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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Nov 20. 2024

새벽 그림

여명 속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


누군가 익어 간다고 했다.
억측에 가깝다는 생각에 일부러 밀어 놓은 문장이었다.

 친구의 집에서 보이는 영흥도의 바다는 맨살을 드러낸 채로 비를 맞고 있었고, 11명의 우리들은 좁은 탁자 앞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다시피 술잔을 기울이던, 그날.
 
우리는 익어 있었다.
익어 가는 중이 아니었다.
오랜 모임이었서도 한 자리에서 꼼꼼하게 모두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그동안 지내온 긴 시간이 서로를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은 자신들의 서사에 자신이 있어했다.
 빗소리로 술잔을 채우고, 취기가 살짝 돌았나 싶던 그때였다.
 1년 전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의 저택을 지은 친구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모두 놀랐다.

 "우리 집에는 내방이 없어. 그래서 나는 조만간 내방 찾으러 떠날 거야."
"너네 집에 방이 없다고. 4층이나 되는 집에?"
" 빈방은 많지. 아무리 내방으로 만들려고 해도 그 집에는 나만의 방을 만들 곳이 없어."
" 그 집은 어쩌고?."
" 집이 짐스러워서 정리하고, 여행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똬리 틀어 볼까  해서."
 " 나도 로망인데......."
너도 나도 지나온 이야기가 찬란하다.
재혼 가정의 복잡한 상황들이 흐드러지게 쏟아지고, 비혼인 이는 자유를 빙자했던 외로움을 뱉어냈다.
어둠이 내리면서 비는 바람을 타고 더 세차게 퍼붓는다. 어느새 갯벌은 들어오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힘들었구나. 살아온 것이 아니고 버텨온 시간이었구나.
 익다 못해 삶아진 것이다.
뭉그러진 시간이 받쳐든 손바닥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그저 ••••• 방치하고 있었다.

 낯선 잠자리와 아래층 7080 라이브의 악기소리에   날려 버린 밤이 되어 버린 것은 비단 소음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감고만 있던 눈을 먼저 뜬 친구가 누구였을까?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파란 불꽃에 비치는 친구들의 얼굴이 흔들리는 것 같은 것은 아직 술이 덜 깬 걸까?

 우리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어제 나눈 시간 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새벽 커피 좋다. 그런데 향이 없어."

비는 멈췄고, 바람은 어둠 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불어왔다.

내일의 우리를 암시하 듯이.

 버지니아 울프의 ' 자기만의 방'이 생각났다.
 누구나 가지고 싶은 것은 자기만의 방이라는 것을.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는  방을.

 몸도 아플 때가 되었지만 마음 또한 아플 때구나.
스스로 면역체를 찾으려는 친구들의 여러 방법을 배운 그날이 되었다.

얘들아!
너무 멀리서 찾지 마.
뒤돌아보면 거기!
우리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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