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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Jun 26. 2024

의성에서 찾은 ‘차’와 ‘쉼’의 미학

의성 퍼즈유어셀프 방문기

연세대학교 워크스테이션 매거진 팀 '로컬키트(local.kit)' 소속 '로코노미'팀의 기사입니다.

팀명 '로코노미'는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지역 특색을 활용한 비즈니스 상품 혹은 공간을 가리킵니다. 청년들의 열정과 로컬의 매력이 가득 담긴 경북의 로코노미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한숨 돌릴 새 없이 바쁜 일상에 현대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찾기 시작했다. 필자도 머릿속이 끊임없이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과부하가 올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싶은 시간이 찾아온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서울에서 의성으로 오게 된 한 청년이 있다. 고명진 대표는 경북 의성에서 티앤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퍼즈유어셀프(pause yourself)’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시작한 이 브랜드는 티 클래스 등 차를 매개로 하는 문화 체험을 제공한다. 여러 마켓 출점을 통한 홍보도 진행하며 ‘차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순간을 음미하게 해주는 것이다’ 라는 점을 알리고 있다.

로코노미팀이 이 브랜드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고명진 대표가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가, 지금의 우리에게, 그리고 현대사회의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역의 원물을 이용해 차茶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삶 속에 여유를 선사하고자 하는 퍼즈유어셀프의 가치를,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의성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 저는 의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에요. 부산에서 태어나 쭉 울산에서 살았고,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했었어요. 그러다 안계면에서 진행된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의성에 살며 이곳의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의성은 지형이 굉장히 다양하고 자연 자원이 풍부하거든요. 평화로운 자연을 보며 행복을 많이 느끼면서 좀 더 오래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그러다가 좋아하는 일로 한번 여기서 먹고 살아볼까? 하는 생각으로 제가 10년 째 즐기고 있는 차를 이용해 가게를 열었습니다. 프로그램이 21년 3월부터 3개월 간 진행됐었는데, 끝나고 거의 바로 준비를 시작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안계면에서 시작을 했어요. 안계의 위천이라는 곳을 제가 좋아하는데,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그리고 브랜드를 시작하는 데 있어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어요. 안계의 매력적인 자연을 활용하고 싶어 그곳에서 첫 매장을 열게 되었어요. 휴식을 위해 방문했다가 티 클래스를 체험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으셨고요.

그런데 동네 연령대가 좀 높은 편이라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어요. 의성의 중심지인 의성읍에서의 접근성도 좋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봉양면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여기가 의성의 중앙이라 어느 곳에서든 오기 편해요. 의성읍으로 옮길 생각 없냐는 말도 하시는데, 읍 쪽에는 이렇게 자연 풍경이 바로 보이는 곳이 별로 없어요. 퍼즈유어셀프는 자연을 느끼며 휴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고자 하기 때문에, 자연이 바로 보이는 이 공간이 브랜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메뉴 이름에 ‘안계’, ‘위천’ 등 의성의 지명이 활용되는데, 해당 장소가 대표님께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의성에서 더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된 건 자연 때문이었어요. 지금 판매중인 차들도 의성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거예요. 모든 차들이 영감 받은 장소가 다릅니다.

우선 ‘의성 할머니 집 마당’ 은 한적한 시골집에서 할머니께서 주시는 구수한 차의 편안한 느낌을 표현한 메뉴예요. 의성 현미가 들어가기 때문에 의성이라는 지명을 활용했어요. 그리고 ‘그 봄, 안계 화원’ 안계의 골목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차예요. 어르신들께서 본인의 앞마당이나 골목 꽃을 직접 심고 가꾸시는 정원이 있는데, 봄마다 피어나는 다양한 꽃들이 화원처럼 느껴져서 안계를 이름에 넣어줬습니다. 또 위천은 제가 연고도 없이 혼자 의성에 오며 외롭고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갔던 장소예요. 그곳의 아름다운 노을과 풍경을 맛뿐만 아니라 찻잎의 모습에 담은 차를 만들게 되면서 ‘해 질 녘 위천 산책’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제가 티 클래스를 진행하거나 상품 판매를 할 때 이렇게 메뉴 이름에 얽힌 배경을 설명해 드리면 안계가 어딘지, 위천이 어떤 곳인지 굉장히 궁금해하세요. 의성을 잘 모르시는 분들께는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요소인 것 같아요. 또 의성 군민분들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찍은 사진을 사용해서 블렌딩 티 상품 패키지를 제작하고 있는데, 메뉴 설명을 드리고 상품 패키지를 보여드리면 ‘이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며 좋아하세요. 평범한 생활의 공간을 새롭게 보게 되시는 거죠.


저마다의 메뉴마다 이름이 있고,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의성의 농작물을 이용해서 상품을 생산하시는 것에 대해 더 설명 부탁드려요.)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의성은 마늘뿐 아니라 쌀도 유명하고, 자두나 복숭아, 사과 같은 농산물도 재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실제로 먹어봤는데 굉장히 맛있더라고요. 이렇게 훌륭한 특산물을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의성의 현미(‘의성 할머니 집 마당’)와 사과(‘해 질 녘 위천 산책’)를 이용해 블렌딩 티를 만들게 됐습니다.

농작물은 일반 시장이나 로컬 푸드 마켓에서 구매를 할 때도 있고, 아는 분들을 통해 못난이 과일 같은 것을 구입하기도 해요.


