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차 신촌 명물길 골목대장, 드림합주실에서
– 신촌의 미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Place: 신촌 드림합주실 연대점
Interviewee: 드림합주실 우승보 대표
Q. 사장님 안녕하세요! 자주 방문하였던 드림합주실이지만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1998년에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벌써 27년차죠. 명실상부 신촌의 터줏대감, 드림합주실을 열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음악이 너무 좋았고 악기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연습실을 전전긍긍하다가, 처음에는 같이 활동하던 팀에서만 쓸 용도로 개인 합주실을 차렸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어요. 그렇게 드림합주실이 탄생한 거예요.
Q. 드럼을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그동안 거쳐 오신 음악 여정이 궁금한데요.
교회에서 드럼을 처음 배웠어요. 적성에 맞는 악기를 찾았죠. 그동안 세션 활동도 많이 했고, 크리스천 메탈 밴드 ‘예레미’에서도 활동했어요. 박완규, 김경호, K2, 김종서 등 여러 뮤지션과도 협업했고요. 음악에 대한 미련이 없을 만큼 많은 공연을 해 왔어요. 이제는 좋아하는 음악으로 사업을 하면서 취미 생활도 함께하고 있네요.
Q. 신촌에서 합주실을 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무런 계기가 없어요. 돌아다니다 보니 가장 외지고 임대료가 싼 곳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당시에 핫플레이스라고 하면 명동, 종로, 그리고 신촌이었어요 - 홍대는 신촌에 게임도 안 되는 곳이었죠. (웃음) 그런데 신촌도 먹자골목 쪽만 번화했지, 외곽의 주택가는 조용했으니까요.
Q. 신촌이 홍대보다도 핫한 장소였다니, 지금으로서는 놀라운 이야기네요. 그 시절 신촌은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요?
골목마다 사람들이 다니기 불편할 정도였어요. 유동 인구가 워낙 많았거든요.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하다못해 홍대 재학생들도 신촌으로 넘어왔으니까요. 신촌에서 모든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봐야죠.
Q. 그렇게 부흥하던 신촌 상권이 퇴색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연세대학교 신입생들이 송도캠퍼스*로 넘어가면서 신촌 상권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봐요. 대학 문화를 주도하는 1학년들이 다 송도로 가버렸으니까요. ‘차 없는 거리’**가 생긴 것도 큰 영향을 미쳤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려면 택시를 바로 앞에서 잡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연세로 골목에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 거예요. 결국 최근에 차 없는 거리가 해제됐지만, 이제는 신촌에 특색 있는 무언가가 없어요. 쇠락한 문화를 되찾는 건 정말 어려운데 말입니다.
*인천 송도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일부 과를 제외한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의 신입생은 이곳에서 의무적으로 1년 동안 생활하게 된다. 흔히 ‘송도 유배’라고들 한다.
**2014년에 연세로를 보행자와 대중교통 전용 지구로 지정한 정책이다.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들어 상권을 활성화하고 교통 체증을 완화하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Q. 과거 대학 문화의 성지라고 불렸던 신촌만의 특색은 무엇이었나요?
오직 신촌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롤링 스톤즈’ 같은 공연장이나 희귀 라이브 앨범과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음악 감상실 같은 곳들이요. 젊은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특별한 공간들이었죠. 이대의 스타벅스 1호점이나 유명 미용실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인파에 치일 정도로 거리가 늘 북적거렸어요.
Q. 지금은 홍대가 그런 지역인데 말이죠. 신촌은 어째서 주도권을 빼앗겼을까요?
문화의 흐름은 아이디어가 있는 청년들이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신촌은 청년들이 무언가 시도해 볼만한 공간이 아니에요. 흔히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잖아요. 상권이 한번 활성화되니 임대료가 비싸져서 가게들이 문을 닫고 근방으로 쫓겨나게 돼요. 신촌은 그렇게 축소되기 시작했던 거죠.
술집이나 고깃집만 우후죽순 생기기보다 특색 있는 공간이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해요. 유일한 합주실이었던 드림합주실과 공연장, 음악 감상실이 있었으니 신촌에 음악하는 친구들이 많이 모이게 된 것처럼요. 가장 유명했던 ‘롤링 스톤즈’ - 지금의 ‘롤링 홀’이 홍대로 넘어가면서, 공연장과 합주실이 모두 홍대에서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굳이 신촌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Q. 어떻게 하면 신촌이 ‘문화예술의 중심’이란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있어야 할뿐더러, 문화를 선도하는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큰 부지와 자본이 충족되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문화의 흐름이 다시금 뿌리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려면 상당히 많은 자본을 투자해야 하고 경쟁력도 갖추어야 해요.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위에 또 다른 좋은 공간들이 생기는 건 시간 문제라고 봐요.
