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업과 국가간의 소송, Energy Charter Treaty
Net-Zero,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앞장서서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유럽같은 경우에는 화석연료 점차 폐지하는 방향으로 국가가 개별적인 정책을 시행해나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위해서 저탄소 에너지를 연구하고 관련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국제적인 동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친환경 에너지로의 이동은 기존에 화학 공장, 석유 공장을 깔아놓고 쓰던 기업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일 것입니다. 굳이 에너지 기업뿐만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 이익을 얻던 대주주와 같은 펀드기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를 고소하기로 합니다. 기업이 어떻게 국가를 고소해?라고 하실 수 있지만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상사중재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ISDS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를 활용해 국가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게 됩니다. ISDS는 론스타투자, 엘리엇투자가 우리나라를 고소했던 법적 수단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친환경에너지, 정책과 관련하여 복잡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생소하지만 기업이 국가를 고소한다는 아이디어, 굉장히 흥미롭지 않나요? 에너지와 관련된 고소는 주로 에너지 헌장조약 (Energy Charter Treaty)를 활용하거나 기존의 무역협정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는 약 1달전에 런던의 Lansdowne Oil and Gas 사가 아일랜드 정부를 대상으로 ECT에 기반한 1억 유로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 하였습니다. 오늘, 7월 5일, 유럽 연합은 에너지헌장조약 탈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법적인 원리에서 이러한 소송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현재 이 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무조건적인 탈퇴만이 답인지에 대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CT는 1994년에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이후 해당 지역의 에너지 분야를 유럽지역으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범하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 냉전시대의 끝자락에서 증가하는 유럽의 에너지 소비량과 구소련 국가의 방대한 자원이 만나 에너지 안보와 협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죠. 이 조약은 당사국간의 에너지 관련 투자와 협력을 장려하고 에너지 안보를 촉진하며, 무역과 운송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법적인 틀을 확립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한국은 이 조약의 당사국이 아니지만 가까운 일본, 미국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당사국으로 있습니다. 호주와 러시아는 2021년, 2009년에 탈퇴하였습니다. 이 외의 다른 유럽국가들도 탈퇴하였는데 이는 밑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에너지헌장조약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아까 언급하였듯이, 기업이 국가를 고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럽국가들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조약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회사들이 투자하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줘야겠죠. 그래서 "투자를 보호"하고자 기업들이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한 경우에 국가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헌장의 조항에서 민간 기업이 국가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ECT 10조 1항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 (Fair and equitable treatment) 와 13조 "수용"( Expropriation) 에서 대부분 찾을 수 있습니다.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를 해석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국제관습법의 최소한의 대우, 비엔나 협약의 조항을 이용합니다. 많은 중재재판부는 해당 조항을 "기본적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공정하지 못하게 대우받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조항을 명확히 한 판례에서는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를 위해서는 "1) 투자유치국가가 투자자의 합리적이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기대를 존중하며 2) 투자유치국가는 차별적이거나 임의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3) 투자유치국가는 투명하고 일관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야하며 4) 투자유치국가는 신의로 행동해야하며 5) 투자유치국가는 적법절차와 절차적 정당성을 존중해야하며 6) 정당성의 원칙" 이라고 하였습니다. (Indian Metals v. Indonesia )
13조의 수용이란 법적용어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특정물의 소유권 또는 기타의 권리를 강제적으로 징수하여 국가나 제삼자의 소유로 옮기는 처분"를 뜻합니다. 특히나, 수용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국가들의 규제 도입이나 개편 시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 가장 자주 활용되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이 헌장에서의 수용은 간접 수용도 수용에 포함되기때문에 소송을 당할 여지가 더 넓어지는 것이죠. 즉, 정부에서 어떠한 정책을 시행하였을때 이로 인해 기업이 경영의 손실을 입거나, 통제권을 잃게되거나, 해당 투자가치나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가치가 굉장히 감축되었을때, 기업은 간접수용을 이유로 국가에 손해배상을 제기할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례를 들자면, Nkyomb라는 스웨덴의 회사가 Windau라는 라트비아 자기업을 인수하였습니다. 1997년 Windau는 국유 라트비아 태양광 전력회사 Latvenergo라는 회사와 국가 전력망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상, Windau는 태양전력시설을 건설하고 Latvenergo는 Windau에게서 라트비아 법으로 정해진 기본 요금과 추가금 (Multiplier)를 내고 전기를 구매하기로 하였습니다.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 쯤, 라트비아 법은 첫 시설 가동 후 8년간 두 배의 추가 요금을 낼 예정이었으나 1998년에 라트비아 법이 0.75배수로 추가요금 승수를 바꾼 것입니다. 태양광발전시설이 1999년에 완공된 후에, 모회사 Nkyomb사는 가격과 관련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 때, 간접 수용을 들어 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재판부는 Windau사의 재산을 뻇어간 것이나 경영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것이 아니라며 해당 주장을 기각하였지만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의 침해로 결국 Windau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때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가 인정이 된 것은 Latvenergo가 다른 두 라트비아 회사에게는 두 배 추가금을 지불한 것을 들어 이러한 행위가 차별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ECT 조약 비준 이래 제기된 첫 사건이었습니다.
