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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Aug 29. 2023

프랑스엔 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많나

프랑스는 한국어를 사랑하나.


유럽 몇 개국을 가보며 프랑스만큼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많은 나라를 못 봤다.

가뭄에 콩 나듯 유명 박물관 미술관 등에 2~3개를 본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프랑스는 달랐다.

루브르박물관부터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바토무슈까지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줄줄이 있었다.

가보거나 확인한 것만 해도 이런데 전수 조사를 하면 더 많을 테다.


책 '유럽도시기행'에서 유시민 작가는 "파리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여행지여서 루브르와 베르사유 궁전뿐 아니라 오르세 미술관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유시민 작가는 파리를 5일 정도 관광했고 오는 날 가는 날을 제외하면 3일 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며 이 같은 감상평을 내놨다.

유럽에서 이른바 관광명소라는 곳을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여겨본 것이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여부였다.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 작품이나 명소의 이해도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리가 단순히 한국인이 여행하기 좋아하는 도시여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루브르박물관의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한국항공협회 통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유럽 국가는 독일(13만11명)이었다. 그다음으로 프랑스(10만8610명), 튀르키예(9만1744명)였다.

코로나 이전 통계에서도 프랑스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유럽 나라 중 독일, 영국 등과 함께 상위권에 속했다.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구비해 놓은 관광지를 많이 보지 못했다.

단순히 방문객이 많다고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많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지천에 널린 프랑스는 특별했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한 해 9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세계 최대 관광국 프랑스는 한국을 어여삐 여겨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많이 만들었을까.


하지만 프랑스에서 1년에 고작 20~30만명 정도 방문하는 한국의 영향력이 클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프랑스 한 통계를 보면 2018년 프랑스를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1천300만명이 찾았다.

이어 독일(1천230만명), 벨기에·룩셈부르크(1천160만명), 스위스(680만명), 스페인·이탈리아(670만명), 네덜란드(470만명) 순이었다. 

유럽 국가가 프랑스 전체 방문객의 70%를 차지했다.

관광객 점유율이 6.4%인 아시아에선 중국이 220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동 140만명, 인도 60만명, 일본 50만명 등이었다.

관광객 수가 적어서인지 한국은 통계에 빠져 있었다. 일본 방문객 점유율이 0.5%였으니 한국은 최근 통계를 미뤄볼 때 0.2~0.3% 정도가 아닐까 추정해 볼 뿐이다.

프랑스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미미한 존재감을 보인 한국을 상대로 관광대국으로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서비스를 베푼 아량을 보인 것일까.

베르사유 궁전의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안내 표시

한국 정부가 많은 여행객이 찾는 프랑스에 적극적인 관광정책을 요구해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 한국 외교부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해외 주요 박물관, 미술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확대 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세계 주요 관광지에 우리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선진 문화 국가로서 위상을 드높이려고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매년 예산을 마련해 이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국민 의견을 청취해 어느 한 나라에 편중되지 않게 골고루 시행 중이다.

이 사업으로 프랑스 일부 박물관과 미술관에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설치됐겠지만 한정된 예산과 시행 시기를 고려해 보면 프랑스의 모든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외교부가 지원했다고 보기엔 무리다.

결국 상당수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는 프랑스 측이 직접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물론 몇몇 관광명소는 대기업이 후원해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갖추기도 했다.)


한때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에서 영국과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며 불어 문화권을 확대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여러 국가들은 여전히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국제연합(UN)에서 영어와 함께 일상 업무에 사용되는 실무언어이며 파리에 본사를 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유네스코에서는 불어를 제1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어는 영어에 밀려 제1 국제 공용어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고 사라질 위험에 처한 방언에 대한 보전 정책까지 펼치고 있다.

어쩌면 자국어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프랑스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싶었다.

프랑스인들은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천주교도를 박해한다는 명분으로 강화도를 침략해 왕의 임시 궁궐인 이궁과 외규장각 등에서 무기, 수천 권의 서적, 국왕의 인장, 은괴를 약탈했다.

이때 프랑스가 가져간 것이 그 유명한 외규장각 의궤였다.

외규장각 의궤는 한국 정부와 문화단체, 국민의 지속적인 요구로 2010년 5년마다 대여를 갱신하는 형태로 돌려받았으나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 정부에 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에 가보면 외국에서 약탈한 문화재 중 보기에 그럴듯한 유형 문화를 전시해 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미라나 보물이나 뭐 그런 거 말이다.

프랑스는 외규장각 문서를 왜 들고 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방치했던 걸까. 

외규장각 의궤는 우리나라 여성 1호 프랑스 유학자인 고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샅샅이 뒤지며 1975년 찾아내기 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굳이 외규장각 의궤를 가져간 것은 문화적, 언어적 감수성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봤다.

사실 들고 가봐야 프랑스 입장에선 별 쓸모없을 왕실 행사 기록이 무슨 효용가치가 있었겠나 싶다.

그럼에도 굳이 외규장각 문서를 들고 간 건 프랑스 약탈자가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의 외규장각 의궤에서 미적 감각이나 우수성, 새로움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외규장각 의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우리나라의 끈질긴 요구로 외규장각 의궤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긴 했지만 프랑스 측의 행동도 조금은 낯설었다.

우리 입장에선 이제야 귀중한 보물과 문화재인 의궤를 돌려받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약탈자 프랑스의 행위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가 보여준 면모와 달랐다.

영국 등은 한번 빼앗은 문화재와 보물을 절대 돌려주지 않았다.(간혹 예외는 있겠지만)

한번 돌려주면 국보를 빼앗긴 식민지 국가들이 우리 것도 돌려달라고 벌떼같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할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영국의 경우 약탈한 문화재로 가득 채운 대영박물관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 하찮은 시혜를 베풀 뿐이다.

프랑스가 고심 끝에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주는 결정을 한 건 제국주의 강대국 출신 국가로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 테제베의 한국 수입에 대한 대가로 의궤를 돌려줬다는 말도 있다.)

5년마다 임대 갱신 방식으로 의궤를 반환한 건 다른 식민지 국가 시선을 의식한 최소한의 방어책이었을 것 같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한 것은 먼훗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사료의 가치를 일찍 알아본 것은 아니었을까.


난 이런 프랑스의 문화적, 언어적 감수성과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다른 영미권 나라보다 훨씬 많은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는 배경이 아닐까 싶었다.

프랑스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 언어에 대한 배려도 깊다는 인상을 받았다.

언어는 사고와 문화, 생활방식 등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거리엔 개똥이 널렸고 변냄새와 지린내까지 났지만 왠지 자유로웠던 프랑스 파리는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과 독어를 사용하는 독일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삶을 지배하는 언어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어찌 보면 웅얼거리는 것 같고 물 흐르듯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프랑스 파리 여행 때 프랑스 국립도서관 로비 의자에 앉아 고 박병선 박사의 외로운 싸움을 지레 짐작해 보고 뭐 이런 혼자만의 상상을 해봤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에서 찾아낸 또 다른 업적인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전시가 7월에 끝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결론은 여행을 하면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는지 꼭 물어보고 없다면 '참 유감이네요 다른 곳은 있던데'하고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지자는 거다.

한 사람 두 사람 계속 물어보고 말하면 상부에까지 말이 올라가기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한국 외교부가 예산을 지원해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만들고 있는데 국민의 이런 한마디 말들이 모여 예산을 아끼는 애국이 되고 국위를 선양하는 길이 된다.


지난 6월 스웨덴 스톡홀름 유니바켄에 이메일을 보내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설치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경험이 있다.

진심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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