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엄마와 아버지를 연이어 잃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금방이라도 받을 것 같았고, 시댁을 지나쳐 가려면 엄마 아버지가 살던 집을 지나게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기웃기웃거리며 찾게 된다. 엄마 아버지와 함께 살던 그 집을, 이제는 누군가의 집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길 위로 구부정해진 허리로 뒷짐 지고 걷던 엄마, 무성하던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 가지 마냥 말라 지팡이로 걷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절실히 실감했을 때는 장례식장이 아닌 부모님의 흔적을 지워야 했을 때다. 엄마가 그토록 소원하던 집을 처음 장만했을 때 들여놨던 자개장, 안방에 장롱이며 화장대 장식장을 세트로 들이며 기뻐 그날 엄마랑 나는 잠을 설쳤었다. 엄마 옆에 새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들떠 말했다.
“엄마, 이 집이 진짜 우리 집이야!”
“나도 꿈같다!”
만감이 교차한 듯 목메어 떨리던 엄마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오랜 시간 안방에 걸려있던 엄마의 사진이 내려졌다. 애지중지해 보석함에 간직했던 모조 진주목걸이도 이제 주인을 잃어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렸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버지 늘 밥 잘 챙겨 드시라고 장만해 놓은 밥그릇 수저 세트가 박스 그대로 장롱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주인 잃은 선풍기도 얼마 전에 장만한 새 밥통도 늘 나란히 앉아 식사하던 식탁과 의자들도 여기저기 나뒹굴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어릴 적 내가 엄마를 기억하기 시작하는 나이 딱 그 엄마 나이가 되었다. 나이 오십. 딸아이는 13살. 내 눈에 딸은 아직 젖을 먹고 이유식을 먹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거늘.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다니. 세월이 빠르다 못해 쏜살같다고 하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어르신들이 늘 하시던 말 ‘금방이다.’라는 말을 지금 내가 딸아이에게 하고 있으니. 마치 조금 길게 다녀온 여행 같다.
조금 긴 여행을 다녀오니 딸아이는 훌쩍 자랐고, 내 머리에는 군데군데 눈이 내려있다.
근래 광고를 하나 보았다. 지미폰타나가 부른 일몬도가 흘러나왔고, 다 큰 아들이 지긋이 나이 든 부모님을 차에 태우고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차는 나무와 잔디가 그림처럼 펼쳐진 한적한 장소에 정차한다. 이끌리듯 차 문을 여는 부모님.
차에서 내린 부모님은 그림같이 펼쳐진 그곳을 힘껏 신나 뛰어간다. 사랑스럽고 너무 예쁜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밝게 웃으며 뛰어가는 소년과 소녀는 어릴 적 놀던 그 모습 그대로 입가에 미소와 웃음이 끝이질 않는다. 그 모습을 멀리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아들.
지미폰타나의 애절한 목소리와 너무나도 잘 맞았던 일몬도. 광고 속 노년의 부모님이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뛰어가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10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느껴졌던 것처럼 나의 부모님도 지금의 내 심정과 같았겠지. 부모님도 나와 같은 소중한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는 것을. 왜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돌아요. 세상은 끝없는 공간 속에서 돌고 돌아요.
방금 시작한 사람도 있고 이미 끝나버린 사람도 있어요.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기뻐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죠.
이 세상은 한순가도 멈춰 서질 않죠.
낮이 가면 밤이 늘 따라오고
또 아침이 밝아와요. - <지미폰타나의 일몬도>-
찬란한 자신의 미래를 뒤로 하고 전쟁 같은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신 모든 부모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