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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Engineer Mar 30. 2024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 2

2024년 2월 회고록

All about 입시에서 윤도영 선생님이 제일 자주 하시는 말 

 

    요즘 유튜브에서 가장 즐겨 보는 콘텐츠는 '미미미누' 채널의 'All About 입시'이다. 미미미누가 입시 전문가인 윤도영 선생님을 모시고,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코너이다. 수능을 본 지도 어언 10년이 넘은 내가 이 콘텐츠에 푹 빠진 이유는, 스스로를 '대문자 T제곱'이라 일컫는 윤도영 선생님의 냉철하면서도 통찰력이 담긴 인생철학을 듣기 위해서다. 행동하지 않으면서 꿈만 꾸는 학생들, 혹은 너무나 아득한 꿈을 꾸는 학생들에게 차갑고 현실적인 조언들을 아끼지 않으신다. '세상을(너의 입시를)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라는 철학을 입시 전쟁터에서, 아직은 잔인한 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설파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도로 현실 감각이 부족한 나에게 신선하면서도 긍정적인 충격을 주어서 나의 최애 채널이 되었다. (인스타도 팔로우했다. 나름 인싸 재질이신 선생님은 인스타로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꿀잼이다.)

    선생님을 가장 괴롭히는(?) 학생들은 바로 '한 해 더 열심히 하면 의대(혹은 더 상위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고민을 상담하는 학생들이다. '고3이 된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 시작하려고 합니다. 삼수면 인서울 가능할까요?'와 같은 대담한 미래를 꿈꾸는 학생도 있다. 일시적 일지 모를 열정만이 가득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사람은 강력한 외부의 충격 없이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19년간 살아온 역사가 있는데, '이젠 정신 차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다짐 하나로 '너'가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드라마나 영화에도 없습니다.'라는 다소 잔인한 멘트를 남기셨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기 객관화를 다시 해보라는 것이 요지였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다시 파리 공항으로 돌아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자. 그렇다면 수없이 많이 반복되었을 후회와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변하지 않았는가?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인간 내면 혹은 성격을 네 가지 수직적 층위로 구분 지었다. 아래에서부터 '유전', '애착 유형', '경험이나 습관', 마지막으로 '위장'이다. 로버트 그린이 분석한 바를 참고해 보자면 나는 분명 변했다. 다만 정확히는 '위장' 기술이 변했다. 분명 내향적이었던 나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주변 사람에게 지극히 무관심한 나였지만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챙기려는 노력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변해가는 나의 가면을 보면서 요즘은 스스로 만족했던 적도 꽤 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성격(Personality)은,
이런 페르소나(Persona)뿐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뿐이다.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만들어 둔 가면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내가 알던, 어쩌면 10대 때의 나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보잘것없는 나의 맨얼굴을 마주하곤 한다. 그럴 때면 냉소적인 생각도 함께 든다. 이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닐까?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나는 세상을 향해 나의 최선의 얼굴만 보여주고 있었구나.

    내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인간도 결국 동물이기에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대로 네가 정말 행복할 때의 모습도 변하지 않는 거 아니냐는 다정한 물음도 함께 건넸다. 정말 달콤한 위로이지만, 난 이런 내 모습들을 바꾸고 싶다. 보통 그 발톱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향할 때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훨씬 극한의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어른'들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쯤에 심리 상담을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다. 상담사분께서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의 모습', '행복할 때 나의 모습', '평소의 나의 모습'으로 구분해서 나를 들여다보셨다. 오랜만에 그 일이 생각나서 당시에 상담받았던 종이를 꺼내 읽어 보았다. 글 속에서 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의 모습'을 이쁘게 포장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로버트 그린은 부정적인 내면, 성격을 지우거나 바꾸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스트레스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짧은 루틴을 만든다거나, 의식적으로 행동 양식을 바꾸는 방식으로 말이다. 극한으로 몰린 상황에서 등장할 또 다른 '나'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상황에 닥쳤을 때,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나의 모습, 약점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중반에도, 30대가 된 지금도 그 일이 나에겐 참 어렵나 보다. 어쩌면 나는 내 모습 중 일부가 너무 싫었던 나머지 계속 부정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윤도영 선생님의 말처럼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 객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를 조금 떨어져서 돌아보는 일을 하기에는 '글'만큼 탁월한 수단이 없는 것 같다. 부끄러웠던 그날의 일기를 쓰면서, 또 이 회고록을 쓰는 과정 속에서 논리적이지 못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조금은 더 냉정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가.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읽을 때에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기를, 그만큼 성장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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