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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마주한 인본주의의 흔적

신자유주의 타파의 초석

by 김정호



6371666046857715681.png 이미지 출처: 인터파크


9와 3/4 승강장으로 유명한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 패딩턴행 기차를 기다리지만 시간이 다 되어도 오지 않습니다. 이내 전광판을 살펴보니, 길게 쓰인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 “Cancelled due to a shortage of train crew”


역무원에게 자세한 이유를 물었더니, 기관사가 아파서 결차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경우이기에, 저로서는 황당했지만 시민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르지 않고 그저 눈을 마주치며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기다리듯,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를 존중하려는 태도일까요?


영국에서의 이 일화는, 인간 존엄과 상호 존중은 단순 효율이나 거래로 환원될 수 없다는 생각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요? ‘서비스’라는 단어에 대한 자국민의 인식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돈을 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식의 권리 의식입니다.


이러한 사고는 서비스와 노동, 공공의 역할을 효율과 권리 중심 사고로 환원시키고, 인간의 존엄과 관계를 뒤로 밀어내곤 합니다.


저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존엄하다고 단언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려 한다면, 적어도 신자유주의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려 하다 보니, 인간의 시간, 노력, 진정성, 관계까지 거래와 효율의 틀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산다고 믿지만, 사실 체제 속에서 서로를 착취하고 착취당하게 되는 구조 안에 놓이게 됩니다.








이 구조의 타파는 일상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일상으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식당에서 우리에게 밥을 짓는 수고를 덜어주고 배달을 통해 시간을 아껴주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 시간을 제공받은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노고와 시간을 존중하고 인간을 거래 너머의 존재로 바라보려는 태도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상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입니다. 변화는 여기서 비롯되어, 인본주의의 승수현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자본으로 편안함을 취하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존중과 감사, 관계를 중심에 두는 서비스 문화를 실천할 때,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착취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진정으로 인간 존엄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됩니다.





리추얼의 종말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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