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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Dec 27. 2023

크리스마스가 좋냐

디게 좋아

 크리스마스 당일 낮에 포털을 뒤적거리다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헤드라인이 뭐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어이 없는 문구가 기사 한 중간에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케이크를 먹는 게 우리나라에선 이젠 꽤 자리를 잡은 문화고, 그래서 케이크가 싹 다 동이 났단다. 그러고보니 12월 초 집 근처의 좀 규모가 큰 베이커리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전 주문을 받는다는 포스터를 몇 개 붙여둔 것을 본 것도 같았다. 상견례 준비를 하느라 친구 추가해 둔 떡케이크집 카톡 채널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을 접수한다는 소식도 본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것들을 보면서 내가 했던 생각은 하나 뿐이었다.


 크리스마스는 하순인데 월초부터 웬 난리들이람.


 우리 집은 부모님 모두 불교를 믿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내게 그냥 착한 어린이가 상 받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졸업식을 할 때 표창장을 주듯이 부모님이 연말에 자녀에게 선물을 주는 날. 그러니 실내에 나무를 들여놓는 요상한 일은 당연히 한 적이 없고, 케이크는 어차피 동생이 12월 말에 생일이기도 해서 굳이 안 사다 먹은 것 같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로는 크리스마스는 내게 어린이날과 비슷한 날이 됐다. 보너스 휴일이라서 좋은 날. 예수님,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예랑이와 함께 보낸 두 번째 크리스마스였다. 작년에는 집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고 미니 트리를 같이 꾸몄다. 케이크는 없었다.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음악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보고, 노점에서 파는 포근한 귀도리를 커플템으로 한 쌍 장만하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했다. 작년보다 데이트가 훨씬 특별해졌고, 저녁 식사의 마지막 코스인 디저트로 달달하고 폭신한 빵이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케이크는 없었다.


 케이크가 없다고 딱히 아쉬운 건 없다. 우선, 둘이서 치즈케이크 한 조각 겨우 나눠 먹을 정도로 둘 다 유독 케이크를 많이 먹질 못한다. 그리고 곧 웨딩촬영이라 루돌프 모양 초콜릿 케이크든 산타 모양 딸기 생크림 케이크든 뭐든 간에 다 먹었다간 후회할 것이 뻔하다. 무엇보다도 망가지지 않은 것을 고칠 필요가 없듯이, 완벽했던 데이트에 케이크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전이라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도 다른 휴일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결혼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1년을 보내는 중에 크리스마스가 닥쳐왔다. 그래서 예랑이가 미리 귀띔해준 크리스마스 데이트 플랜을 떠올리면 유독 기대되고 설렜다.


 그래서 내년 이맘때 쯤에는 어떤 느낌의 크리스마스를 맞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우리도 크리스마스면 으레 케이크를 사다 먹는 다른 집들처럼, 한 번 쯤은 싸우고 풀어진 뒤일까? 어쩌면 내년에는 케이크를 꼭 사다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로 많이 편해져서 집돌이, 집순이 본능이 나오면 밖으로 나돌기 싫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쪼끄만 1호 케이크 하나 사다가 먹으며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특선 영화 보는 크리스마스도 나름의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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