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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쥰 Nov 16. 2023

키오스크가 고장 난 날

“여기 지금 키오스크가 안 되는데요?”

무인 영업은 키오스크와 CCTV라는 존재가 있어서 가능합니다. 키오스크가 사람 대신 돈 받고 결제해 주고 자리 배치도 해주고요. CCTV가 가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원거리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하죠.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고장 나면 무인 영업이 성립할 수 없게 되는데 당연히 더 치명적인 건 키오스크 고장입니다.

     

무인 영업답게 키오스크 수리 역시 원격으로 지원돼요. 키오스크 업체는 가게 주인보다 훨씬 먼 어딘가에 있고 회사 구성원도 대부분 프로그램 개발자들이라서 그런지 아날로그로 직접 기계를 고치는 것은 가장 마지막의 선택지더라고요. 일단은 무조건 재부팅이고요. 그래도 안되면 원격으로 이리저리 건드리고 끄고 켜며 고칩니다. 원격으로 도저히 안 되는 경우는 그냥 기계를 통째로 교체한다는 듯? 그리고 고치는 동안의 운영은 다시 사람의 몫이 됩니다.     




원격지원으로도 바로 해결되지 않은 고장은 딱 한 번 경험했습니다. 하필 또 손님이 많은 시험 준비 기간의 일이었죠.          


“여기 지금 키오스크가 안 되는데요?”


전화를 받자마자 키오스크 관리 업체 쪽에 긴급콜을 넣고 가게로 뛰어갔습니다. 이미 입구에서 웅성 웅성 난리가 났더군요. 재빠른 친구는 그 자리에서 다른 스터디 카페나 독서실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여기 키오스크 안돼. 고장 났대. 거기 빈자리 있어?” 묻고 있고요.


스터디 카페의 키오스크는 좌석에 이용권을 등록해야 문이 열리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일단 출입문을 열린 상태로 수동 고정을 했습니다. 겨울이라 찬바람이 가게 안으로 슝슝 들어갔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키오스크를 통하지 않아도 핸드폰 어플로 결제나 좌석 선택은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키오스크가 고장이에요. 저희 어플이 있으니까 앱스토어에 들어가서 다운로드하고 회원 가입하시면 됩니다. 거기에서 좌석권 구매랑 좌석 선택 다 가능해요.”


켜지지 않는 키오스크 기계 앞에 서서 덜덜 떨며 기다리다가 오는 손님에게 일일이 안내했습니다. 한 푼의 매출이 아쉬운 자영업, 한 명의 손님이라도 놓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지루한 시험 기간 중 발생한 작은 이벤트에 신나 하며 어플을 다운로드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조용히 돌아서는 손님도 많았습니다. 아아, 내 돈... 내 매출.... 이거 어쩔 거야... 누가 책임질 거야...


학생 중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도 생각보다 꽤 있습니다. 그 경우는 제 폰을 넘겨줘서 회원 가입을 하고 결제하게 했습니다. 가게 밖 상가 복도가 정말 추웠어요. 저는 또 수족냉증에 매 계절마다 감기는 무조건 걸리고 보는 허약체거든요. 세 시간 정도 덜덜 떨며 안내하고 나니 손가락은 벌겋게 곱고 콧물은 줄줄 흘렀습니다. 


'아 ㅇㅇ못해먹겠다, 진짜. 이거 누가 하자 그랬어. 키오스크 업체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집에 혼자 있을 아이 걱정과 함께 본격적으로 욕을 시작할 무렵, 뒤에서 키오스크가 띠롱~ 하고 켜졌습니다.  이어서 서버가 날아갔다나 뭐라나 복잡하니 설명하는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21세기 AI의 시대, 메타버스의 시대라고 합니다만, 사실 결국은 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키오스크 만드는 것도 사람, 설치하는 것도 사람, 운영하는 것도 사람이지요. 아직 무한동력기계 같은 것은 없으니 아무리 잘 만든 기계여도 언젠가는 고장이 납니다. 정교한 기계일수록 오히려 고장이 잘 난다는 썰도 있죠. 조금만 아귀가 안 맞아도 멈춰버리는 거지요. 요즘의 급발진 이슈 같은 것이 같은 연장 선상에 있을 겁니다.  가게를 운영하노라니 키오스크가 고장 나기도 하고 정전이 되기도 하고 건물 소화전 알람이 고장 나 울리기도 합니다. 정전이 되었을 때는 CCTV나 키오스크는 물론이고 제빙기며 커피머신도 다 초기화되어서 그걸 다시 부팅하고 세팅하는 게 또 큰 일이었네요. 가장 오래된 기술(?)인 정수기만은 멈추지 않고 기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항상 덜컹덜컹 얼렁뚱땅 대충 때우면서 움직이는데, 그걸 자동으로 돌리려는 것은 그저 인간의 헛된 욕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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