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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귤 May 29. 2023

출몰 주의, 이수역 꼼장어 집

이수역 4번 출구 '싱싱오동오동도산아나고꼼장어숯불구이'

스무 살이 되고 부산에서 상경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벌써 6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문득 마주치는 고향 냄새에는 괜히 더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이수역 7호선 4번 출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꼼장어 집이 그랬다. ‘먹장어’ 하고 새침데기 서울말로 적지 않고, 휘갈겨 적은 ‘꼼장어’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동네에서 먹던 것보다 비싸다는 흠은 있었지만, 지글거리는 숯불에 양념을 잔뜩 발라 구워낸 꼼장어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고향에서는 꼼장어를 먹는 게 흔했다. 가죽을 허옇게 벗겨낸 꼼장어가 불판에 올라가 꼼틀꼼틀 움직이는 모습에 기괴함을 느끼지 않게 된 게 초등학생 즈음이니 말이다. 이수역 꼼장어 집은 그런 ‘추억 보정’을 빼고도 맛이 좋았다. 오독거리는 식감을 질기지 않게 살려 숯불 향을 가득 입힌 꼼장어를, 절인 명이나물과 함께 먹으면 소주 몇 병이 금세 비워졌다.      


양념 꼼장어 한 접시


서울에서 사귄 깍쟁이들을 그곳 이수역 꼼장어 집에 자주 데려갔다. 고향집으로 끌고 가는 것 마냥, 아무런 연고도 지분도 없는 꼼장어 집을 소개했다. 대학 동기들은 물론, 20살 처음 사귄 남자친구부터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까지, 불판 위에서 꼼틀거리는 꼼장어로 놀래킨 사람이 족히 열 명은 넘는다. 그중에는 질색하는 얼굴로 “xx아.. 너 이런 거 좋아하는 애였어?”라며 홀로 잔치국수를 주문한 전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와는 오래가지 못하고 헤어졌다.      


꼼틀 꼼틀 꼼장어야 미안해


문제는 내가 너무 많은 사람을 그 꼼장어 집에 데려가면서부터 생겼다. 심지어는 함께 갔던 친구들이 또 그들의 가족, 그들의 친구들을 데려왔다. “xx아 어제 이수역 꼼장어 집에서 너 전남친 마주쳤어” 가끔 이런 뜬금없는 연락을 받을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행복을 나누고 싶어 데려간 곳이건만, 작은 각오 없이는 방문할 수가 없는 곳이 되었다. 어색해진 인연을 다시 만나더라도 괜찮다는, 꼼장어를 기필코 먹어야겠다는 각오 말이다.     


소중한 아지트로 남기고픈 마음에 이젠 사람들한테 소개하지 말아야지- 다짐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참을 수 있으랴. 그들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꼼장어보다 맛있는데 말이다. 언제부턴가 이수역 그곳엔 단지 꼼장어가 아니라, 그 만족스러운 미소를 함께 먹으러 가고 있었다. 고향의 그리움을 새로운 추억으로 채워가면서. 전남친, 절교한 친구, 어색한 동아리 선배, 심지어 그들의 가족까지, 혹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나 틈틈이 의식하며 꼼장어를 먹어야 하는 이수역 꼼장어 집이야 말로, 내 서울 고향집이다. 쿰쿰하고 정겨운, 가끔은 오래된 인연에 부담스럽기도 한, 고향에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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