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소리가 난다. 2리터짜리 페트병에 깔때기를 꽂고 물을 부으니 나는 소리다. 지난 태풍에 온 비로 테라스에 내놓은 다라이(표준어는 아니지만 이런 다용도의 커다란 대야는 따로 다라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가 가득 찼다. 그 물을 부어 모으니 대략 2리터 들이 페트병 10병 정도의 물이 모였다. 더 커다란 다라이를 쓰면야 더 많이 모을 수 있겠지만 일반 가정집 테라스에서 벌레 생길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쓰는 물 양을 어림잡은 다라이의 용량은 이 정도이다. 이렇게 모은 물은 키우는 식물 화분 물 줄 때 쓰거나 우유팩 등 재활용품을 씻는 허드레 물로 쓰고,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 설거지감들을 불릴 때 담그는 물로도 쓴다. 2리터들이 10병을 다 쓰는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는 않는다. 수도꼭지에 나와서 흘러가는 물로는 내가 쓰는 물의 양을 가늠할 수가 없다가 이렇게 물통에 담은 물을 쓰면 인간이 깨끗하게 살겠다고 써대는 물의 양이 실감이 난다.
딱히 물을 아끼겠다고 시작한 빗물 받기는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 플랜테리어가 유행하면서 우리 집에도 화분 붐이 왔다. 하나둘씩 들이고 솎아낸 가지 아깝다고 번식도 하다 보니 화분 개수가 점점 많아졌다. 이때 읽은 식물 키우기 만화에서 말하길, 빗물이 화분에는 그리 보약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빗물은 오염된 더러운 물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빗물에는 유효한 미네랄들이 들어있고 정수된 수돗물보다 훨씬 식물이 잘 자란다고. 마침 우리 집은 야외 오픈된 테라스가 있었다. 북향의 자투리 공간이라 딱히 식물을 키우거나 이쁘게 꾸밀 생각도 하지 않는 죽은 공간이었다. 거기에 집에 놀고있던 다라이 하나를 놔두고 빗물을 받았다. 빗물을 모아서 식물에 주노라니 문득 집에서 식물을 키우겠다고 지구를 쥐어짜며 정수한 물을 쓰고 있었다는 게 뭔가 아이러니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의 정수과정은 공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수질이 정말 좋은 편이다. 유럽에서 머리 감으면 진짜 욕이 나온다. 하지만 인간이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온갖 화학물질을 만들어 뿜어낸 덕에 물을 정수해서 쓰고 먹는 물은 아예 사 먹게 된 지도 오래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중국에서 건너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사실 우리나라도 산업화 시절 엄청난 환경오염을 겪었다. 그래서 내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엔 환경 운동이며 자연보호 운동이 엄청 붐이었다.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태우지도 말고 오염수 배출은 보면 신고하자 캠페인이 벌어지고 배기가스(와 최루탄으)로 인한 서울 시내 공기오염이 연일 뉴스를 탔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환경오염을 이슈화하면서 서서히 오염원들을 정화시고 시스템을 구축해서 현재의 우리나라 자연환경을 만들었다.
70년대 산업화 시대가 배경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보면 당시 얼마나 환경이 심하게 오염되고 열악했는지 나온다. 난장이의 딸은 마을을 흐르는 시커먼 폐수에 꽃을 던져 넣는다. 공장 지대 사람들은 바람이 멈추는 날을 두려워한다. 그날은 공장의 오염된 공기가 거주 구역에 그대로 머무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환경은 그렇게 다 부숴가며 번 돈으로 다시 기술과 자본을 들여서 깨끗하게 만든 것이다. 수돗물을 정수하는데도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그러니 수돗물도 아낄 수 있다면 아끼는 것이 좋다. 가정집 하나에서 빗물 좀 받아쓴다고 뭐 대단한 양은 아니겠지만 이쪽 분야는 항상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맞다. 수도세도 조금 덜 나오면 더 좋고.
하필이면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어머니 폴리스 활동하는 날, 딱 한시간인 그 시간에 폭우가 와서 무릎 아래까지 쫄딱 젖었다. 학교 앞 도로를 따라 빗물이 말 그대로 콸콸콸 흘렀다.
'아, 저 빗물 모으면 양이 상당할 텐데....'
빗물 모으기에 재미가 붙고 나니 길가 하수구에 콸콸 쏟아지는 빗물이 그렇게 아깝다. 기후 위기로 우리나라에도 집중호우가 자주 일어나면서 그렇게 한 번에 쏟아지고 사라지는 빗물을 모아서 활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최재천 교수님도 말씀하시던데. 보관해야 하는 물의 무게 문제도 있고 소비 속도에 맞는 양을 가지는 게 중요해서 당장은 더 이상 욕심 내지 않는다. 딱 다라이 하나. 거기까지. 환경 보호하는 게 다 그렇다. 있는 거나 아껴서 잘 쓰고 새 거 괜히 사지 말고 괜히 욕심 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