Q. 지역을 대표하는 매력적인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만들어내기가 참 어려운 일이죠. 운영하시는 드림합주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신촌에서의 27년 동안, 하다못해 이곳 드림합주실만으로도 정말 많은 뮤지션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어요. 음악하는 사람 중에 우리 합주실을 모르면 간첩이었으니까요. 거기다 합주하고 나서 바로 공연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많았고요. 홍대가 주축이 된 지금에도 제게는 자신감이 있어요. 내가 다시 이 흐름을 갖고 올 수 있다는 자신감. 그 믿음은 경쟁력에서 나오는 겁니다. 나만의 기술과 노하우가 있으니까요.
드림합주실의 손님들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세요. 백석대, 호원대, 서울예대… 아마추어보다 전공생들과 전문가들이 더 많아요. 그들의 니즈를 우리 합주실이 채워 줄 수 있다는 거죠.
Q. 전국에서 찾아온다니 대단한 일이네요. 어떤 특별한 점이 사람들을 드림합주실로 이끄는 걸까요?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합주실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요. 실제 공연장에서의 연출을 대비해 직접 음향을 모니터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 필요하죠. 패드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독자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요. 보통의 합주실에서는 또렷하고 선명한 음향을 구현해 내기 힘들어요. 디지털 믹싱과 공간, 모니터링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좋은 장비와 기술력은 드림합주실의 경쟁력이에요. 손님마다 음향 세팅을 도와드리면서 장비에 관해 설명해 드리는 것도요.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공간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드림합주실까지 오는 친구들은 이곳이 특별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예요. 아마 드림합주실은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겠지만 딱 한 번만 와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웃음)
Q. 저 또한 드림합주실만의 특별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언젠가 이 공간이 구심점이 되어 신촌 문화의 재흥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드림합주실이 있는 이 골목은 신촌 명물길 중에서도 특히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이에요. 그런데 합주실이 생기면서 홍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음악인들이 기타를 메고 찾아오게 된 겁니다. 분명 드림합주실같은 공간이 주변에 더 생긴다면 신촌 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길거리 버스킹 공연도 잔재하는 신촌 문화 중 하나인데요, 이 또한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 보시나요?
자신만의 예술을 길거리에서 표현하는 행위는 분명 문화의 활성화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겠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죠. 거리 공연 잠시 보고 떠나는 게 아니라, 이곳에 더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인프라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Q. 어떻게 보면 현재의 신촌은 잠시의 유흥을 위해 스쳐 가는 ‘수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네요. 우리가 지향하는,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는 신촌은 어떤 ‘목적’이 되어야 하고요.
그렇다고 봐야죠. 지금의 신촌 상권에는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잃어버린 흐름을 다시 찾아오기 쉽지 않겠지만, 드림합주실처럼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것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드림합주실의 차별화된 장비와 음향 시스템은 기술적으로만 유용한 게 아니라 합주 자체를 즐겁게 만들어 줘요. 연주가 훌륭하지 않더라도 생생한 음향에 리버브를 멋지게 걸어 주고 조명도 화려하게 들어오면 신이 나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직접 세팅을 도와드리며 제 노하우를 알려드리는 거고요. 음악은 즐겨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을 모으려면 그렇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거죠.
Q. 우리의 신촌 문화가 또 한 번 널리 울려 퍼지기를 바라요. 늘 이곳에서 자리를 지켜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여정도 응원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문화를 되찾아올 수 있을까 - 그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은 늘 같아요. 문화의 흐름이라는 건 분위기가 만들어 주는 거예요. 신촌만의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야 하겠죠. 저 혼자 버티기는 어려우니까요, 함께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그 많은 연세대 학생이 갑자기 신촌에서 자취를 감춘 근본적인 이유도 해결해야 하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글: <local.kit in 신촌> 김서정 에디터
사진: <local.kit in 신촌> 김서정 에디터, 드림합주실
Connected to…
Prologue. 해가 저문 마을에서
청춘의 본고장, 신촌 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엿보다
Ep.1 우리는 잇고 엮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Place: 서대문 청년창업센터
Interviewee: 서대문구 청년정책과 청년벤처팀 임성열 주임
Ep.2 방랑하는 청춘이여, 이곳에서 도약하라
Place: 서대문구 신촌문화발전소 3층 카페 바람
Interviewee: 신촌문화발전소 김안나, 한보미 매니저
Ep.3 울려퍼져라! 신촌-문화
Place: 신촌 드림합주실 연대점
Interviewee: 드림합주실 우승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