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제 역할을 못하는 거 같아 눈치를 보는 백수들과 나에게 하고 싶은
요즘 날씨가 더워져서 걷는 게 녹록지 않다.
직장에 다닐 때는 덥다는 걸 주말에나 느낄 수 있었는데, 백수 기간이 길어지니 매일의 날씨와 기온을 느끼게 된다.
지난 글에 쓴 하루 루틴은 매일 지키며, 사실 지킨다고 할 만큼 거창한 게 없지만? 무탈히 살아가는 중
뭔가 주어진 일이 있어야 안정을 찾는 성격이라, 난 나 스스로를 과업 증후군에 걸렸다고 표현했다.
주어진 일이 많아질수록 힘들지만 파이팅 하는 순간들, 일을 잘 끝마쳤을 때 느끼는 성취가 좋았다.
퇴사를 하고 첫 한 달간은 목표로 했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했다. 시험에서 낙방한 날 맹장이 터져 병원에 입원했다.
꽤나 염증이 심해 눕 생활을 하다 보니 두 달이 지났다.
이래 저래 계속 역할이 있었다.
충실한 취준생, 맹장 터진 환자
몸이 점점 회복이 되자 불편한 몸보다 날 괴롭히던 건 불편한 마음이었다.
“다 나으면 이제 환자도 아닌데, 큰일이네..”
“내가 너무 섣불리 결정한 건가? 난 왜 이렇게 무모한 성격일까..”
뭐가 큰일인가
누가 봐도 큰일이 아니다.
근데 그 당시에 난 진짜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과장 좀 보태서 개 망했다.라고도 생각했다.
생각도 극단적이다 정말
“내 결정이 이렇게 무의미해지면 안 된다. 유의미한 결정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자. ”
내 역할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만들어 낸 역할에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면 된다.
그래서 스스로 나에게 몇 가지 역할을 부여했다.
1. 살가운 아내(가장 어렵다.)
2. 창조하는 사람
3. 배우는 사람
첫 번째
기혼 여성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 거다.
그간 회사 스트레스를 핑계로 남편한테 소홀했고 짜증도 많이 냈다.
역할 수행을 위해 화를 다스리는 주문인 “그래.. 녀석, 그럴 수도 있지”를 되뇌며 짜증과 타박을 줄였다.
안될 줄 알았는데 되더라!
목욕 후 샤워 커튼을 겹치고 나온 남편을 보며.. 양말을 겹쳐 개서 빨래통에 넣은 남편을 보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두 번째
주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창조적 일을 만들어 해보고자 한다.
나만 안 한 거 같은 스마트스토어, 유튜브, 글쓰기 등을 해보려 기획하고 있다.
돈을 번다는 목적보단 일단 해보자라는 의미가 크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세 번째
만 28세에 기술사 자격증을 딸만큼 난 공부하고 배우는 걸 좋아한다.
근데 배움의 카테고리가 일과 전공에 한정적이었다.
일이 없어지니,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일이 없어도 내 삶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퇴사를 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마음이 조급한 분들에게 내 방법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사람마다 상황은 다 다르니까
나처럼 과업 증후군을 앓고 있거나 상반기 취업 시즌이 끝나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우린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책임감이 큰 사람들이라 그런 거다.
역할의 부재로 자신감을 잃지 말고 나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알고 보니 이미 다들 하고 계셨고.. 나만 지금 안 건 아니겠지?
산티아고로 여정 D-15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많이 느끼고 배우는 중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