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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이 Sep 26. 2023

9. 첫 항암치료

암환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 아빠는 2023년 5월 '변연부 B세포 림프종 / MALT Lymphoma'(혈액암/림프종/임파선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 PC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첫 항암치료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실제로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먼저 지난 골수와 뼈 검사 결과를 통해 얼마나 전이되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야 그 단계에 맞는 약물 치료를 시작할 터였다. 그리고 피검사. 현재 몸 상태가 항암 약물을 버틸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해야 했다.


마지막으로는 케모포트 삽입 여부. 항암 약물이 워낙 독하다 보니 자꾸 주사를 놓다 보면 혈관이 손상되거나 숨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오른쪽 쇄골 아래에 정맥(?)으로 바로 주입되는 포트를 설치한다고 한다. 어떤 치료를 할지, 약물 치료가 가능한지, 케모포트로 할지 그냥 팔뚝에 놓을지는 진료 당일날 결정되었다.


먼저 채혈을 했다. 금식을 했던 터라 병원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 마침 거의 다 먹은 참이라 정리하고 진료실로 올라갔다. 진료실 옆 상담실에서 항암교육을 받았다. 앞으로 어떤 치료를 어떻게 하게 되는지,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심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거의 한 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식습관센터에 가서 또 식사 교육을 들었다.

 



R-CVP라는 치료 요법을 받기로 했다. 먼저 3주 간격으로 총 6번 약물 치료를 받게 된다. 3차가 끝나면 CT를 찍고, 6차가 끝나면 더 정밀한 CT를 찍는다. 그러면서 치료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며 이후 방향을 결정한다. 약물 치료를 추가할지, 방사선치료를 할지 등. (혈액암인 임파선암이기 때문에 수술은 없다.)


물을 많이 마셔서 방광에 남는 약 성분을 배출시켜줘야 한다. 호중구 수치가 떨어지면 면역력이 떨어지니 특히 위생에 주의해야 한다. 설사를 하거나 변비가 생기면 처방약을 먹어야 한다. 머리가 빠지면 모자를 써서 두피를 보호해야 한다.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 홍삼이나 건강식품은 먹지 않는다.


종합하면 물 많이 마시기, 골고루 잘 먹기.

 



1시가 조금 안되어 혈액내과 교수님 진료를 받았다. 골수에도 전이가 보이니 오늘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하셨다. 아빠에게 컨디션을 물어보니 아주 좋다고 하셨다. 아빠는 증상이 없으니 실감이 안 나실 정도였다. 그런데 임파선암 중 이렇게 진행속도가 더딘 암들은 증상이 없는데 진행되기도 한단다. 게다가 골수 전이가 확인되었으니 금방 퍼질 수 있어서, 항암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느린 암 치료에는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첫 차수 때에는 매주 병원에 와서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길 권하셨다. 또한 골수 침범이 있으니 6차가 끝나면 골수 검사도 또 하자고 하셨다. (아빠는 골수 검사를 가장 힘들어하셨다. 아파서가 아니라 뻐근한 통증과 하루종일 누워만 있어야 해서...ㅎㅎ)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감염이다. 요즘은 표적 치료를 하기에 암세포만 골라 죽인다고 하지만 아직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래된 전통적인 항암제도 같이 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지거나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특히 폐렴에 걸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하시며 만약 열이 38도 이상, 한번 이상 열이 나면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한 번 열이 나서 타이레놀 먹고 내리면 괜찮다시며.




1시 반에 케모포트를 삽입했다. 한 50분 정도 걸렸다. 그 사이에 항암 약물 치료실에서 전화가 왔다. 끝나자마자 바로 오라고 했다. 아빠가 나오셔서 엑스레이를 찍고 항암 약물 치료실로 갔다. 잘 몰라서 기다렸는데 금세 또 전화가 와서 앞에 와 있다 하니 바로 침상을 배정해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사 맞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빨리 배정하려 하셨던 것 같았다.


... 3시에 맞기 시작한 주사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으니 말이다. 오래 걸릴 거란 건 알고 있었다. 부작용이 심하게 날 수도 있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지친 건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간이 애매한 분들은 꼭 식사 후 주사 시작하시길! 아니면 주사 맞으며 간단히 먹을 걸 챙기세요! 저랑 아빠는 초콜렛을 계속 먹었어요!)


표적치료제 하나가 문제였다. 몸에 처음 들어가는 약이니 부작용이 생길 거라고 하셨다. (이후에는 동일한 약이 10분 내로 맞을 수 있는 약으로 바뀐다. 신기하다.) 3시부터 주사를 맞기 시작했는데 한 30분 지나니 울렁거리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주입을 멈추고 부작용 반응을 줄여주는 주사를 추가했다. 또 괜찮아지셔서 다시 주입을 시작했다.(이런 식으로 환자의 반응에 따라 약 주입 속도를 조절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빠는 살짝 잠에 드셨고, 울렁거리는데 포카리나 사이다 같은 게 좋을 것 같아 잠시 사러 나갔다. 하필 당시에 편의점이 폐점 준비를 하는 중이라 물건이 없어 다른 곳까지 들렀다 가느라 한참만에 돌아갔는데, 그 사이에 심하게 오한이 왔었다고 한다. 의료진 선생님들까지 오셔서 응급처치를 하고 돌아가던 길이셨다.


잠깐이었지만... 자리를 비운 내 자신을 탓했다. 여전히 덜덜 떠는 아빠에게 얇지만 이불보를 가져다 한 장 더 덮어드리고 괜히 음료수 사러 갔네요, 하며 아빠의 다리를 주물렀다. 심하게 추워하니 옆자리 병상 보호자 분이 간호사를 불러주셨다고 한다. 이후로는 자리를 비울 때마다 비상벨(너스콜) 스위치를 아빠 손 근처로 옮겨드렸다. 기껏 보호자로 따라와 놓고선 정작 필요할 땐 옆에 없었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어쩔 수 없었어, 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래도'라는 후회가 뒤따랐다. 이후로는 주사 맞으러 갈 때마다 최대한 옆에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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