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람인 HR연구소 May 13. 2024

작은 조직의 힘 - 고어앤어소시에이츠

150명 이하의 작은 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업무 성과에 유리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진화심리학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1993년에 발표한 논문은 사회구조와 집단 행동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한 집단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최적의 크기’를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개념이다. 그가 제시한 수는 대략 150명으로, 원활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리에 있어서 집단 구성원과 효과성이 동시에 올라가는 상한선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구성원이 수가 던바의 수를 넘어가면 효과성이 오히려 감소한다는 의미이다.  


던바의 수는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대뇌 신피질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상호작용이 뛰어난 상위 2%의 인구에서는 던바의 수가 약 230명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생활을 하지만 인간보다 지적 수준이 낮은 원숭이, 고릴라 등의 영장류는 10에서 50마리 정도가 한계이다. 그 이상의 숫자로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생물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회적 능력과 상호작용에 따라 적당한 집단의 크기는 변할 수 있다. 던바의 수는 절대적인 숫자라기보다는 특정 문화나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복잡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 상호 의무감과 협력이 더 쉽게 형성되며, 그룹 내 인원들에 대한 상호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의 경험 상으로도 자명한 사실이다. 


던바 교수는 이 개념을 적용하여 직장 내 조직에 대해 연구하여 공장이나 사무실 조직이 150명 이하의 작은 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업무 성과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상호 의무감에 의해 이끌어지고 서로 협력하는 사적인 관계의 네트워크로 운영하는 것이 대규모 계층 조직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근로자와 관리자 간의 긴장이나 경쟁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집단 전체가 함께 일하는 것의 효과성을 입증했으며 이러한 연구결과는 HR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실제로 몇몇 기업들은 이러한 이론을 받아들여 조직을 작게 나눠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던바의 이론을 입증한 ‘W. L. 고어앤어소시에이츠’


작은 집단에서의 밀도 높은 협력과 개인 중심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성장해나간 회사 중 하나로 고어앤어소시에이츠(W.L.Gore & Associates)를 들 수 있다. 1959년 윌버트(빌) 고어가 부인 비브 고어, 아들 밥 고어와 함께 미국 델라웨어 자택 지하실에서 창업한 회사이다. 지금은 미국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본사를 두고 전세계에 약 9,5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30억 달러 이상의 연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창업자 겸 초대 CEO인 빌 고어는 1912년 아이다호 메리디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타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1945년에는 다국적 화학회사 듀폰(DuPont)에 입사하여 테프론 브랜드를 연구하는 일을 시작했다. 테프론을 이용하여 절연체를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던 경험으로 44세에 퇴직하고, 마침내 아들과 함께 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 제품의 성공으로 고어앤어소시에이츠는 창업 2년만에 성공적인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2대 CEO이자 빌 고어의 아들인 밥 고어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화학을 전공했는데, 테프론 소재를 연구하던 중 열과 함께 장력을 가하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 생겨 액체 상태의 물방울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기체 상태의 수증기는 통과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1969년에 개발된 등산복 원단 ‘고어텍스’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어라는 회사는 몰라도 고어텍스는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전 세계 아웃도어 브랜드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고어텍스는 특히 가혹한 환경의 고산지대 등반 시, 비와 눈은 막아주지만 땀으로 인한 습기는 빠르게 배출시켜 체온을 유지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므로 수많은 산악인들의 생명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유용한 발명품이다. 


현재 고어는 주로 우주선용 특수 케이블, 대체 혈관 소재, 등산복 원단, 그리고 기타줄과 같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소재 과학 및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연료전지용 전해질막 및 막전극접합체 특허를 바탕으로 양산화에 성공해 최근 현대차그룹과 차세대 수소자동차에 적용할 연료전지 전해질막 공동개발 협약을 맺는 등 전 세계 주요 연료전지 전문기업에 자사 제품을 공급하며 첨단 수소 산업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대화의 에너지가 혁신과 성과로 나타나다


고어는 한 공장,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인원을 반드시 150명 내외로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많아도 절대 200명은 넘지 않는다. 각 공장과 사무실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고어의 경영진들은 비즈니스 이익이 동료애와 격식을 갖추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작은 규모의 응집력 있는 조직 안에서는 그 누구도 남의 뒤에 숨거나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공동의 목표를 가진 작은 조직을 대상으로 소통을 하면 구성원들의 날 것 그대로의 생각과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어는 직원들을 종업원(employee)이 아니라 모두 동료(또는 동업자, associate)라고 부른다. 다른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 서열이 없으며, 모든 구성원이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각 부서의 리더는 회사가 승진시키거나 인사명령하지 않으며 동료들이 직접 선정한다. 심지어 CEO조차 설문조사로 선출한 적이 있는데, 2004년 3대 CEO였던 척 캐럴이 회사를 그만둘 때 전사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테리 켈리를 제4대 CEO로 임명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리더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 스스로 얻어내야 한다는 창업자 빌 고어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다.  


고어는 개방적이고 직접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조직 문화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업무에 관한 의문이나 불만은 누구든 팀 내 동료나 리더, CEO 등 직접 찾아가 소통을 하며 해결한다. 이처럼 팀 중심의 독특한 조직문화로 인해 Great Place to Work Institute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되고 있으며, 어소시에이트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처럼 작은 조직과 활발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원동력으로, 고어의 직원들은 회사의 압박이 아닌 주변 동료들의 지원과 격려를 통해 성장하며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 2024. 사람인 HR연구소



참고문헌

김환표 (2019), 최고의 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북카라반

마이클 버첼 & 제니퍼 로빈, 이민주 역(2012), 최고의 직장, 위즈덤하우스



최신 HR 트렌드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사람인 HR매거진 바로가기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