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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마케팅은 'OO'이 핵심

마케팅과 정치는 맥락 위에서 작동한다.

by 김정호
80077_23711_635.jpg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어느 추운 겨울밤, 집으로 향하는 길.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걷다가 마주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포장마차. 이내 발걸음이 멈춥니다.

이유는 붕어빵이죠.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한 그 맛. 하지만 붕어빵은 그리 단순하게 표현될 간식이 아닙니다. 포장마차라는 공간, 겨울이라는 계절, 어릴 적 추억과 그날의 즉흥적인 즐거움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그때 그 맛’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요즘 생긴 붕어빵 카페나 분식집은 포장마차만큼 사람들의 발길을 끌지 못합니다. 같은 붕어빵이라도 맥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느낌이 되기 때문이죠.



이처럼 어떤 물건이나 행위든,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걸 둘러싼 정서나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붕어빵뿐 아니라 정치적인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에 윤석열 대통령이 검토했다는 계엄령 발동 논의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PYH2024120318560001300_P4.jpg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계엄령은 헌법상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입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서 ‘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5·18 광주, 박정희 유신, 전두환 정권처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순간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제도라기보다도, 권력의 강압, 자유의 억압,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image 37.png 이미지 출처: 뉴스1


비슷한 사례는 독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고대 인도나 동아시아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문양이었지만, 나치 독일이 이 문양을 사용한 이후로는 파시즘과 학살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하켄크로이츠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죠. 같은 문양이라도 사회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겁니다.



결국 법적인 권한이 있다고 해서 그걸 곧바로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민들이 그걸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그 시대가 어떤 맥락으로 받아들이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이런 감정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무시한 채 “가능하니까 해도 된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 수 있습니다.



붕어빵을 붕어빵답게 만드는 건 팥과 밀가루가 아니라, 그걸 둘러싼 정서와 기억입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의 정당성도 단순한 법 조문이 아니라 시민의 인식과 신뢰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맥락을 읽지 못한 권력은, 아무리 적법해도 결국 외면받습니다. 겨울 아닌 계절의 붕어빵처럼. 익숙하지만, 먹고 싶지는 않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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