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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ong Lee Jun 15. 2024

2024.6.5 일기

그리고 짧은 생각들

1. 출근


아침 7시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내 기상 목표 시간은 오전 7시 15분이지만, 매일 아침 내 알람은 15분 일찍 울린다. 그리고 5분 간격으로 다시 울린다. 그 시간에 맞춰 나는 눈을 떴다가 감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7시 15분이 되면 몸을 일으키고 샤워실로 향한다. '이럴 거면 그냥 7시 15분에 알람을 맞춰도 난 그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도 실행한 적 없는, 실행할 용기도 없는 변화를 눈을 감은 채 상상하며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닦는다.


방에 들어온 시간은 7시 30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유튜브 재생 목록을 빠르게 훑는다. '지속 가능한 건강 보험은 가능한가', 슈카 월드, 재생 시간 32분. 머리를 말리고 회사에 도착할 시간까지의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내용은 대충 저출산율, 고령화, 의료제도 개혁 실패의 결과로 우리나라 건강 보험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 그니까 대충 우리나라가 망해간다는 이야기. 어제 대학 동기들 단톡방에서 시끄러웠던 내용이 이거였구나 깨닫고, 채팅방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귀로 다시 듣는다. 어느새 슈카가 되어버린 내 친구들과 나. 어쨌든 슬픈 이야기에 한숨을 몇 번 쉬다가도 막상 햇수를 세어보니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인가?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그 사이 내 머리카락은 많이 말랐다.


7시 45분, 차 키를 집어 들고 현관문을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무표정을 한 다섯 명의 사우들, 가볍게 목례하고는 인터넷이 안 터지는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만 쳐다보며 함께 내려간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 2층, 차에 탑승.

연구소 쪽문 앞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15분, 주차장 입구 컨테이너에서 나와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주차장 사장님. 당황해서 음악을 잠깐 끄고 창문을 내린다.

"xxxx 사장님 오랜만이시네요. 요즘 많이 바쁘셨나 봐요. 오늘 자리가 많습니다. 편한 곳에 주차하세요."

"아, 네..."  이 시간에 자리가 많을 리가 없는데, 이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친절하지 않은데, 의아한 상황에 어색한 대답을 한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쪽문에 도착했을 때 나의 의문은 해소된다. 굳게 잠겨져 있는 문, 위에 붙은 안내문, '건물 보수 공사로 8월 31일까지 해당 문을 폐쇄합니다.' 다시 정문으로 돌아서 가려면 최소한 10분은 더 걸어야 한다. 손목시계를 훑고 바로 발길을 돌린다. 정문으로 걸어가는 길에 위치한 제1 주차장 입구에는 주차하려는 차들이 빼곡히 줄지어 있었다. 쪽문 주차장과의 경쟁에서 밀려 텅텅 비었던 옆 주차장의 낯선 모습, 뜨거운 햇볕과 설렘에 상기된 사장님, 바빠진 발걸음. 그 옆에는 아마도 처음 출근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아들이 어색한 손짓으로 주차 안내를 하고 있다.

새 기숙사가 들어서면 아예 쪽문 없앨 수도 있다던데... 잠깐 머릿속을 스치는, 쪽문 주차장 사장님. 역시 세상은 운빨인가, 짧은 생각 한 스푼. 나라도 자주 가야지, 뻔한 거짓말 한 스푼.


1층 카페에서 아이스 라떼를 사들고 바로 2층 사무실로 향한다. 동료들과 가볍게 인사하고는 업무 시작. 로그인을 하고 바로 확인하는 문서함. 새로운 알림 1건, 벌써 실장님 결재까지 완료됐을 리가 없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확인해 보는 내용. 역시나 미국 출장 결과 보고서 결재가 반려되었다. '하, 씨...' 고개를 살짝 들어 파티션 너머 파트장님을 보자마자 마주친 눈.

"어 그래, 안 그래도 보고서 이야기 할랬는데, 여기 와볼래?"

전혀 납득되지 않는 지적들에 10분간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열심히 보고서 수정.

엔지니어라면, 내가 한 일에 대해 오차 없이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것을 50으로 부풀려 적어야 한다면, 혹은 주석이 아닌 미사여구를 달아야 한다면, 내 직업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작가가 맞지 않나. 아 하나 더 있다. 정치인.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남은 방식을 왜 나에게 강요할까. 난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 편인데, 그리고 뒷 일은 나의 몫인데, 당신이 책임져줄 거야?

진짜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2. 날 위로하는 - 제육볶음


오후 12시, 점심 메뉴는 제육볶음, 나의 영원한 소울 푸드. 스테이크보다 제육볶음, 오마카세보다는 제육볶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금세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제육볶음이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다. 요즘은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12000원이면 적당한 행복을 살 수 있다. 달걀 프라이라도 하나 얹어서 나온다면 그 행복은 배가 된다. 양이 부족하면 1000원 더 보태서 공깃밥 추가요. 오늘도 역시나 제육볶음 메뉴를 확인하자마자 밥을 한 공기 더 펐다. 그리고 역시나 몇 숟갈 먹자마자 기분이 많이 풀렸다. 분명 10분 전에는 짜증 가득한 일들이었지만, 먹으면서 곰곰이 떠올릴 때는 '그 정돈가? 내가 과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잠깐이나마 불행하다고 믿었던 내 삶이 꽤나 행복해서 이 간단한 식사 한 끼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은 건, 운이 좋게도 내가 느끼는 행복의 역치가 낮은 탓이야'라고 퉁쳐서 설명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오만한 생각으로 비칠 수도 있다. 다만 제육볶음처럼, 앞으로 마주할 행복들도 그만큼 보편적이기를 바란다.


