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교회가 취향에 딱 맞고 눈에 거슬리지 않을까?
사랑하는 나의 조카 웜우드에게
네 환자가 교회에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그 증상이 우리에겐 몹시 불리하다는 걸 알고는 있는거냐? 정신 좀 차리고 똑바로 일하거라. 우리는 환자가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완벽한 교회를 찾아 헤매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를 겸손한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교회 비평가’ 로 유도해야 해. 그를 교회 쇼핑이나 하게 만들어야 한다구.
너는 교회를 어떤곳이라고 생각하느냐? 원수는 계층, 학력, 재산이 다른 이들이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지. 하지만 인간 환자는 동호회나 사교클럽과 같은 곳을 꿈꾼단다. 우리의 성공을 위해 너는 네가 맡은 환자에게 계속 속삭여야 한다. "이곳은 네 수준에 맞지 않아. 더 지적인 설교, 더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찾아봐야지."라고 말이다.
나도 네 환자 줄리안이 다닐 만한 교회 두 군데를 나름 알아보았지. 두 군데 모두 만족스러우니, 안심하거라.
첫 번째는 시릴 목사의 교회다. 시릴은 교인들이 어려워할 개념이나, 설교중 '죄'나 '회개' 같은 단어들을 모두 빼버렸지. 그는 친절한 사람이라 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는 신앙을 아주 연하게 희석시켜, 무색무취 맹탕물로 만들어 버렸지. 아무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이 말이야. 성경의 날카로운 진리들을 둥글게 깎아내어 아무도 아프지 않게 만들었다. 네 환자 줄리안이 그곳에서 "참 세련된 설교야"라고 감탄하며 돌아간다면, 그는 이미 우리의 덫에 걸려든 셈이다.
두 번째는 스파이크 목사의 교회다. 스파이크는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 그는 설교 내내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며, 마치 신앙이 곧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인 양 가르치고 있지. 게다가 정직하지도 않지. 언젠가 ‘ㅇㅇ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라고 말해야 할 것을 ‘교회의 가르침은’ 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지.
환자를 교회밖으로 끌어내지 못하겠으면, 적어도 그 안에서 분파를 만들게 유도하거라.
사소하거나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옳고 그름을 가르고, 자기들끼리 증오심을 부추기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혼자 보기 아까워 죽겠단 말이지. 그 옛날 ‘사도 바울’이라는 해롭기 그지 없는 작자가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 양보하라’고 그렇게 목청 터지도록 외쳐댔건만 자기 옳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상대방만 탓하고 비난하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성호를 긋는 예법은 마치 내 눈에는 형식만 따지며 우상 숭배 하는 모습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내 형제자매들만의 예법이고 전통이니 성호를 내가 먼저 긋어야겠다,’ 라든가 반대로 ‘화려한 예식들이 내 형제자매에게는 우상숭배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삼가야겠다’ 라고 흔쾌히 말하는 작자들을 본 적 있느냐? 이것이 다 우리 악마들이 잘 훈련시켜 놓은 덕분이다.
우리들의 이런 노력 덕분에 네 환자 줄리안은 어느 교회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자신의 기준에 맞는 완벽한 교회를 찾아 떠도는 '방랑자'가 될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수준 높은 신앙인'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교만이라는 늪에 깊이 빠져 있는 비평가일 뿐이지.
기억해라, 웜우드. 원수는 그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취향을 진리보다 높이 두길 원한다. 다만 환자가 '어떤 교회가 내 취향에 딱 맞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지'만 묻게 하거라.
너의 삼촌 스크루테이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