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두려움 반 설레임 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다녀온 지 11일이 지났다.
홈 스윗 홈! 집으로 돌아와 못잔 잠도 자고 소홀했던 집안일도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총 560km를 울다 웃다 감정적이다 초연해졌다를 반복한 21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보고 느끼고 맛봤던 모든 것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04. 두려움과 설렘
출국 전 날, 몇 번이고 쌌다 풀었다 한 짐을 최종 점검하고 28일 간 홀로 남겨질 남편을 위해 대용량 카레와 찌개를 끓여 냉동해놓았다.
어릴 적 엄마가 오래 집을 비울 때 곰솥에다 사골을 잔뜩 끓여놓고 가던 심정을 이제야 알게 되었달까?
인천공항 - 베이징 - 파리 - 포르투까지 35시간 비행기를 타야하기에 밤을 꼴딱 새기로 결심하고, 비행기에서 볼 영상들을 마구 다운받았다.
드디어 디데이 어플까지 깔며 기다려왔던 순례길을 밟는다니 설렘만 가득하다.
새벽 5시, 남편을 깨워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장에 들어가려는 찰나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우둑허니 서있다. 눈물이 핑 돌며 이제서야 걱정과 두려움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전 날 밤까지 새고 갔건만 긴장한 탓에 잠도 오지 않고, 다운 받아온 넷플릭스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비행기 탄 김에 에펠탑을 보고싶어 파리에서 12시간의 경유 시간을 선택했다.
샤를드골 공항에 내리니 17시, 버스를 타고 에펠탑을 보고 맥주 한 잔 마시고 오면 딱이다!
소매치기도 많고 여행객을 상대로한 범죄가 많다고 하여 네이버카페 유랑을 통해 동행을 구했다.
20대 후반의 남자분과 시간이 맞아 에팔탑을 보고 같이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휴휴 걱정을 덜었다!
현금인출 및 해외 이용 시 수수료가 없는 트레블월렛 카드를 신청해가서 아주 유용히 사용했다.
파리 공항버스도 한국 교통카드처럼 tap으로 찍고 올라탔다.
혼자 파리라니! 가슴 속에 구름이 몽실몽실 올라오는 기분이다.
평범한 버스와 버스에 적힌 알파벳마저 너무 로맨틱한 느낌이랄까
버스에서 내려 8kg의 배낭과 힙색, 그리고 카메라까지 절대 사수한다는 일념으로 사주경계를 해가며 에펠탑으로 가는 길
유럽 특유의 찌르릉한 냄새를 맡으니, 이제야 프랑스에 왔구나 싶다.
버스에 내려 향하다 보니, 슬슬 해가 지고 있다.
크.. 나 시간도 너무 잘 맞췄자나..!
드디어 마주한 에펠탑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곳
에펠탑의 외형보다 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의 행복과 설렘 가득한 표정이 인상 깊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에펠탑에 조명이 들어왔다.
소란스러웠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모두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불안과 긴장감에 일정을 마치고 빨리 공항으로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경관을 보니 돗자리를 가져와 한시간이라도 느긋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싶었다.
화질이 영 별로지만 전체가 나온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이 사진 밖에 없다.
경계심이 얼마나 심했는지, 사람이 비교적 없는 사이드에서 찍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선 카메라를 고이 넣어두었다.
고작 12시간 있었던 여행자의 파리 경험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 같았다.
전혀 훔쳐갈 게 없어보여서였을지도 모르지만..다들 파리의 낭만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미리 연락했던 동행을 만나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서로 먹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얘기하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복귀했다.
이제 6시간 공항 노숙을 하고 포르투갈 포르투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비행 일정은 끝이다.
얼굴을 가렸지만 느껴지는 고단함의 향기..
그래도 아직까진 설렘이 남아있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다.
앞으로 마주할 날들에 비하면 저 날은 해피벌스데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