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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쓰다 2집 곡 별 코멘터리

by 쓰다 Xeuda

지난 화 : https://brunch.co.kr/@xeudamusic/22


2집 수록곡의 순서를 처음 정할 때부터 이 곡은 꼭 <사랑의 말을 가르쳐주세요> 다음에 넣고 싶었어요. 사랑의 말을 가르쳐달라고 노래하곤 사랑이 싫다고 했다가, 다시 또 사랑한다 소리치는 흐름이 좋았거든요. 음악을 한 앨범에 묶어 낼 땐 그 순서에 따라 생기는 서사가 있다고 믿어요. 만약 이 곡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 되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었겠죠?

1집을 낼 때는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이야기했는데요. 이번 앨범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제가 겪은 사랑의 단상을 마구 늘어놓았으니 여러분 나름대로 순서를 만들어 들어주시기를 바란다고요. 제가 만들어 둔 결말 말고, 여러분이 새롭게 만들어 갈 또 다른 세계가 궁금하거든요. 그래서 작업기도 트랙 순서와 상관없이 마구 널어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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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는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유일한 마이너코드(Minor chord) 진행인 노래입니다. 2집의 노래는 거의 다 밝고 따뜻한 메이저 코드로(Major chord) 이루어져 있지만, 저의 예전 노래들은 대부분 마이너 코드로 만들어 우울하거나 익살스러운 곡이 많아요. 2집의 쓰다와 1집의 쓰다의 곡 스타일이 많이 달라져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 곡이 이전의 쓰다와의 연결점을 지어주어 마음이 놓였어요. 실제로 보컬 스타일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녹음도 훨씬 수월했던 곡이에요.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라고 새침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상상하며 만들었어요. 사실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말이죠. 오래된 노래 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곡이 있잖아요. 항상 이게 무슨 말인가 몰랐었는데, 어느 순간 알 것도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랑은 정말 하고 싶지 않기도 하더랍니다.


저는 세련 맞은 명환의 기타 솔로를 참 좋아하는데요. 이 곡이 그 정수를 다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를 때도 들을 때도 재밌고 신나는 곡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TwFO0BSoR4Q




"어떤 사랑은 나를 죽이고, 어떤 사랑은 나를 살게 한다."



힘들었던 사랑을 겨우 끝내고 처음으로 가족을 만났다. 더 이상 엄마를 속이지도, 나를 속일 필요 없이, 혹여나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마음도 없이 편안하게 마주한 자리. 스스로에게 거리낄 것이 없고 거짓말을 하고 있지도 않아서 그런가 편안하고 밝은 마음이 내 안에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밝은 마음이 차오르다니? 근데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뿐이 아니라 실제 신체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뱃속부터 차오르는 밝은 기분. 마음의 짐 하나 없이 홀가분하게. 그래 맞아 나 원래 엄마 아빠 앞에서 이렇게 밝고 귀여운 사람이었지, 정말 깜빡 잊어버렸다. 잃어버린 줄도 잊어버렸던 모습. 완전히 잃어버릴 뻔했네. 지금이라도 찾아서 참 다행이다.



어느 날의 나는 제멋대로 구겨진 반죽 같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당신의 불안과 책임질 수 없었던 당신의 감정이 내 안을 뒤지고 휘저었다. 또 어느 날의 나는 위태로운 젠가 탑 같았다. 하나둘 블록을 빼낼 때마다 무너질 듯 흔들거리는 공포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렇게 빼어지고 다시 쌓아지며, 잔뜩 구겨져 원래의 형태를 점점 잃어가면서도,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거리면서도, 내가 지금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당신이 다시 잘 쌓아준 덕분이라고. 당신의 사랑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는 아직 괜찮다고 애써 되뇌었다.



그 세상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은 또 다름 아닌 사랑. 붕괴되어야 마땅했던 그 기이한 세계는 우정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가볍게 완전히 파괴되었다.



얼마 전 이제는 그만, 사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를 죽이는 사랑이 아니라 나를 살린 사랑에 대해, 나를 나답게 하는 사랑에 대해 쓰고 또 쓰고 또 쓰다 보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진짜 나에게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나의 마음만 챙기면 된다. 당신의 불안까지 떠안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것만으로도 훌훌 가볍다. 숨통이 트인다.



나는 이제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야.

(기필코 나는 사랑을 하고 말 거야)


- 2023. 11



< 쓰다 -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여러 번 되뇌고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다신 다신 사랑하지 않을 거야


구겨진 옷가지 버려놓은 껍데기

발 끝에 채이는 무거운 돌덩이


전부 다 그대로

저절로 다 사라진다면

그날로 나도 아아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여러 번 되뇌고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다신 다신 사랑하지 않을 거야


부서진 파편에 찢어진 살결이

바닥에 뒹구는 다정한 마음도


전부 다 그대로

저절로 다 사라진다면

그날로 나도 아아

나는 이제 사랑이 싫어


다신 다신 사랑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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