퍼즈유어셀프에서 판매하는 차는 ‘블렌딩 티’다. 블렌딩 티는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만든 차로, 일반적인 녹차, 홍차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카페인이 들어간 차뿐 아니라 無카페인 차도 판매되고 있다. 모두에게 언제든 ‘나를 멈추고 여유를 찾는 시간’을 선사하고자 하는 퍼즈유어셀프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의성이라는 지역이 퍼즈유어셀프를 운영하는 데 있어 대표님께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제가 지금 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원래 외국계 기업에서 국내외 시장 조사나 마케팅, 무역 관련 업무를 했었어요. 지금도 프리랜서로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들은 제가 잘 하는 일인 거고, 차는 좋아하는 일인 거죠. 저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고, 그걸 해보자는 생각이 든 게 의성에 와서였어요. 제가 결심을 하도록 도와준 거죠. 약간은 무모하지만 용기를 낼 기회를 준 곳이에요. 또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을 하기는 힘든데, 이걸 좀 현실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 영감을 주기도 했어요.

저는 외국 생활도 해서 제 2의 고향, 제 3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많은데, 의성도 저에겐 고향 같은 곳 중 하나예요. 또 의성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많은 곳을 돌아다녔거든요. 이곳에 정착한 다른 지역 출신 청년 중에 저만큼 곳곳을 누비며 의성의 매력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지 않을까 하는 자부심도 있어요.

사실 저처럼 아예 연고가 없는 분들은 많이 안 계세요. 친척, 친구 등이 의성에서 살고 있어 도움을 받거나, 혹은 가족들과 함께 이사를 오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집을 구하고, 가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또 일을 하는 시간 외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의성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군에서는 마늘 같은 특산물을 홍보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농산물 말고도 휴식할 수 있는 관광지가 많거든요. 아주 이름난 곳이 아니더라도, 빙계계곡 쪽에 캠핑장도 있고, 위천에도 캠핑하러 꽤 오시고, 고운사 같은 역사적인 장소나 큰 저수지도 있어요. 곳곳에 드넓은 평야가 있는 것도 매력이에요.


멋진 풍경이 있다고 추천을 받아 방문하게 된 곳. 가게에서 5분을 채 안 걸어 만난 자연이다.


퍼즈유어셀프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차를 편안하게 마시고, 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최근에 ‘차’의 이미지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티 오마카세도 등장했고 저처럼 차를 새롭게 풀어가고자 하는 시도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전통차만을 떠올리지는 않게 됐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차는 다구(茶具)를 갖추고 예절을 갖춰 마셔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차는 우리가 좋아서 마시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음료이고, 또 그것이 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에요.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쉬는 시간을 챙기며 살게 하는 거예요. 차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도 회사를 다니며 번아웃이 와서 프리랜서로 전향을 한 것이기도 하고, 저뿐만 아니라 요즘은 사람들이 쉽게 지치기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시간이 나면 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쉬었으면 좋겠어요. ‘퍼즈유어셀프’라는 이름에도 일시정지해 자신을 챙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저는 이 메시지를 차를 통해 풀어내면서 티 클래스도 진행을 하고, 다른 모임도 구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을 의성분들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알리고 싶어 포항, 구미, 상주, 안동 등 주변 지역으로도 티 클래스를 나가고 있습니다. 또 상품 유통 측면에서도 확장을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인터뷰차 방문한 우리에게 차를 한 잔 씩 맛보여 주셨다. 수색의 변화에 집중해 차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저는 공업 도시로 알려진 울산’광역시’에서 살았지만, 어린 시절은 농촌에서 보냈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도시보다는 시골, 자연과 가까운 삶이 더 체질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제가 원래 계획한 나이보다 일찍 번아웃 때문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울산에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시골에서의 삶을 계속해서 꿈꾸고 있었어요. 사실 울산에서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같이 살면서 프리랜서 일만 해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거든요.

그러다가 ‘동료’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어요. 동료,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의성에 오게 됐어요. 동료를 찾지 못해 지금도 혼자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주변에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도 매력적인 의성의 자연, 그리고 이곳에 와서 처음 얻은 위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여기 계속 남아서 제가 좋아하는 의성을 누군가와 즐기고 싶은 거죠. 의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기서 겪는 어려움보다 훨씬 커요. 여기서 계속 지내고 싶어요.”


의성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지는 대화였다. 필자의 고향은 의성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어릴 때 몇 번이고 왔던 곳을, 10년이 지나 다시 돌아봤다. 오래된 추억과 새로운 기억이 겹겹이 쌓인 이곳. 퍼즈유어셀프에서 보낸 시간은 내가 의성을, 나의 고향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나도 의성을, 이 익숙하고도 낯선 곳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퍼즈유어셀프에서 보낸 ‘차멍’의 시간. 차가 우러나옴에 따라 수색이 변하는 것을 보며, 그 모양이 변하는 찻잎, 꽃잎을 보며 나도 모르게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차에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차가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졌으나, 메뉴 하나 하나를 맛 보며 점차 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잠시 쉬어 가고 싶다면, 일시정지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퍼즈유어셀프의 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필자가 의성에서 찾은 이 여유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글·사진: <local.kit in 경북> 로코노미팀 김소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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