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산티아고를 왜 가냐 물으신다면
백수의 삶은 참으로 묘하다.
하기 싫은 일 안 해도 되고, 듣기 싫은 소리 안 들어도 되니 좋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매일 일어나서 오늘은 무엇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잠들기 전엔 내일은 뭐하지..?
유재석님의 말하는 대로의 가사가 이제야 공감이 간달까
안정적인 공무원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향한 건 성장에 대한 열망이었다.
자라나는 회사와 함께 나도 자라나리,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명확한 체계가 있던 조직에서 체계와 시스템이 없는 조직으로 간다는 것과
서비스 위주의 업무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일 사이엔 큰 괴리감이 있었다.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하던 중 우연히 시청에 갈 일이 있었는데
웬걸.. 이 냄새와 분위기, 사람들까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달까
나란 인간,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이라 모 아니면 도!
예전처럼 다시 차근차근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
그간 마음먹고 노력하면 대부분의 일이 잘 풀렸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하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퇴사하고 지원한 회사 3개에서 연달아 탈락의 고비를 마셨다.
이젠 상반기 취업 시즌이 끝났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직후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런 비슷한 기분을 느꼈었다.
매일의 루틴이 없어 편하긴 한데, 뭔 갈 빠트린 듯한 느낌..
그때의 나는 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을 읽었다.
“와 미쳤다. 개 멋지잖아.. “ 산티아고에 가보리라 호언장담했지만 서른이 되도록 가보질 못했다.
대학생 때는 처음으로 맛 본 맥주, 소주, 막걸리 + 게임에 빠져 살았고, 회사에 다니면서는 시간이 없어서 엄두를 못냈다.
이젠 그때만큼 부어라 마셔라 술이 땡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먹는건 아니지만..ㅎ) 게임도 할만큼 했다.
그리고 아무도 결재를 안 해줘도 넘처나는 연차! 가 생겼다.
그래서 산티아고로 떠난다.
내 인생이 *부엔까미노가 되길 바라며!
*부엔까미노 : 순례길에서 여행자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는 인사로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길”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