3. 날 위로하는 - 사람들


오후 4시, 조금은 이른 퇴근 후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동안 그녀와 통화를 했다. 화성에서 조치원까지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들, 파트장님 욕 그리고 오늘의 메뉴에 관해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어떤 이야기와 감정들은 그 안에서 사소해지기도, 소중해지기도 했다.

그런 대화를, 나는 좋아한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좋아한다. 수년간 독서모임을 하면서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나누는 낯선 이야기를 좋아한다'라고 나를 오해했다. 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새로이 영화 모임을 열겠다는 호기로운 의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모임을 열고나니 나는 여전히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나와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며 대화와 모임을 이끌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 땐 그저 침묵하거나 관심 없는 이야기는 그냥 멍 때리면서 흘리기를 좋아하는, 무심한 사람에 가까웠다. 열심히 아닌 척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바로 영화모임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정말 짧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시도한 일이었기에 조금(어쩌면 많이) 허탈했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다.'라고 할 만큼의 무거운 감정은 아니었고, 그동안신경 써준 운영자님에게 미안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동안 큰 노력 없이, 우연한 계기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인연들에게 그저 감사했다.








4. 네가 뭔데 - <밀란 쿤데라>, <디 아워스>


친구들이 하나, 둘 조치원에 도착했고, 시간은 어느덧 저녁 8시. 오늘 모임의 이유는 이제 막 교수가 된, 과동기 A의 집들이었다. 워커홀릭인 이 친구의 집 거실에는 모션 데스크와 데스크톱, 그리고 더블 모니터뿐.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의자 대신 허리 아치를 보호해 주는 푹신한 발판이 자리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탓에 서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가 대전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에도 몇 번 놀러 가서 재택근무를 같이 했던 적이 있어서 이 친구의 괴물 같은 일상은 잘 알고 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보통 7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는 쭉 일만 했다. 그때도 허리 때문에 내내 서서 일을 하곤 했었다. 40분 일을 할 동안에 허리찜질기 뜸을 들이고, 10분 동안 찜질기 위에 누워서 쉬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점심은 언제나 닭가슴살에 현미밥. 매일매일이 그런지는 알 순 없지만, 내가 갈 때마다 똑같은 일상이었다.

조치원 거실에는 모션 디스크 움직이는 소리와 마우스 딸깍이는 소리만 들릴 뿐 그 흔한 블루투스 스피커도 없었다. 그래도 구석에 로봇 청소기는 있네. 커튼은 쿠팡에서 산 짙은 쥐색 암막 커튼. 이럴 거면 거실 도배는 왜 흰색으로 했냐고 물었더니, 전 주인이 살던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세히 보니, 벽 곳곳에 못질의 흔적도 남아있다. 아 그럼 저쯤에는 결혼식 액자가 걸렸겠구나... 목이 말라 물을 꺼내기 위해서 냉장고를 찾았을 때는 아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냉장고 장의 절반 크기 귀여운(?) 냉장고가 민망하게 서 있었다. 그것도 딱 한가운데에...

이럴 땐 참, 뭔가 허술해 보이고 기계 같은 동생이지만, 본인의 목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철저한 친구다. 그것이 무엇이든 악착같이 쫓고, 심지어 이뤄내기까지 하는 친구다. 그래서 이렇게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될 수 있었을 테고, 그 모습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울 때도 있다. 교수로서 꿈꾸는 미래에 대해, 사회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이루고 싶은 성취에 대해, 노골적으로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넌 진짜로 해낼 것 같아. 그리고 뒤이어 묻는다, 꽤나 자주 물어봐서 대답도 익숙하다.

"근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렇게 더 올라간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려나"

술에 취했을 땐 한마디 더 거든다.

"어차피 행복하려고 사는 건데, 그러면 그 과정들도, 오늘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 시간이 괴롭다면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 너 아직도 허리 아프잖아."

친구들은 역시나 개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라고 했다.

"형, 나도 형 생각에 동의하거든? 근데 지독히 성공한 다음에 허탈함을 느끼고 싶어. 다른 성공한 사람들처럼."

그 성공에 대한 정의가, 기준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려다가 그 말도 맞다며 웃으며 술을 마셨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몇 가지 있지만, 벌고 나서 말해야 겨우 내 말 믿는다는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나야말로 뭔가를 저렇게 갈망하거나 노력한 적도 없으면서, 이뤄낸 다음을, 그 과실보다 중요할 무언가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거만한 일 아닌가. 그것도 내 옆에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해내며, 스스로의 생각을 증명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말이다.


친구에게 건넨 '그렇게 사는 것이 맞냐'는 질문은 어쩌면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아니었을까. 혹은 그가 악착같이 이뤄낸 결과에 대한 시기, 질투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생각으로, 태도로 오늘 하루를 살아왔는가를 잠깐 돌아봤다. 난 오늘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고, 이기적인, 위선적인 생각으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사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잠시나마 감사한 인연들을 떠올렸다.

단 하루, 찰나의 순간마다 나에게 삶의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이루고, 또다시 내일을 살아가겠지. 내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다른 시간들이 쌓여있을 뿐이다. 그 시간들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 치고 있다. 그 방식들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가치를 매길 필요가 있을까, 그 순간 불행해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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