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요즘 수업에서는 부쩍 헤딩을 많이 연습하고 있다. 헤딩은 예전에 원데이클래스 초창기에 잠깐 한 번 정도 해보고 그 이후로는 영 접해보지 못했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초보 수강생들이 헤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니 초반에는 헤딩을 잘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한 번씩 체험만 해보라고 하셨다. 정말 딱 한 번 체험만 해보고 말았는데 요즘에는 수업에 한 번 가면 헤딩을 한 20번 정도는 하는 것 같다.
헤딩에는 공격형 헤딩과 수비형 헤딩이 있다(고 배웠다). 공격형 헤딩은 골을 넣는 헤딩이므로 정교한 각도조절이 필요한 섬세한 기술이라면 수비형 헤딩은 일단 공을 위험지역 밖으로 걷어내는 데에 목적이 있어 섬세하기보다는 힘이 중요한 것 같다. 배울 때에는 이렇게 다르다고 배우긴 하는데 왜 직접 해보면 다 수비형 헤딩인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 혹시 생래적 수비수인 걸까)
헤딩을 하는 것은 두렵지만 참 재밌기도 하다. 우선 두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잘못 맞으면 머리통이 아프다. 헤딩은 머리통으로 하는 게 아님에도 머리통으로 잘못해서 그렇다. 이렇게 맞을 때면 뇌세포 10만 개가 죽고 동시에 목이 짧아지는 기분이 든다.
둘째, 공이 날아노는 궤적과 속도가 무섭다. 웬만해선 공을 무서워하지 않는데 헤딩해야 할 공이 날아오는 건 무섭다. 공이 얼굴 쪽으로 날아오기도 하고 보통 헤딩을 하기 위해 날아오는 공들은 속도가 빠르고 힘이 좋기에 더욱 무섭다.
셋째, 헤딩은 두 눈을 뜬 채로 해야 한다. 무서워 죽겠는데 눈까지 떠야 한다. 물론 이마 윗부분&머리 앞부분이 공에 비로소 닿을 때에는 잠시 눈을 감을 수 있지만 공이 날아오는 과정을 뜬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헤딩이 재밌는 이유는?
첫째, 뭔가 고급기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이 아니어서 그런지 뭔가 남들이 하지 않는 기술 하나를 터득하는 것 같아 재밌다.
둘째, 머리에 잘 맞았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크다. 잘못해서 머리통에 맞았을 때와 제대로 헤딩을 했을 때의 촉감과 온도와 습도 등이 확연히 달라서 정확히 했을 때에 정말 짜릿하다.
셋째, 헤딩은 주로 세트피스와 연결될 때가 많은데 헤딩까지 배우게 되면 뭔가 세트피스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헤딩을 연마한다면 언젠가는 멋진 세트피스를 해낼지도 몰라…!!!
지금까지 해본 바로는 일단 초보자 수준에서 생각할 때, 헤딩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두려움을 없애는 일인 거 같다. 헤딩의 장벽은 내 이마도 아니고 공도 아니고, 내 두 눈도, 내 목도 아닌 오로지 내가 가진 두려움이다. 인간의 신체나 정신은 두려운 것이나 힘든 것으로부터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겠지..?)지만 헤딩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두 눈을 떠야만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회피하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기는 헤딩에서도 필수적인 자세이지만 건강한 인간관계 맺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자세인 것 같다. (역시 축구에는 인생이 담겨있다니까!!!) 인간관계에서의 충돌은 헤딩과도 같아서 잘 닿으면 더 좋은 방향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골), 잘못 닿으면 엄청난 아픔만을 남긴 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냥 머리 아픈 사람이 되어버림). 그래서 때로는 두 눈을 뜬 채로 정면승부를 펼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떤 결과로 흐르게 될지 자신할 수 없기에, 그 충돌이 너무 아플 수도 있기에 피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피해버리면 일단 내 머리는 온전할 것이고 실제 인생에서 내게로 날아오는 공 중에는 재수없게도 더러 물공이 있을 수도 있기에 피하는 것이 지혜로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피하는 것이 상책은 아니며 갈등 해결의 디폴트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경기의 규칙과 관습은 헤딩하라고 올려 준 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머리를 들이밀어 머리카락이라도 닿게 하는 것이므로.
헤딩을 생각하다 요즘하고 있는 고민에 이르게 됐다. 헤딩이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겠어 일단 두 눈 부릅뜨고 머리를 들이밀어 보는 거지. (물론 선생님은 눈을 뜨라고 하셨지 부릅뜨라고 말씀하시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