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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비

쓰다 2집 곡 별 코멘터리

by 쓰다 Xeuda

지난 화 : https://brunch.co.kr/@xeudamusic/23

곡을 만들 당시에 써 두었던 글은 프로젝트 "이달의 음성메모"를 통해 맨 처음 데모곡을 보내며 적어둔 글이 대부분입니다. 친구에게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며 적은 글도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며 적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어떤 건 반말로, 어떤 건 평서문으로 그때마다 다르게 쓰고 있습니다. 통일성이 없는 것도 그대로 좋아서 그냥 그렇게 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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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밀아언니(정밀아 님)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요. 그 날 언니가 멘트로 그러더랍니다. '누구나 철퍼덕 안기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라고요. 그 날 집으로 돌아와 메모장에 그 날을 마구 적었습니다. 뭐라도 적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들어서요. 그러고 한참 뒤 다시 메모장을 뒤져보다 그 글을 발견했어요. 엄마 보러 달려갔던 날. 철퍼덕 안기고 싶었던 날.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던 날.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섭고 슬펐다. 라고 적어뒀더라고요. 무슨 용기였는지 그 글을 그대로 가사로 적었습니다. 저는 가사를 쓸 때 무언가에 비유하거나, 돌려 말하거나, 아닌 척하기를 잘하는데요. 글쎄, 그냥 솔직하고 싶더라고요.


마구 달려가는 사람을 상상하며 만들었습니다. 편곡 과정에서 약간 어려움이 있었던 곡이기도 해요. 악기들이 같이 울어주었으면 좋겠어. 현악기를 써볼까? 오케스트라가 다같이 울어줄 순 없겠지. 그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이렇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의 모든 곡 중에 가장 다이나믹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네요.


https://youtu.be/HhGo_KSmeFg?si=03yrzuNt1uvrNscE


내 삶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도무지 어찌해야할지 몰라 정신없이 차를 빌려 그 길로 엄마한테 달려갔던 날이 있었어. 비가 많이 오던 밤이었고 캄캄한 고속도로엔 오가는 차도 없었어. 가는 내내 우느라 아무리 창문을 닦아도 흐려진 시야는 돌아오지 않았고. 갑자기 왜 차를 타고 달려갔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마 내가 나를 절대 보듬어주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 아무 판단 없이 나를 받아줄 사람, 지금 나에게 가장 안전할 사람이라면 역시 엄마, 엄마.


사실 그러고 나서도 뭐 나는 늘 무디고 나 자신에게는 조금 더 박해서, 뭐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지! 생각해버렸어. 묻어두고 한동안 모른척 하다가 어느 날 친구가 그냥 내 손을 잡아줬는데, 음.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나더라고. 어느 날 차에서 흘렸던 눈물은 그렇게 많이 쏟아도 차갑기만 했는데 그날은 그렇게나 따뜻했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 나만 내 편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슬프고 기뻤어.


2024년에는 사랑을 잘 쓰고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랑을 잘 하려면 받는 법도 알아야 하고 사랑을 잘 받으려면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아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그러니까 나는 올해에 나에게 온전한 나의 편이 되어 주려고. (다짐!) 이 노래를 듣는 너도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면 좋겠어. 너무 힘들 땐 남 탓도 좀 하고, 이유 없이 속상한 날엔 이유를 찾아주고,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예뻐해 주면서.


- 2024. 01


< 쓰다 - 비 >


엄마 보러 달려갔던 밤

철퍼덕 안기고 싶었던 날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던 날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섭고 슬펐어


뭐가 잘못됐고 뭐가 맞는 건지도

그럼에도 약해지는 내 마음이 한심해

이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기분

심지어 나조차도 으음


그냥 있잖아 어느 때 같은 날

축축한 가랑비 내리던 날

한사코 우산을 씌워주던 너

내 비를 온몸에 맞고서

나의 우산이 되어


빗방울 사이로 흐르던 눈물은

내게 묻은 때를 벗기고 새로 태어나

또렷한 눈빛은 잊었던 기억을

으음 끄집어내 괜찮다 안아주어서


또 울고 울고 웃었다

또 울고 울고 웃었다

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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