잠시 재판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재판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국가 재판부, 법원이 아닌 중재재판부를 의미합니다. 국가가 아닌 중재재판은 재판관 패널로 구성되어있으며 보통 중재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와 국가 측에서 선임한 패널들이 합의를 거쳐 재판 패널을 구성하게 됩니다. 유명한 재판소로는 대표적으로 다섯 곳이 있습니다 - London Court of International Aribtration, Stockholm Chamber of Commerce, Hong Kong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 Singapore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 법적 구속력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지만 일단 오늘은 에너지헌장조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투자자 보호의 부작용은 2000년대 들어서 더욱 더 심화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은 이전에 관대한 인센티브를 외국인 신재생에너지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면서 상당한 투자금액을 유치하였는데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2010년에 에너지 회사에게 유리했던 기존의 법률을 개정하게 됩니다.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을 멈추게되면서 신재생 에너지회사들은 스페인을 마구 고소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현재 2023년을 기준, 스페인은 약 51건의 ECT 소송사건이 있으며 신재생에너지 관련 법률 개정으로 인한 손해를 제기하는 소송이 거의 대부분이네요. 이외에도 최근 10년간 제기된 120건 ECT 손해배상청구건 중 약 20개 사건을 제외하고는 유럽연합국가를 대상으로 제기된 사건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미주나 아시아보다 유럽지역에서 해당 조약이 좀 더 깊게 다뤄지는 이유이지 않나 싶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10건 중 8건이 투자자의 승소로 막을 내렸습니다. 손해배상금액 역시 상당한 수준입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안보 문제로 인해 신재생 에너지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ECT 가입국가들은 90년대 석유 화학에너지를 유치하기 위해 수립했던 이 조약들을 다시 보게됩니다. 1)변화된 국제정세와 달리 에너지헌장조약은 시대에 뒤떨어져있고 2)이전에 언급했던 FET, 수용 조항이 확실하게 정의되어있지 않아 무분별한 소송을 진행시켰으며 3) ISDS (투자자-국가간 소송) 시스템의 투명성을 주문제로 비판을 받아왔기에 2017년 조약의 가입국들은 개정절차를 거치게됩니다.
2년간 15번의 협상 끝에, 2022년 6월 4일, 당사국들은 에너지헌장조약 개정판에 합의하였습니다. 주목할만한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재생에너지 기술 보호 - 바이오매스, 수소에너지 등- 포함
2) 영국과 유럽은 에너지 보호 조항을 제외하였으나 10년의 유예기간 적용
3) 유럽연합 내에서는 ECT 기반 ISDS 소송 금지 (해당 내용은 관련 유럽법원의 판결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하단 참조 부탁드립니다)
4) FET, 수용 조항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자 함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현대화된 조항들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지원하고 헌장 조약을 ISDS에 대한 현대적 접근 방식에 맞게 하기 위해 변화시켰다는 의견, 그리고 "규제할 권리"에 대한 새로운 조항에 따라 기후 변화 완화를 합법적인 정책 목표로 하였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끌어낸 한편, 대부분의 비정부기관 및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10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며 이미 스페인을 통해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몇년간의 소송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였기에 달갑게 여기지지 않았습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작년 그리고 2016년 즘에 탈퇴를 하였지만 여전히 ECT 소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수소와 바이오매스와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mass-usage적인 측면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더 많은 에너지 분야를 보호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제기되면서 탈퇴를 요구하는 환경단체들이 유럽연합을 고소하겠다는 등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ISDS 투명성에 관한 조항도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비판 역시 있었습니다. ISDS는 중재절차이며 일반적인 소송과정과는 달리 영업비밀을 이유로 세세한 관련 과정들이나 문서들이 공개되지 않습니다. 패널선정도 재판부가 법률전문가일 필요가 없기에 좀 더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었습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이외에도 여러 국가들이 ECT가 파리기후조약, 유럽연합의 기후법안과 상충하니 탈퇴를 하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갔습니다. 폴란드, 슬로베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에서는 공개적으로 탈퇴를 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습니다.
