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우 Mar 12. 2024

보통의 우리들

<보통의 카스미> 를 보고나서


 <보통의 카스미>는 2022년 개봉한 일본 영화로 한국에선 작년 여름(2023년 7월) 개봉했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카스미 said “난 연애도 안 하고 싶고 애초에 그런 감정도 없고, 혼자서 살 수 있고, 그게 쓸쓸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불행하게 느낀 적도 없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게 나인 걸 어떡해?” 나는 나일 뿐! LOVE MYSELF! 혼자인 게 가장 행복한 보통의 ‘카스미’가 온다!]



 주인공인 카스미는 시놉시스에도 나와 있듯 연애 감정이랄 것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연애와 결혼이 당연하다는 세상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카스미가 일상을 살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인물은 두 사람으로 야시로 츠요시(이하 야시로)와 요나가 마호(이하 마호) 두 사람이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야시로 츠요시는 전 초등학교 교사로 모종의 이유로 다시 고향에 돌아와 유치원 교사를 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 모종의 일은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그가 게이라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어 보인다. 야시로는 함께 일하게 된 카스미와 연애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은 게이라며 커밍아웃한다. 이를 카스미는 “그렇구나.” 라며 아무렇지 않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야시로는 모든 사람이 너 같았으면 안 돌아왔을 거라고 말한다. 모종의 유대감을 느낀 카스미는 다시 한번 정말 연애를 피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꺼내며 어린시절 고백을 받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쭈뼛대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대해 야시로는 “그 나이대면 그럴 수 있지.”라고 답하고 카스미는 급히 말을 돌린다.

 


이 장면은 유성애자와 무성애자의 간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야시로 본인도 다른 사람인 본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한 곳에서 떠나왔지만, 본인과 또 다른 사람인, 연애감정이랄 게 없는 카스미를 선뜻 이해해주지 못한다. 카스미 또한, 이해 받지 못할 거란 생각에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이는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비헤테로-유연정-유성애자와 에이엄브렐라의 간극은 헤테로-유연정 유성애 퀴어와의 간극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크다. 





 

두번째로 주목할 관계는 마호와의 관계이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중학교 동창인 마호와 카스미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카스미는 유치원에서 상영할 신데렐라 디지털 그림연극을 맡게되는데, 이에 관해 이야기하던 마호는 여자의 인생에 연애와 결혼이 전부냐며 버럭 화를 낸다. 그에 동의하며 카스미는 다시 한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밝힌다. 마호는 대본을 바꿔 카스미의 이야기를 적어 보자고 제안한다. 


 상영회는 잘 끝나지 못했지만, 모종의 동질감을 느낀 카스미는 마호에게 함께 살자는 제안한다. 마호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집과 가구들을 보러 다니지만, 결국 마호는 다시 남자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카스미는 마호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상황은 마무리되며 카스미는 마호와 헤어진 후 답답할 때마다 찾던 바다에 가 마호와 재회했을 때처럼 모래에 눕는다. 카스미는 이후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 마호가 좋다면 그걸로 자신은 됐다며 말한다. 축사까지 맡게 된 카스미는 자신의 전공인 첼로로 축사를 대체하며, 그를 끝으로 더 이상 첼로를 켜지 않겠다고 말한다.

 



 카스미와 마호 사이의 관계는 에이엄 당사자가 유성애자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정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 통하고 가까운 사이더라도, 유성애자들은 언젠가 자신의 애인을 만난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가 끊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같을 수는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에이엄 당사자의 의견이나 노력 따위는 크게 의미 있지 않다. 여전히 친구이지만, 이전만큼 자주 만나거나 특별하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유성애자 친구에게는 이 친구보다 더 특별한 관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에이엄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하지만 익숙한 일이고, 언젠간 일어날 일이라고 염두에 두는 일이기도 하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고 왜인지 모를 답답함을 속으로 삭이는 일뿐이다.


 유연정-유성애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친구보다는 애인이 우선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세상이다. 모노가미 중심적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은 한층 더 좁혀진다.  거기에 퀴어라고 다 같은 퀴어가 아니다. 무연정자/무성애자와 논바이너리는 퀴어중의 퀴어라고도 불린다. 어떤 사람이 퀴어라고 해서 다른 정체성에 대한 관용이나 깊은 이해심을 갖는다는 보장도 없다. 앨라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같은 정체성의 사람이 아니라는 그 차이에 관계는 때로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누구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모노가미-유연정-유성애중심적인 사회에서 대체로 에이엄 당사자들은 소외되거나 섭섭함을 느끼는 일이 잦다. 당연하게도, 그 감정 상태를 표현할 언어와 공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은 에이엄 당사자들을 높은 확률로 피해자로 위치시킨다. 그런 세상을 보통의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에이섹슈얼 연구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