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했다는 오만함에 대해.
지난겨울까지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였던 김초엽 작가는, 이제 소설을 쓴다.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의 세계를 특유의 분위기로 손에 잡힐 듯 그려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해온 신인 소설가 김초엽.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출간되었다.
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배명훈, 김보영으로부터 "작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고, 작품을 통해 그 질문을 다른 사람들의 코앞에까지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을 거친 결과, 작가와 작품은 스스로 쨍하게 아름다워진다. 이 글 '관내분실'처럼" "슬픔에 좌절하지 않고, 어쩌면 영원히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인생과 생명을 걸고 그 의지를 끝까지 관철하려 한다는 데서 이 작품('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감동을 준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등단작 '관내분실'은 "모성애라는 쉬운 답을 피해 이 어려운 길을 택한 것만으로도 흡족한데, 그 과정 끝에 놓인 장면이 정말이지 'SF적'으로 참 아름다워서, 적어도 우리가 '이런 SF'마저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졌다"라는 평을 받으며 SF문학에 대한 비평가들의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그 결과 신인소설가로서는 드물게 등단 일 년여 만에 「현대문학」 「문학3」 「에피」 등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작품으로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
출처 : 알라딘
장편 소설이 아닌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으로, SF적 요소들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 상상적인 요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하지만, 어딘지 익숙하고 겪어 본 내용들이 많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우리들의 감성에 적합하게 담아내는 것이 포인트가 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흐릿한 느낌의 하늘을 담은 표지의 그림은 여러 행성이나 태양처럼 보이는 구체들이 떠 있었습니다. 이는 영상화된 우주 배경의 영화들과 닮아 있었으며, 해당 도서가 전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반적인 분위기인 SF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딘지 친근한, 현재의 상황과 비슷하기에 어딘지 모호한 느낌을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표지를 시작으로 이어질 내용들이 궁금하게 만들었고,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를 읽는듯한 방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보다 150년은 뒤의 세계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분리된 다른 장소를 보여주는 배경을 담고 있는, 편지라는 형태로 소개하는 듯한 초대장을 낭독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보여주고픈 세상으로의 초대장처럼 느껴졌으며, 앞으로 펼쳐진 이야기들이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SF 세상으로의 초대가 아닌 감성적인 세상으로의 초대를 받았다는 것으로 인지했고, 묘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해당 도서가 소설집이기에 보여주는 시대적, 장소적 배경이 계속해서 바뀌어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바깥에서 시작해 뚜렷하게 분리된 지구의 사회, 다시 외국을 거친 뒤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미래를, 또 다른 현재를, 더 나아가 우리들 틈에 섞여 있는 다른 지적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어쩌면 아예 다른 행성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복잡한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풀어냈고, 흥미와 매력을 충분히 유발하도록 하는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정류장에서의 대화는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가져야 했을 마음가짐 등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녀와 같은 입장일 때, 그의 말처럼 쉽게 포기하고 잊을 수 있을지의 물음에서 시작된 그 말들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결국 가져본 적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일 수도 있고, 아직 고향이 되지 못한 그곳을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런 흥미로운 전개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해'라는 개념은 다소 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영역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 환경, 문화, 경험, 시대,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유추할 뿐이며, 타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일부의 공감인 것 같습니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아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어쩐지 그 가운데 '유사한'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표현은 공유하는 유사한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자는 그런 부분들을 다소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자신만의 감정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갔고, 우리들의 정서에 맞게 잘 풀어 나갔지만 자신만의 시선에 갇힌 듯 보였습니다. 그저 남을 이해하고 싶다는, 알고 싶다는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각 내용들은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저마다의 다른 우주, 다른 지구, 다른 대륙, 다른 국가를 담아내고 다른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느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내용들은 서로 유사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지속적인 '이해'는 각 내용들을 강제적으로 묶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각 이야기들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실들이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혹은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시간 관계없이 엮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각자를 살아가는 어떤 존재가 분명 있습니다. 그들을 창조해낸 이가 있지만, 창조 뒤에는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조해낸 이가 절대자로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을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한다면, 아무런 특별함을 갖추지 못한, 그저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 꼭두각시 인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내용들은 허구라는 틀에 갇혀 활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마치 그들을 타인처럼, 자신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 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은 채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해선 안됐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의도가 더욱더 불분명하게 느껴졌고, 후반에 이르러 완벽하지 못한 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욕심이 만들어낸 촌극으로 느껴졌습니다.
