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부터 목이 칼날에 베인 듯 칼칼했다. 독감이 유행이라던데, 설마 싶었다. 그러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은 검사해도 안 나올 것 같고, 독감일 가능성이 커요. 독감이면 새벽부터 오한이 올 거예요.”
의사의 말이 귓가에 남았다. 저녁을 먹고 약을 한 움큼 털어 넣으며 “오려면 오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정확히 새벽 여섯 시,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연달아 터져 나오는 기침은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예고된 아픔이었지만 막상 닥치자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쳤다.
“A형 독감입니다. 수액 맞고 가실래요?”
차가운 약이 몸으로 스며들자 머리가 깨질 듯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났다. 진료확인서를 떼 회사에 전화를 하며 문득 생각했다. 독감 걸렸다며 좋아하는 중2 아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독한 약 기운에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다 지난 몇 달의 시간을 떠올렸다. 소설 속 시간을 되감듯, 평범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다이내믹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연달아 지나갔다. 충북도교육청 정무직 3년 차.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온몸이 보내는 슬픔의 신호를 견딜 수 없던 날들에는 열흘 넘게 새벽 기도를 나가기도 했다. 까만 하늘에 박힌 별빛을 보며 위로를 얻고, 살을 에는 11월의 찬 공기에서 세상의 차가움을 떠올렸다.
사람은 아프면 마음에 여러 상념이 들어온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혹은 조금 다르게 행동했다면… 무수한 조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나를 불러낸다. 바쁘다는 이유로 흘려보낸 일들을 하나씩 꺼내 다시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이런 여백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콧물에 열감에 온몸이 쑤시지만, 문득 아픔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독감 뒤에 항체가 생기듯, 아픔 뒤에는 그 아픔을 견딜 마음의 힘이 자란다고 나는 믿는다.
이틀이 지나도 골골거리는 나와 달리, 열다섯 살 아들은 하루 만에 다시 펄펄 뛰었다. 끙끙대는 엄마가 딱했는지 평소 하지 않던 말도 건넸다.
“엄마, 사랑해.”
사춘기 아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 한마디에, 나도 조용히 답했다.
“사랑해.”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에게도 때때로 ‘독감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갑자기 찾아온 아픔을 온전히 견디고 지난 후에는, 언젠가 이 아픔을 버틸 단단한 항체가 생겨 있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