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돌담길을 따라 가을 지나, 겨울
시청역 2번 출구에서 나와 거리를 지난다. 서울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난 구청사 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 서울 시청 건물이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과거를 단절시키려 하지 않고,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려는 도시의 의지일까. 시청역 일대는 그런 시대적 상징의 집약체이다.
덕수궁의 고즈넉한 돌담길은 서울이 지닌 묵직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맞은 편의 서울 광장과 시청 건물은 오늘날 서울이 가진 활기와 역동성을 보여준다.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활기를 아우르는 이 공간은 서울 시민들에게 단순한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장소에 담긴 굴곡진 서울의 역사들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게 하고, 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는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돌담길을 따라 이어진 길을 향해 나섰다.
01.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돌담길, 그리고 정동길
울창한 단풍으로 물든 길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모든 근심을 뒤로하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다. 중명전, 정동 국립극장 등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이곳에서 만나는 오늘은 여전히 화창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버스킹을 하는 모녀를 보았다. 빨갛게 물든 나무를 배경으로 그들의 짙은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연인은 헤어진다는 말이 있다. 가을과 절경을 이루는 이 길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별마저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다. 돌담길과 정동길은 연결되어 있다. 은행나무 사이의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정동교회가 우리를 맞이한다. 정동교회의 붉은 벽돌 건물은 이 길의 끝자락을 걷고 있는, 그러면서도 현재를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와 과거를 이어준다.
도심 한가운데서 정처 없이 이 길들을 걸으며 사색해 보는 건 어떨까.
02. 돌담 길 처마 위 도시를 걷다, 고종의 길
바스락 으스러지는 낙엽을 밟으며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만 쪽문 하나가 있다. 쪽문을 통해 고개를 숙여 들어가면 낙엽을 입은 돌담이 양옆에 쭉 이어져 있다. 은근한 경사를 따라 좁은 돌담길을 걷다 보면 보일 듯 말듯한 도시의 풍경들이 처마 너머로 불쑥불쑥 시야에 들어온다. 그 길 위에서 힘없이 흔들리던 한 국가의 절규와 오늘날 찬란히 빛나는 도시의 화려함이 교차한다.
발길은 자연스레 고종이 걸었던 고심에 찬 그 길을 따라간다. 길에 묻은 과거의 상흔을 느낀다. 그리고,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고종이 품었던 꿈은 그 시대에서 좌절로 끝났지만, 그가 걸었던 길은 오늘날 눈부신 도시, 서울로 이어져 있다.
조그만 쪽문을 통해 다시 바깥의 세상으로 나왔다. 잠깐의 시간 여행을 한 듯하다. 다시, 바삐 움직이는 도시의 길 위를 걸어본다.
자주와 독립을 꿈꾸던 과거의 희미한 소망이
오늘, 우리의 발걸음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며
03. 과거 서울의 심장부를 통해 현재의 서울을 마주하는 서울도서관
옛 서울특별시청 건물을 개조한 서울도서관은 서울의 역사를 간직하며 과거와 오늘을 연결한다.
3층에 올라서면 “서울의 기억이 머무는 곳”이라는 팻말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한쪽 벽면에 자리 잡은 <서울 파노라마>는 동일한 장소의 1929년과 2009년을 대조한다. 예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2000년대 서울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이 도시가 지나온 급격한 성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어 5층의 하늘 뜰에 서면, 저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부터 근경의 빌딩 숲까지 서울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고층의 건물은 아니지만 서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서울도서관에서 마주한 서울이라는 도시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오래도록 축적되어 온 이야기의 집합이다. 이곳에서 서울은, 과거와 오늘을 이어 미래를 기대케 한다.
04. 정동 전망대에서 마주한 시간
정동 전망대에 서면, 시간은 묘하게 느리게 흐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현대와 과거가 맞닿은 도시의 기억이다. 덕수궁의 기와지붕이 선명한 선을 그리며 고요히 자리하고, 그 너머로 빌딩 숲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서 있다.
저녁 햇살이 비스듬히 도심을 물들이는 시간, 붉게 타오르는 하늘 아래 오래된 돌담길은 더욱 짙은 온기를 머금는다. 수백 년 전, 이 길을 따라 걸었을 사람들의 숨결이 마치 지금 내 곁에 있는 듯 생생하다.
전망대에서 마주한 것. 단순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니다. 이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묵직한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르는 서울의 깊은 숨소리다. 잠시 멈추어 선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과거와 현재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05. 답사를 마치며
굽이굽이 이어진 돌담길을 지나, 지나온 시간들이 묻어있는 고종의 길을 걸으면서 계절이 주는 감각들을 찬찬히 음미했다. 바스락 으스러지는 낙엽과, 높고 파란 가을 하늘, 몸을 감싸는 선선한 바람. 이 가을의 정취는 단순히 계절의 한 장면을 넘어, 수백 년간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숨결이다. 그 숨결과 함께 호흡하며, 시청역은 문화와 소통의 장으로서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장소로 매김하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는 곳. 다양한 축제와 전시의 장으로서 문화예술이 꽃피우는 장소로서 우리 민족의 오랜 염원이 실현되는 곳이다. 이 열린 공간이 과거와 현재를 엮어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글·사진: <local.kit> 김상겸 에디터, 변정인 에디터, 소예린 에디터, 이민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