몇년전 환경정책의 일환으로 네덜란드가 화석연료를 폐지시키는 법안을 발제하였다가 RWE라는 독일의 대규모 에너지회사에게 소송을 당했습니다. 작년 독일정부에서 RWE를 구제해줄테니 네덜란드 소송에서 발을 빼라고 해서 소송을 취하시켰었습니다. "화석연료 폐지"라는 특정한 정부정책으로 인해 화석연료를 취급하는 회사에서 소송을 하는 것은 흔히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정책의 기조로 보아 전반적으로 화석연료를 폐지 혹은 축소하려고 할텐데 그럼 모든 회사들이 소송을 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 정부 입장에서는 역시 좋지 않겠죠.
참고로 최근 영국 회사가 아일랜드를 소송한 일은 환경정책 때문이 아니라, 아일랜드에 있는 offshore oil을 개발하기 위한 허가가 나지 않아서 건 소송이었습니다. 아일랜드 입장에서는 정책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재정적인 면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유럽국가들의 대거 탈퇴 러시가 이뤄지면서 유럽연합은 약간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유럽연합은 개별 국가들과 함께 조약 개정 절차에 참여해 그들을 대표로 개정하겠다고 조약국들이랑 말을 맞췄는데 막상 와보니 너도나도 싫다고 뒤집어지고 있었던것이죠. 유럽연합은 우선 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며 어차피 10년후 소송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 탈퇴해도 어차피 20년동안 조약에 근거해 소송을 당할 수 있다며 입장을 견고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탈퇴를 결심한 국가들의 인구는 유럽 연합의 50%를 넘어섭니다. 유럽국가가 없는 유럽 연합의 국제조약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결국 유럽연합은 2023년 7월 5일에 탈퇴를 선언합니다. 내용인 즉슨 ECT의 내용이 유럽연합의 환경 정책, 관련 기후 법률, 그리고 유럽연합법원의 결정과 상충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ECT를 탈퇴했다고 해서 소송의 위험이 줄어들까요? 환경단체는 우선 ECT를 탈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점은 많이 없다고 봅니다.
ECT를 탈퇴하는 것에는 우선 정부가 해당 조약에 가입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ECT는 에너지 관련 국제 조약이긴 하지만 그 바탕자체가 화석연료 투자 보호가 깔려있어 친환경정책을 지지하는 정부가 화석연료를 지지하는 격이라는 것이 환경단체의 주장입니다.
ECT를 탈퇴한다고해서 소송위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1) "20년 sunset clause"로 인해, 조약에서 탈퇴한 후에도 20년동안은 투자자의 보호권리가 유지됩니다.
2) ECT가 아니더라도 국가간 투자조약 (IIA) 혹은 자유무역협정 (FTA)에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맥락의 투자자보호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소송의 위험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여전히 악용의 여지는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독일의 자사를 거쳐 유럽정부에게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해당 조약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창구가 남아있습니다. 국제기구 Unctad에 따르면 화석연료 기업들은 ISDS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원고입니다.
앞으로 향후 몇년간은 많은 국가들에게 기후관련 소송은 매우 뚜렷한 위험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ISDS와 ECT의 개정이 필수적이겠지만은, 국가 측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시대에 맞게 빠른 정책을 디자인하는 것만큼이나 소송 위험을 최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운용할지에 대한 고려, 소송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방어할지에 대한 계획수립도 필요해보입니다. 또한 앞으로의 국제조약에서는 기후정책과 관련한 조항을 개별적으로 넣는 것도 앞으로의 소송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https://www.wfw.com/articles/isds-and-climate-change-what-happens-next/
https://www.energychartertreaty.org/cases/list-of-cases/
https://ec.europa.eu/commission/presscorner/detail/en/ip_23_3492
https://www.europarl.europa.eu/doceo/document/TA-9-2022-0421_EN.html
https://www.biicl.org/files/3918_2003_nykomb_v_latvia.pdf
https://www.mdpi.com/2071-1050/15/6/5006#B2-sustainability-15-05006
https://www.acerislaw.com/fair-and-equitable-treatment-in-investment-arbitration/#_ftn16
https://blog.jusmundi.com/the-new-energy-charter-treaty-in-light-of-the-climate-emergency%E2%80%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