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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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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Engineer Nov 24. 2023

20대

회고록을 시작하며

    한 달 전에 나의 20대는 끝이 났다. 올해 여름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했던 실없는 한마디가 기억난다. ‘지금 시점에서 20대를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우리가 아닐까?’ 설레는 마음으로 했던 건배가 무색하게 나라에서 허락한 마지막 20대 4개월은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갔고, 완전히 마침표를 찍었다. 그 사실이 허탈하지도, 기쁘지도 않지만 지금 누군가가 너의 기억을 들춰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스무 살의 나를 떠올릴 것 같다. 대구 송원학원 자습실 맨 뒤 귀퉁이, 이어폰을 끼고 앉아 PMP로 인강을 듣던 재수생.


    20대의 첫 번째 단락은 그렇게 시작한다. 부모님께 했던 다짐을 가슴에 경건히 아로새기고, 의자에 엉덩이를 바싹 붙이고 앉아 ‘simple life, 8 to 10’ 공부에만 열중하여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 신입생 오티에서 확인한 나의 주량은 나쁘지 않다. 두 병? 세 병? 그리고 그곳에서 첫눈에 반한 선배가 있던 밴드부에 홀린 듯이 들어간다. 1년 뒤 나는 자연스럽게 기타를 어깨에 걸치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뒤풀이에서 그녀에게 고백하고 나의 첫 연애를 시작한다.

    사실 20대의 첫 번째 단락은 그렇게 시작했다. ‘League of Legend’ 한국 서버가 오픈했다. 주말이면 8 to 10 재수생 친구들과 소환사 협곡에서 손발을 맞췄다. 공부하다 눈 맞은 친구와는 추리닝을 입은 채로 잠깐의 고달픈 비밀 연애도 했다. 12월에 받은 수능 성적표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협곡에서 우정을 나눈 친구는 작년보다 낮은 등급이 적힌 성적표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힘내'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교 신입생 오티에서 확인한 나의 주량은 처참했으며, 여자 한 명 없었던 우리 방 동기들과 술로 브로맨스를 맺고 함께 밴드부에 들어갔다. 20살에 꿈꾼 내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다.

    그렇게 꿈꿨던 나의 20대 두 번째 단락은 다시 이어진다. 전공과 찰떡이었던 나는 석사, 박사까지 스트레이트로 달려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한다. 꼰대 교수님 때문에 대학원 생활에 부침을 겪지만, 논문 실적으로 인정받는 학생이 된다. 연구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친구와의 애정 전선에 위기가 찾아오지만, '내가 더 잘할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낸다. 취업은 교내 산학 장학생 제도로 해결되었고,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프러포즈해야지. 20대의 마지막 단락은 그렇게 끝난다.

    그리고 역시나 나의 20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전공과 나는 점점 사이가 멀어졌고, 운명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군대로 도망쳤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은 매번 나를 배신했으며, 나와 그녀에게 상처를 남겼다. 20대의 끝과 함께 20대의 마지막 사랑도 허무하게 떠났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11월, 30대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되뇌었던 <스토너>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게, 나는 무엇을 그렇게 기대했던 걸까. 나의 지금을 자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땐 알지도 못한 일을 사랑하게 됐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다른 형태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이를 테면 우정이나 가족 같은 배타적이지 않은 사랑들.

    다만 이런 생각들이 뒤이어 떠오르곤 한다. 만약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평행 우주에 있는 무수한 그들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본다면, 나를 안쓰러워할까, 아님 부러워할까. 그들의 인생에 순위를 매긴다면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은 몇 등쯤 될까. 내 앞에 쌓여 있는 시간만큼 계속 쌓여 가는 생각들이다. 그렇게 나의 경쟁자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이길 수도, 질 수도 없으니 그 고민만큼은 계속 비워내야지. 내가 요즘 하는 다짐들이다.

    난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참 싫다. 내가 뛰는 걸 원체 싫어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마라톤은 페이스 조절이 생명이라는 인터뷰를 보고 나서부터  싫어졌다. 그 말인즉슨 중간에 한번 삐끗하면 전체를 망친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내 인생은 이미 망했다. 완주가 중요하다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포디움에 누군가는 올라가니까.

    대신 ‘인생은 이야기’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동화든, 스릴러든, 아무렴 어때. 끝나고 보면 지금이 내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이거나 근사한 지점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저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며 비아냥대겠지만, 그 자리에서 빳빳이 굳어 더 나아가지 못할 바에 나는 이렇게라도 끝을 보겠다. 그리곤 언젠가 다시 스무 살을 떠올리며 회고를 시작하겠다. 대구 송원학원 자습실 맨 뒤 귀퉁이,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내 옆에 서서, 지금 공부 안 하면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보다, 지금 듣는 노래는 무엇일까 상상하며,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_ Big fish (2004)_ He becomes the stories. In that way, he becomes immort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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