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눈물로 빵빵해져서 울부짖는 나의 감정 돌아보기
지난번에 우리는 <쇼케이스에서 마카롱 꺼내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초보 엄마와의 마카롱 원정대에 비자발적으로 동행되곤 했던 첫 아이는 어느덧 유치원생이 되었어요. 이제 저는 더 이상 저를 위한 마카롱을 사지 않아요. 다만 두 아이가 마카롱을 무척 좋아해서 하원하고 나면 종종 초코 마카롱을 사러 나서곤 합니다. 우리 집에서 마카롱은 옛이야기의 "자꾸 울면 곶감 안 준다-!"의 '곶감'을 맡고 있는 셈이죠.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닌 마카롱이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요. 저는 커피와 디저트, 술을 좋아하거든요. 힘들 때마다 술을 먹는다는 건 어쩐지 알코올 의존증의 국면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라 패스. 빵은 맛있지만 대개 예쁘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니 패스. 케이크보다는... 그냥 마카롱이 좋았던 것 같아요. 형형색색 온 정성을 다해 빚어지고 구워져 쇼케이스에 진열 아니 전시된 마카롱들을 보는 게 소위 말해 저에게는 힐링이었던 거죠.
결혼 전 직장에 다닐 때는 어린 아기와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언니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눈치 볼 상사도 없고 이상한 동료도 없으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남향 집에서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은은한 파우더향이 나는 아기와 꽁냥대는 시간을 보낼 언니들이 부러웠지요. 아이가 조금 크면 어린이집에 간다고 하던데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동네 엄마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날을 기대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아이 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많이 생겼지만요, 8년 전 그때는 모르기도 한참 몰랐습니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 예전의 제가 영혼 없이 위로하고 속으로는 부러워했던 수많은 '언니들'에게 마음속 깊이 공감하며 사죄했습니다.
당연히 큰 착각이었지요. 아기의 모든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눈치를 봐야 했어요. 지금 졸린가? 지금 배고픈 건가? 본인도 잘 모르는 아기의 마음과 생리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묻느라 나의 안녕과 복지는 뒷전이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기의 기저귀를 열어봤지만 하루 이틀 사흘... 화장실 한번 마음 편히 가지 못했던 나 자신은 돌아봐주지 못했어요.
'누가 화장실 가지 말래?', '누가 샤워하지 말래?'
예. 아기들은 어른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워낙 뭘 잘 먹지 않던 첫 아이였던지라, 아이주도이유식이라는 걸 했었어요. 찐 야채나 쌀가루를 묻혀 구워 만든 스틱 같은 것을 차려 주면 아이가 직접 탐색하며 손으로 집어 먹는 방식이지요. 분유도 잘 먹지 않던 아이였는데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떠 먹이는 것도 잘 먹지 않더군요. 보통 분유를 잘 안 먹으면 고형분인 이유식을 잘 먹는다고 하던데 우리 아기는 그냥 먹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였어요. 하루종일 아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음식들을 만들어 대령했습니다.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첫 경험이니 낯설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만져보고 맡아보며 탐색하다 보면 입 속에 한 번은 들어가겠지 싶었지요. 처음 며칠은 독이 묻은 음식을 대하듯 하더니 나중에는 한 입, 두 입 조금씩 먹기 시작했어요. 식탁 아래는 어떨지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시겠죠. 아이의 식사가 끝나면 씻기고 더러워진 바닥을, 식탁 의자의 시트 사이사이를, 식탁 위를 치우고 닦아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언제쯤 측은지심이라는 게 생길까? 언제쯤 고개를 수그리고 식탁 아래에 들어가 제가 저지레 한 음식물들을 치우느라 고생하는 어미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는 게 생길까?"
어느 날 곁에 있던 남편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었지요. 내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돌려 본다면 불쌍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아기의 기저귀를 들춰 보는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도 들춰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카롱이 별다른 위로가 되는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작게라도 위로가 될만한 아이템이 없으신가요? 그럼 '아직' 못 찾으신 겁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주관적인 힘듦의 강도가 다르고 회복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를 거예요. 이미 아무런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소진된 상태일 수도 있을 테고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아주 크거나 값비싼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별 수 없이 나를 너덜한 상태로 내버려 둘 건가요? 수많은 눈물을 머금은 채로 빵빵해져서는 제발 들여다봐 달라고, 새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새 힘을 달라고 울부짖는 내 감정을 더 이상 못 본 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대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너무 비싸지 않고(언제든 접근이 가능한 방법일수록 좋아요.) 지금 현재 나에게 소소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을요.
다음 글에서는 좋다는 거야 당연하지만 진부하고 새해마다 계획하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을 돌봄 노동자 가이드의 두 번째 방법으로 소개하려고 해요. 어떤 방법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좋은 거 알지만, 잘 안 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