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이 Feb 26. 2024

16. 보충수업 (?)

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6차 항암이 끝나고 한 주 뒤에 CT를 찍었고, 또다시 한 주가 지나 PET-CT를 찍고 골수검사를 했다. 아빠는 골수검사를 제일 힘들어하셨다. 뻐근한 주사의 느낌과 검사 후 계속되는 허리 통증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그 불편함이 채 가시기도 전, 다시 1주일이 지나고 진료를 보았다.


치료 경과가 좋지만 아직 골수에도 조금 남아있으니 8차 항암까지 가자고 하셨다. 8번째 까지는 보험도 적용된다고 하셨다. 그 이후에는 다시 중간 검사를 해 본 후, 아마도 잠깐 쉬고 다른 약을 사용해야 할 거라고 하셨다. 림프종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아형)가 있는데, 아빠는 비교적 드문 아형이라 딱 맞는 약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소포성 림프종에 사용되는 약이 여러 임상을 통해 아빠의 아형에도 효과가 입증되어 있기에 그 약을 사용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진료를 보고 나오면서, 병원을 믿고 하자는 대로 따르자고 하셨던 아빠도 투덜대셨다. 고작 항암 주사 두 번 더 맞고  골수검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조금은 기대를 하셨던 것 같다. 말씀으로는 언제부터 내 몸속에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암이라는 게 고작 주사 6번에 사라지겠냐, 하셨지만... 그래도 거의 깨끗해졌다는 얘기를 분명 듣고 싶으셨으리라.


언젠가, 아빠가 저녁을 드시고 조금 늦은 시간에 들어오신 날이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기사와 얘기하다 보니 기사님의 아내분이 아빠와 같은 교수님께 림프종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내분은 4기였는데도 지금은 때때로 가서 관찰만 하고 있다고 했다. 분명 아빠도 그 얘기를 듣고, 기대를 하셨을 것이다.




9월, 7차 항암 하는 날이 되었다. 끝인 줄 알았는데 아직이네요, 라고 아빠와 병원에 가며 웃었다. 주사 맞는 건 별거 아니라고 하셨다. 아빠의 경우, 항암 주사를 맞는 데에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 보통 다인실 침상에 배정되어 아빠는 누워 주사를 맞으시며 자다 깨다 하시고 나는 그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있는다. 할 일이 많아서 노트북을 챙겨서 병원에 가긴 하는데, 결국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지친 머리를 벽에 기대 쉬거나 아빠랑 대화를 했다.


아빠가 잠에 드시고 잠깐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가 MRI 검사실이 어디냐고 물으셨다. 손에 든 안내지를 보니 근처라서 저랑 같이 가시자고 안내해 드렸다. 다음날이 바깥어른 검사이신데 시간이 빠른 오전이라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하루 일찍 와 보셨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 엄마, 아빠에게 이 얘기를 했다. 정말로 보호자 없이는 큰 병원에 다니기 힘들다는 점에 다시 한번 모두가 동의했다.




8차 항암 하는 날은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일지 아닐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주 후, 오전에 골수검사를 하고 오후에 PET-CT를 찍었다. 골수검사가 끝났다고 해서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니 아빠가 그날 마지막 타임이라 검사실엔 아빠뿐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빠보고 전문가가 다 되셨다고 웃었다. 골수검사는 금식이 아니었지만 PET-CT는 금식이었기 때문에 아빠는 점심을 드실 수 없었다. 나도 같이 굶다가 아빠가 검사 들어간 동안 나는 챙겨 온 떡으로 급히 요기를 했다.


검사하고 1주일 후에 진료를 본다. 아빠는 8차까지 항암 하시는 동안 일 때문에 여러 번 외국다녀오셨다.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5박 6일. 각별히 조심하시라고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알겠노라 하셨음에나중에 얘기 들어보면 생선회도 드셨다고 한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그나마 아빠의 체력이 받쳐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례들을 보면, 정말 암환자인가 싶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했다 하니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잊고 지내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긴장이 되었다. 얼마나 좋아졌을까? 더 나빠지진 않았을까? 앞으로는 어떤 치료를 받게 될까? 방사선? 이식? 신약? 아빠는 괜찮으실까?


아빠는, 내 곁에 얼마나 더 계실 수 있을까?


오랜만에 글을 썼습니다.

혹시라도 기다려 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ㅠㅠ

아빠는 여전히 건강한 암환자로 지내고 계십니다!

이미 구정까지 지나버렸지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15. 사람 by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