분명 매력적이고 뛰어난 문장이 있고,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휘를 선택했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체에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편협한 시야를 드러내고, 오만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부분들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것들을 표현할 때, '어느 정도'나 '약간' 등의 유연함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P54
분명 다른 장소,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이지만 지금의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새롭지 못할 이야기라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익숙함이,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음이 몰입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희진은 이해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루이의 연속성을,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P91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먹먹하고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어쩌면 그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조금 다른 존재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행성 연작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종류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류드밀라의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P104
어딘지 먹먹한 감정이 들었던 표현들은 루이가 그림을 표현할 때 느꼈던 감정 같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같은 그림이었을지도 모를, 그녀가 갔다 왔다는 곳이 같은 장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그림이 등장했고, 표지부터 이어진 이야기들이 '그림'이라는 전달체를 통해 끊임없이 언급되고 그곳을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했지."
"바꿔 말하면, 언제가 되어도 떠날 기약이 없다는 말이죠."
P172
어린 시절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컵에 물을 따라놓고 그것을 이야기할 때의 차이를 통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방향을 이야기했었습니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와 '물이 반이나 남았네'의 차이처럼 그들은 하나의 현상을 다르게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각자의 입장이 있기 대문에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는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의미가 있나?
P181
대우주 시대가 열리고, 온갖 기술이 발전해도 그리움이라는 존재는 늘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랬고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단지 눈을 돌리고, 외면하고, 그리움을 외부로 멀리 보냈을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하늘이 아닌 다른 하늘로 보내버린 좋지 않은 것들은 우리의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P181~182
어떠한 감정도 제로섬 게임처럼 총합이 0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켜켜이 쌓여가고, 때로는 무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외로움이 늘어간다는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과 함께 기술, 문화 등을 함께 쌓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발전했으며,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지만 분명 주의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주변을 둘러보면 느껴지는 외로움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P182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언제 그녀처럼 자신의 목적지에, 삶에 확신을 갖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녀처럼 150년 이상 살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알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만약 언젠가의 내가 그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단지 조금 더 어릴 때, 젊을 때 그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 방향을 알 때 바로 움직여서 그녀처럼 남은 시간 동안을 아쉬움과 후회로 살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P218
이해랄 한다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통제하는지, 통제되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소유'함으로써 통제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역시나 욕심입니다. 그가 아무리 그녀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말해도, 빈 공간 속에 남아있는 실체가 없는 침묵, 분위기, 감정, 향기를 느꼈다고 해도, 그 물성은 결국 실재하지만 감정까지 실재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P271
과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욕심이며,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같은 입장이 됐을 때, 아니 그저 조금 유사한 입장이 됐을 때, 조금은 그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남이며, 각자가 살아온 방식이 다릅니다.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P318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대상을 완전히 '이해했다'라는 전재에서 벗어나, 그것을 자신의 생각으로 승화한 것 같은 표현입니다. 과연 그 승화가 온전한 이해 후 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해와는 다른 또 다른 무엇인 것 같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들이 많아서 새로움이 다소 떨어집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익숙한 정서에 맞게 잘 꾸려나가기는 했지만, 설정 자체는 크게 새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보다는 감성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듯하며, 감정을 더 많이 담아낸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말하는 시선이 다소 편협하게 느껴졌습니다.
타인을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해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표현이 추가됐다면, 더 부드럽고 탄탄한 감정들이 올곧이 전달됐을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을 통해 초대장을 날렸으나, 새롭지 못한 설정들이 연이어 등장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움을 찾기가 어렵다지만, 그것을 진즉에 포기하고 감성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공감을 넘어선 이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 보였습니다. 타인을 온전히 아는 것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 느껴졌으며, 그 편협함에 다소 사로잡힌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혹은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는 식의 유연함이 있었다면, 보여주고자 하는 배경과 감정적인 면들을 더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어떤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듯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 5개 만점
★★★ (주제 4 구성 6 재미 7 재독성 5 표현력 7 가독성 7 평균 6)
다소 익숙한 배경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려는 좋은 시도가 편협함에 갇혀버린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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