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스터디 카페는 기본적으로 이용자의 자율성과 도덕성에 기반해서 운영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이용자가 알아서 돈을 내고 들어와서 약속한 시간만큼 깨끗하게 이용하고 퇴실하면 된다. 기본적인 사회 통념만 지켜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딱딱 맞아떨어질 리가 있나. 사람은 다양하고 세상은 늘 변수투성이이다. 상주 직원이 없으므로 이용자는 문의 사항이 생기면 전화를 한다. 전화를 싫어하는 요즘 세대를 위해 카카오톡 채널톡도 개설해 두긴 했다. 하지만 채널톡 기능은 종종 불안정하고(카카오톡은 채널톡 기능 안정화 좀 해달라.) 실시간 답변도 힘들다 보니 아무래도 전화가 아직은 더 확실하다.
1. 얼마인가요 어디 있나요 주차장은 있나요
간단한 가게 정보 질문들. 이 내용은 답변도 간단하다. 다만 이런 건 다 게시판에 쓰여있고 네이버 플레이스에도 올라와있고, 카카오톡 채널톡 안내에도 적혀있는데 왜 굳이 전화를 하는 걸까 궁금할 뿐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꼬마빌딩에 입주한 터라 주차장이 없다는 답변을 드릴 때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혹시 2호점을 내게 된다면 반드시 고객용 주차장이 구비된 건물로 내자고 생각하고 있다.
2. 스터디룸을 예약하고 싶어요
스터디룸은 사용하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해당 시간에 가게로 오기 때문에 전화로 예약을 많이 한다. 어플과 사이트도 있지만 아무래도 회원가입이 번거롭다 보니, 한두 번 쓰는 경우는 전화 예약을 선호한다. 매출과 연결되므로 기분 좋게 진행하는 전화다.
3. 너무 시끄러워요 애들 좀 어떻게 해주세요
근처 중, 고등학교 시험 기간이 되면 한 번은 받게 되는 슬픈 전화다. 얌전히 와서 공부만 하고 가면 좋으련만, 어린 학생들은 아직 그게 안된다. 사실 주위 성인들과 학창 시절 독서실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봐도 대부분 첫마디가 “아~ 독서실 휴게실에서 친구랑 떡볶이 사 먹고 재밌었는데.”이다. 정작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나 봤다. 같은 동네 또래 친구들이 시험기간이랍시고 다 같이 한 장소에 모였으니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나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대응하건만 잠깐 눈 뗀 사이 요 어린 학생들이소곤소곤대기 시작하면 타 이용객이 참다못해 전화하는 것이다.
4. 가장 곤란한 질문 – 우리 아이 지금 거기 있나요? 어제(또는 오늘) 몇 시에 와서 몇 시에 갔나요?
공부하는 공간을 대여해 주는 업이다 보니 가끔 받는 전화다. 부모님께서 아이의 행방을 묻는 전화, 더 나아가 사용 이력을 묻는 전화. 이런 전화는 사실 이미 심증은 있고 마지막 증거 확보를 위한 통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전화주신 어머니 목소리도 어둡고 답변하는 나도 저절로 진땀이 난다. 아이가 집 밖에서 제때 학원에 다니고 제대로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할 것이라 믿고 돈을 내고 보내는 것이건만, 아이는 어느 날 공부가 지겹고 일탈이 하고 싶다. 그런데 엄마라는 존재는 귀신같이 그걸 안다. “어머님... 죄송한데 그날은 아이가 안 왔네요...”라고 전하는 순간 답변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 톤 더 낮아진다. 학생... 거짓말한 것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요..... 파이팅....
요즘 아이들은 전화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문자로 하는 카카오톡 대화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한 발화 행위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고. 나도 내향형 인간이라 회사에서 타 부서에 전화할 일이 있으면 미리 이야기할 내용을 메모해 놓고 세 번 심호흡 후에야 수화기를 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가게를 내더니 콜센터 직원이 된 것이다. 때문에 초기에는 전화 스트레스가 말도 못 했다. 애초에 무인 운영이니까 알아서 그냥 돌아갈 것이라는 말만 들었지, 관련해서 문의 전화를 받을 일이 이렇게 있을 거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문의 전화는 첫날부터 걸려왔다. 지금 당장 큰돈을 들여서 가게를 내 버렸는데 전화공포증 따위는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조건 받아야만 한다. “네 OO스터디 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