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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다 하지 못한 말

쓰다 2집 곡 별 코멘터리

by 쓰다 Xeuda

지난 화 : https://brunch.co.kr/@xeudamusic/21


무너지고 부서짐. 망가짐과 같은 단어들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곡을 이별 혹은 부정적인 사랑의 감정으로 생각하시기도 하는데요. 모든 감상은 옳고 정답은 없으나, 글쎄요. 어떤 세상은 반드시 무너져야만, 또 어떤 사랑은 꼭 깨어지고 부서져야만 나를 지킬 수 있기도 하더라고요.


스크린샷 2024-12-03 오후 3.51.03.png 이 곡의 모티브가 되었던 영화 <헤어질 결심>


당신 덕분에 내 세상은 완전히 깨어졌어요. 그리고 그제야 진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깨어진 자리 위로 잘게 부서져 반짝이는 파편을 상상하며 이 곡을 만들었어요.


엉성한 기타 위에 드럼 비트만 얹어 명환에게 보냈는데요. 얇은 유리구슬 같았던 나의 세상과 손쉽게 깨어져 버린 마음이 단번에 그려진 편곡으로 돌아오더군요. 편곡본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눈물이 식도를 타고 심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어요. 명환이 그려낸 세계가 너무 아름다워 제가 토해낸 그때의 마음에 푹 잠긴 채로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 바들거리는 마음을 그대로 느껴보세요. 잘게 쪼개지는 드럼 비트, 연약한 피아노 위로 쏟아져내리는 코러스, 떨리지만 분명한 음성, 끝내 다 하지 못한 ‘사랑해요’ 까지.


이 마음이 가닿지 못한다 해도

그래도 난 상관없어요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붕괴. 무너지고 깨어짐.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왔던 대사.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심 저게 무슨 말인가, 사랑한다면 그냥 사랑한다고 하면 되지 왜 굳이 붕괴됐다는 말을 쓴 걸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곤 별생각 없이 쭉 영화를 봤던 것 같아. 중간중간 약간은 지루하게 서로 곁을 맴돌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답답했고. 끊임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답답한 삶을 연장하는 주인공의 마음도 모르겠고. 자꾸 드는 물음표를 어르고 달래며 끝까지 봤는데 글쎄 마지막 장면에서 그만 또 오열을 하고 말았지 뭐야.

당시 내 옆에서 같이 보던 친구가 왜 그렇게 우냐고 연거푸 물어봤는데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 됐어. 나도 내가 왜 우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어. 심지어 영화는 조금 지루했다니까 말 다 했지.

슬퍼? 아니. 죽는 게 슬퍼서 그래? 아니 저건 죽은 게 아니잖아 완전히 사라진 거지. 그럼 안타까워서? 아니 안타깝지 않아 오히려 너무 아름다운데. 아름다운데 왜 그렇게까지 울어? … … 나도 몰라.

그리곤 그냥 엉엉 쏟아내고만 말았어. 그러고 한참이 지나고도 나는 그때 왜 울었던 걸까 꼭 맞는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지.


그런데 있잖아.

얼마 전에 말이야. 내 세상이 완전히 붕괴됐거든.


그 단어 말고는 쓸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더라고.


그러려니 참고 참으며,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과 체계를 쌓아가던 나의 작고 소중한 세계가


완전히


한 마디의 다정한 말,

안부를 물어주는 눈빛,

걱정스러운 손길에


그만 와르르

다 부서져버렸지 뭐야


몇 년을 공들여 세운 나의 소중하고 안락한 세계가 이렇게 쉽게 붕괴되어 버리다니 참 우습더라.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리 단단하게 쌓아 올린 세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별것 아닌 손짓 하나에 이때다 싶어 신나게 부수고 태우고 찢어버리고 말았으니. 정말 조금 신이 났던 것도 같아. 내 발밑엔 부서진 세계의 파편이, 아니 이건 발밑이 맞을까? 옆에 뒤에 널려진 조각. 내 몸도 완전히 깨어져 버려 여러 파편으로 흩어져 버린 것만 같아. 붕괴. 그럼 붕괴 그다음은? 다음엔 뭐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영화 <아가씨>도 그러네. 숙희가 아가씨의 세상을 완전히 부숴버렸잖아. 박찬욱 감독의 사랑이란 이런 걸까?


이런 게 사랑일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


- 2023. 09



https://youtu.be/lqvgszoQXWs?si=2jICbgRiZ3rSd5Mv


< 쓰다 - 다 하지 못한 말 >


날 꽉 잡아주세요

날 꽉 안아주세요

날 가만히 바라보고는

그대로 또 웃어주세요


말로 다 하지 못할 마음

눈으로 다 전해주세요

우리 잡은 손 위로

아마도 다 내려앉을 거예요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믿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대 어떤 모양이래도


난 부서졌어요

난 다 망가졌어요

날 가만히 바라보고 음

그대로 또 무너졌어요


멀리 가닿지 못할 마음

그래도 나 나 상관없어요

우리 잡은 손 위로

아마도 다 내려앉을 거예요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믿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대 어떤 모양이래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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