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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귤 May 26. 2023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를 또 실패했다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이 작은 술집에 앉아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두 사람이 곧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데, 대사에는 하나도 집중이 되지 않고 카메라 아래로 힐끔 잡히는 제육볶음에만 눈길이 갔다. 제육볶음은 언제 먹나 기대했건만, 화가 난 여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제육볶음은 그 자리에 싸늘하게 남겨진 채 화면이 전환됐다.     


다음날 "백종원 제육볶음 레시피"를 유튜브에 검색했다. 어제 본 제육볶음 한 접시가 줄곧 눈에 아른거려 직접 만들어 먹을 작정이었다. 간장 두 큰술, 고추장 한 큰술, 고춧가루 두 큰술, 미림 한 큰술, 설탕 한 큰술, 소고기다시다 한 꼬집. 틀린 것 없이 그대로 따라 했다. 백종원 선생님의 성대모사까지 얹어가며 웍을 돌렸다. "어때유, 쉽쥬"


그런데 전혀 그 맛이 안 났다. 백종원 선생님이 만든 제육볶음을 직접 먹어본 적은 없지만, 분명 이걸 드시고 “어때유, 맛있쥬?” 하시진 않을 것이다. 실패한 요리 덕에 드라마 속 제육볶음이 더 아른거렸다.     


모양은 그럴 듯하지 않나요?


요리에 영 소질은 없대도 요리 영상 보는 건 좋아해 왔다. 자취생 레시피 시리즈, 백종원 TV 프로그램, 때로는 요리 영화까지 자주 챙겨보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봤다. 영화 내내 소담하고 정갈하게 사는 혜원을 보며 ‘나도 그냥 확 던지고 시골로 내려갈까-’ 하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물론 실천할 용기는 없다. 영화에는 혜원이 시골에서 얻은 식재료로 직접 요리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데, 꽤 독특한 것을 발견했다. 영화에서 혜원은 간을 보는 법이 없다. 만드는 중간 한 입 먹고는 갸우뚱 고개 젓지도 않고, 아쉬운 맘에 소금 몇 번을 더 털어 넣지도 않는다. 그냥 요리를 만들어, 단지 맛있게 먹을 뿐이다.     


함께 본 엄마는 혜원의 계량이 완벽했기 때문에 간을 보지 않은 것이라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리틀 포레스트는 ‘행복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혜원은 완벽한 계량에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불행에서 도망간 곳이 시골 고향 집이었으니까. 혜원의 계량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를 기웃거리며 완벽히 계량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한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계량은 욕심의 발현이다. 꼭 나쁜 의미의 욕심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은 욕심, 백종원 선생님의 맛이 그대로 재현되길 원하는 욕심, 그 욕심들로 내 요리가 꽤 먹을 법한 음식이 된다. 조금 싱겁진 않은지, 혹 너무 달진 않은지, 요리 하는 내내 몇 번이고 간을 본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 그대로 했는데 이상하게 그 맛이 안 나" 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백종원 선생님 존경합니다.. 


글쎄, 백종원 선생님의 한 큰술과 내 한 큰술이 달라서였을까. 한 꼬집 넣는다는게 아쉬워 크게 꼬집었기 때문일까. 선생님의 레시피를 아무리 흉내 내도 난 결코 그만한 음식을 만들긴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교훈이 무색하게 매 요리마다 네이버에 ‘황금레시피’를 검색한다. 누군가 적어둔 ‘완벽한 방법’을 따라 하면서 그의 완벽함을 대신 욕심 내고 있다. 미련하게 계속 누군갈 따라 하느라, 내 레시피를 완성 시키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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