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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이 Oct 03. 2023

10. 또 다른 동반자, 친구

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아빠의 친구분 중에 최근 간암으로 수술을 하신 분이 계셨다. 아빠는 3월 말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해서 5월에 임파선암 판정을 받으셨고, 그분은 3-4월쯤 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분이시고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골프를 치는 친한 친구였다.


아빠와 같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다니셨다. 거기에서 수술을 받으셨다. 아빠와 똑같이 1인실에 입원하셨었다. 아빠는 입원한 동안 그 친구분 얘기를 많이 하셨다. 그놈도 여기 누워있었겠지, 그놈은 한 달이나 있었으니 지겨웠을 거야, 나가면 그놈이랑 얘기 많이 해야지.


그 친구분이 어제 아침 돌아가셨다. 어렵게 간 절제 수술을 하고 고작 3-4개월 만이다. 간을 대부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음에도 금방 회복하셔서 운전도 직접 하시고, 같이 만나 점심도 하셨었다. 이제 잘 회복만 하면 되겠다 싶었다.


병원에서는 수술 후 지속적인 항암치료를 권했지만 그 친구분은 힘든 치료는 하기 싫으시다며 거절하셨었다. 그러고 어떤 한방병원에 잠시 계시다가 퇴원하셨다. 그런데 이후에 복수가 차서 결국 다시 수술했던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다. 알고 보니 그 사이에 조금 피곤하면 집 근처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거나 한약을 지어 드셨단다...




그 친구분이 돌아가시기 열흘 전, 아빠는 다른 고등학교 동창분들과 함께 그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사실상 마지막 대면이었다. 이미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단 말을 전해 들은 후였다. 병실 면회는 여전히 불가능이라 병원 로비까지 사모님이 친구분의 휠체어를 밀고 나오셨다고 했다. 이미 복수가 차서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던 친구분들은, 그래도 잘 이겨내라고, 괜찮아질 거라 의례적인 인사말을 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또 오지 말라고 하셨단다. 와줘서 고맙단 말도 없었다고 하셨다.


어제 돌아가셨단 얘기를 나에게 전하시면서, 아빠는 그날 마지막으로 만났던 친구분의 얼굴이 눈앞에 삼삼하다고 하셨다. 분명 같은 암환자니 같이 잘 치료받아 완치하고 골프도 다시 치러 나가고 종종 만나 각자의 투병기를 풀어내며, 또 다른 병으로 죽을 때까지 잘 지내길 바라셨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친구분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빠와 병원에 간 날. 그 병문안을 했던 로비에서 점심으로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여기에 열 명 정도가 이렇~게 앉았었어, 라고 마지막 그날을 회상하셨다. 두어 달 정도가 지나고, 최근 아빠의 카카오스토리를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엔 아빠가 간간이 올린 사진마다 돌아가신 친구분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보기 좋네", "자네가 어머님을 닮았구만", "조만간 보세".


아빠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잘 안 간다.




나도 모처럼 친구를 만났다. 대학 입학 하자마자 친해져서 거의 매일을 함께 했고, 그 친구 집이 대학과 가까워 종종 술 마시고 차가 끊기면 그 집에 가서 자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도 했었고, 우리 집에 그 친구가 놀러 와 우리 부모님과 만나기도 했었다. 나는 최근 그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봐줬었다. 지난번 얘기했던 소위 술꾼도시여자 중 한 사람인 ㅅ이다.


ㅅ은 만나자마자 아빠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 부모님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그 친구 부모님은 한창 건강하셔서, 최근엔 스페인 순례길도 다녀오신 분들이다. 간단히 아빠의 근황을 전하고, 너도 이제 부모님 건강 잘 챙기라고 말했다.


한때는,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의 순위를 늘어놓다 보면, 당연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마지막 순서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을 겪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여전히 상위권은 아니지만 ㅎㅎ 그래도 꽤나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가족이나 연인과는 또 다른, 친구.




아빠는 여러 가지 인연으로 친구분 장례식의 편의를 봐주게 되셨다. 이후에는 49재까지 아빠와 연이 닿아있는 절에서 진행했다. 사모님이 너무나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 참 아이러니하다. 죽은 다음에야 드러나는 인연이라니. 아빠는 "죽은 다음엔 다 소용없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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