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이 Sep 23. 2024

17. 작은 이벤트의 연속

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8차 항암을 하고 2주 후에 골수검사, PET-CT를 찍었고, 3주 후에 교수님을 만났다. 두근두근했다. 과연 뭐라고 말씀하실까? 3주 동안 일부러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했다. 괜한 입방정이 될까 봐. 좋은 결과가 나의 설레발 때문에 입 밖으로 나와 훨훨 사라져 버릴까 봐. 나쁜 결과가 나의 걱정 때문에 자리 잡아버려 현실이 되어 버릴까 봐.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100점 만점이면 80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 무리해서 항암을 더 하지는 말고 조금 지켜보자고 하셨다. 워낙 느린 암이니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안심이 되었다. 일단은 한 달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처음 진단 때부터 줄곧 인터넷 속에서 다른 림프종 환자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고 있다. 하지만 림프종에는 아형이 무수히 많아서 같은 림프종 이어도 다 다르다. 아빠는 우유도 잘 드시는데, (식사 교육 때에도 멸균우유라면 괜찮다고 했다) 어떤 아형에선 유제품은 금물이라고도 한다. 유제품 속의 유산균도 균이라고... 아형마다 증상도, 부작용도, 치료법도 모두 다르다. 심지어 같은 아형이어도 원발 위치나 전이 위치에 따라 또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다양한 글들을 읽다 보면,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불응, 재발, 전이, 소풍... 아빠는 다른 환자분들 보다는 상황이 좋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버린다. 나는 속이 좁고 이기적인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마음이 불쑥 솟구쳐 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부끄럽다.


그런데 암환자인지 모를 정도로 건강하시다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는 사연도 종종 눈에 띈다. 주로 막기 어려운 폐렴이나 패혈증 같은 이벤트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철렁한다. 아빠도 언제든 그렇게 되실 수도 있으니... 그래서 매일매일이 노심초사, 예민한 상태이다.


계속해서 인터넷의 사연들을 찾고 찾고 찾아본다. 무언가 불편하다, 라고 하시면 일단 병원에서 받은 예전 교육 자료들을 들춰본다.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한다. 간호사 선생님께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터넷도 파고든다.




어느 날부터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마사지도 해 보고 파스도 붙여보았지만 통 낫질 않으신다고 하시다가, 어떤 날에는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하시다가, 꽤 오래갔다. 원래도 허리 통증은 있으셨던지라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해외에 출장 가셔서는 통증이 심하니 병원에 알아봐 달라고 연락이 왔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 보니 먼저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 뼈, 근육의 문제인지 1차적으로 확인해 본 다음에 MRI를 찍으라고 했다. 그래서 예전에 다니셨던 허리 전문 병원으로 가려고 문의해 보니 기존에 찍은 CT가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하길래 일단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혼자 병원을 간 건 처음이었다. 항상 아빠의 보호자로 함께 했었는데... 미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출력해서 준비한 서류 대리 발급용 확인서 등을 주고 CT 영상과 판독지를 수령했다. 허리 병원 예약을 잡고 아빠를 기다렸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아빠는 이제 괜찮다고 하셨다. 다행히 병원에 가지 않고도 허리 통증은 사라졌다. 근육통이었을까, 라고 넘어갔다.


그 후 한 달간 가족 모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모두가 사이좋게 3kg씩 살이 쪘다. 아빠는 특히 배가 많이 나오셔서, 농구공 같다고 웃다가 불현듯 복수가 찬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관련된 증상을 인터넷에 찾아보고 또 간호사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다행히 복수 찬 증상과는 맞지 않아 단순히 살이 찐 걸로 결론 내렸다.


여전히 손끝과 발끝이 저리다고 하신다. 항암 부작용 중 하나인데, 오래가는 경우에는 1년 정도 지속된다고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약을 처방받기도 한다고 들었다.




매일이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살얼음판 위에는 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빠는 근처의 푹신한 땅에서 아빠의 속도로 걷고 있다. 가끔 휘청이시는 모습을 보면 내 발아래 얼음에서 쩌적 하는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자세를 잡아 심호흡을 하고 다시 아빠를 보면, 아빠는 다시 걸어가고 계신다. 나는 그걸 멀리서 지켜본다. 언제까지고.



많이 바빠져서, 매주 올리던 글을 이제야 뒤늦게 올립니다.

혹시라도 기다리셨던 분들께 죄송합니다...ㅠㅠ

8차 항암이 끝나고 11개월이 지났습니다.

아빠는 여전히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벌써 17번째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는 20편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남은 글들도 읽어주실 거죠? 얼른 쓰도록 하겠습니다.


추석이 아닌 하석夏夕이 지나니 날이 추워졌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16. 보충수업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