 많은 계급적 상위자의 자식을 인질 삼아 계급적 거리감을 최대한 좁혀서 관계의 역전을 끌어 낸다. 이 과정은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 축으로 사회적 약자인 동은에게 일정한 권력을 쥐어주는 이야기의 중요한 얼개이다.      

고등학교 시절 동은의 담임은 권력을 이용하여 피해자인 동은을 매도한다. (출처 : 드라마 더 글로리)


6.      

학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관계들은 사회적 관점으로만 놓고 본다면 어느 면에서는 폭력적이며 강제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성숙한 학습자를 교육하기 위해서 강제력이 없이는 어려우며,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의 교육은 제도화하기 쉽지 않다. 학교는 자율적인 기구라기 보다는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의 틀을 따라 원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배우는 소중한 공간이다. 코로나 19를 통해 학교의 역할은 좀 더 명료해진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의 배움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그것이다. 

드라마에서 다루는 폭력은 매우 극단적이며 이 극단적인 설정은 드라마적 요소를 통해 흥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뉴스에 등장할 법한 폭력이 아니라,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적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미세 폭력이다. 그리고 이 미세 폭력은 사실은 교육적 갈등이라고 불러야 정당하며, 이 교육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실 내 교사를 갈등 조정자로 인식하고, 이에 합당한 대우와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다. 

법과 제도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려는 노력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완전한 사회적 관계를 아직 배우지 못한 미성숙한 학습자를 가르치는 곳이다. 이 미성숙을 성숙으로 전환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제도의 도입이 적절한지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 드라마는 이런 논의를 위해서는 별 효용성이 없는 드라마다. 

드라마를 통해 학교 폭력에 대한 의제가 다시 떠올랐지만, 그것은 범죄 수준의 학교 폭럭에 대한 일방적인 사회적 반응일 뿐이며, 교사는 갈등의 조정자보다는 제도의 수행자로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의 늪에 빠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교사를 인식하는 태도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 어떤 존재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현재 당면한 교육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에 대한 인식을 민주적인 학급의 문화를 끌어가는 갈등의 조정자로 위치짓는 운동적 차원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글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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