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벌나게 밀려오는 파도는 어제와는 달리 높게 밀려왔다. 고기를 굽고 있던 형의 눈은 숯불을 닮은 노을이 모습을 감출 때까지 바다와 고기 사이를 헤엄치고 있었다. 하루종일 달구어진 옥상 바닥은 바닷바람에 빠르게 식고 있었고, 더불어 맛있는 술과 동해 바다가 선물해 준 가리비 안주가 꽃처럼 피어났다. 우리들은 그 꽃에 반해서 형이 어디 있는 줄 몰랐다. 토마호크를 굽고 있는 줄 알았다. 보들보들한 고기를 씹으면서도. 소소했던 대화는 점점 어둠에 묻힐세라 서로 반갑고 고맙고 행복한 웃음소리에 정말 맛있는 술은 꼴꼴 꼴 목을 타고 흐르는 순간에도 12명의 우리는 형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이웃들이 하나둘씩 들고 오는 안주에 환호성을 지르면서, 빈 바다를 앞에 두고도 형을 잊고 있었다. 여행지에 도착한 시각에 먼 곳으로 떠난 친구의 발인을 생각하며 우리는 명복을 빌며 오래오래 잘 가라고 바다에 대고 곡을 대신했었다.
바닷가를 뛰고 있는 군인의 호루라기 소리를 들은 것은 막 구운 가리비를 맛있는 수다로 극찬을 할 때였다. 군인 둘이 뛰어 오는 방향에서 경찰차가 빨간 불을 반짝이며 오고 있는 것이 보이고서야 우리는 바다 쪽을 일제히 내려다봤다. 바다에 사람이 들어갔다. 먹빛의 바다는 토하는 파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해변과 꽤나 떨어진 곳에서 희뿌연 비닐봉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이 시간에 누가 물에 들....... 엥? 형 아냐?" 순간 모두의 표정은 ' 그대로 멈춰라'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고, 인원 점검에 들어갔다. 없다. 없어졌다. 형만.
같이 고기를 굽고 있던 권작가도 알지 못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40년 지기 후배의 웃음이 터지며 핸드폰을 찾아 사진을 찍어댄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 모두 수구리" 우리의 장난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같이 있던 현직 군인의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동해에서도 최 북단인 이곳에서는 6시 이후에는 수영이 금지였고 형은 아무도 없는 바다가 좋아서 마구마구 헤엄쳐 나간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파도를 마주하면서.
수영복도 아니고 팬티 바람에 서 있던 형을 5년짜리 놀림감으로 사진에 남겨 놓고 형은 군인과 경찰관에게 훈시를 듣고 올라온 형에게 건배를 했다. 실패한 월북을 위해. 다음에는 성공하기를 위하여. 여름밤의 추억으로는 유난히 배꼽 빠지는 해프닝이었다. 구름 속에서 애써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이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