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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너울 속, 지속 가능한 공존을 꿈꾸다

by 로컬키트 localkit

해 질 무렵의 강릉 바다는 유난히 반짝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선 또 다른 파도가 이는 중이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


파도는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그 곁엔 카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점점 잦아진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SNS 속 여행지로 급부상한 강릉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그러나 그만큼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이들은 점점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관광은 흘러 들어왔지만, 삶은 밀려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한다는 이름 아래 오히려 지역성을 지워나가는 역설적인 풍경.

‘강릉스러움’은 퍼져있지만, 진짜 강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변화 속에서, 지역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로컬 브랜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번 인터뷰에서 필자는 두 명의 창업가를 만났다. 서울특별시의 지역연계형 청년 창업 지원사업 ‘넥스트로컬’을 통해 강릉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들이다. 하나는 강릉의 자연을 닮은 디저트를 만드는 솔방울 제과점, 다른 하나는 지역 농산물과 전통주 문화를 재해석한 주룩주룩 양조장이다. 이들의 브랜드는 단지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지역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젊은 창업가들은 지속 가능한 지역성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솔방울 제과점 – 김민경 대표


Q. 넥스트로컬을 통해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래 베이커리 업종에서 근무하면서, 언젠가는 저만의 제과점을 창업하는 게 오랜 꿈이었어요. 그러던 중 남자 친구의 일 때문에 서울과 강릉을 오가게 됐고, 자연스럽게 강릉이라는 도시를 자주 접하게 되었죠. 강릉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하지만 지방이다 보니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고, 이 기회에 창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어요. 마침 넥스트로컬 공고를 보았고, 제게 딱 맞는 기회라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어요.

Q. 강릉을 창업지로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릉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은 이곳이 정말 살기 좋은 도시라는 거예요. 여행지로서도 매력적이고, 지방이지만 필요한 것들은 다 갖춰져 있어요. 시내에서 차로 20분만 나가면 예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고, 바다뿐만 아니라 대관령과 같은 멋진 산도 있죠. 저는 자연을 좋아하는데, 강릉은 그런 점에서 정말 이상적인 곳이에요. 특히 강릉은 두부, 감자옹심이, 옥수수, 커피 등 사업 아이템이 다양한데, 이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Q. 강릉의 소나무를 모티브로 디저트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바다보다는 산을 더 좋아해요. 강릉의 바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관련된 굿즈나 제품들이 많이 있어요. 또 커피, 옥수수, 감자, 두부 같은 것들은 포화 상태라고 느껴졌죠. 그런데 제가 베이커리 업계에서 일해왔던 경험이 있다 보니, 강릉의 정체성에 맞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강릉의 상징적인 존재인 소나무를 떠올렸죠. 특히, 바다와 소나무가 함께 있는 풍경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강릉은 소나무가 많은데 왜 이걸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제과 아이템으로 표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소나무의 솔방울을 귀엽게 형상화한 디저트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예요.

Q. 앞으로 솔방울 제과점이 로컬 브랜드로서 어떤 역할을 해나가길 바라나요?

저는 솔방울 제과점이 단순한 제과점을 넘어서, 강릉의 문화적 플랫폼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솔방울 모양의 빵을 파는 가게로 끝내는 게 아니라, 강릉의 도시 정체성을 담은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강릉의 소나무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매장에 소나무와 관련된 장소들을 소개하는 귀여운 지도 같은 걸 배치할 계획이에요. 예를 들어, ‘솔향 수목원’, ‘대관령 숲길’, ‘송정 솔밭’ 같은 명소들을 지도에 담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리려고 해요. 저는 솔방울 제과점이‘솔향 강릉’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강릉의 독특한 매력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될 거라고 믿어요.


주룩주룩양조장 – 한빛찬 대표


Q. 넥스트로컬을 통해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희는 대학 동기 세 명이 함께 창업했어요. 그중 강릉 출신은 저 한 명이고, 나머지는 각각 서울과 대전 출신이죠. 당시 주류를 판매하려면 ‘지역 특산주 면허’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위해서는 주원료인 쌀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지역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어요. 여러 지역을 고민하던 중 강릉이 바다도 있고, 관광객도 많고, 콘텐츠적으로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넥스트로컬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는데, 그해 참여 지자체 중에 강릉이 포함되어 있었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을 지원한다는 점이 저희와 정말 잘 맞았어요. 그렇게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됐고, 그게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Q. 막걸리와 떠먹는 요거트를 함께 만든다는 게 독특합니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정확히 말하면 요거트는 아니고, ‘떠먹는 막걸리’에 가까워요. 처음엔 단순히 “저희 막걸리는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정부 지원사업에 어울릴만한 세상에 없던 것, 실험적이고 신선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원래 저희도 그런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었고요. 어느 날 카페 쇼케이스를 지나가다가 푸딩 같은 디저트들이 진열된 걸 봤는데, 그걸 보면서 “막걸리로 카페에서 팔 수 있는 디저트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우리나라에는 디저트 와인처럼 디저트로 먹는 술 카테고리가 거의 없다 보니까, 그런 점도 재밌게 느껴졌고요. 또 막걸리에 대해 여전히 ‘비 오는 날 파전이랑 먹는 술’이라는 올드한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저희는 그걸 깨고 싶었어요. 카페에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었죠.



Q. 주룩주룩 양조장의 브랜드 철학은 무엇인가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술을 만들되, 로컬의 가치는 유연하게 잘 활용하자는 게 핵심 철학이에요. 저희 철학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눠볼 수 있어요. 하나는 ‘막걸리 양조장을 왜 새로 시작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왜 하필 강릉에서 로컬 양조장을 하느냐’는 거예요.

먼저 막걸리 양조장을 창업한 이유를 보면, 저희의 핵심 철학이자 모토는 “가장 익숙한 쌀로, 가장 신선한 술을 만든다”예요. 우리가 쌀에 익숙하듯, 해외에서도 익숙한 원료로 술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술이라는 단어에 ‘전통’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어서, 뭔가 전통적인 방식이나 의미를 꼭 담아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그런 전통을 존중하고 잘 해석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거기에 얽매이면 재미가 없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전통에 갇히지 않고, 쌀이라는 가장 익숙한 곡물로 신선한 술을 만드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강릉이라는 지역에서 로컬 양조장을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로컬’이라는 개념을 너무 협소하게 보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저희 제품 중 코코 파인에는 코코넛과 파인애플이 들어가는데, 이건 강릉에서 나지 않는 재료잖아요. 대신 커피는 강릉에서 로스팅된 걸 쓰기도 하고, 쌀은 강릉 쌀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요. 이렇게 지역 재료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무조건 지역산만 고집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로컬’에 갇혀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억지로 만들기보다는, 로컬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지역에도 더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강릉에서의 창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은 지금도 답을 찾는 중이에요.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역 소멸이라는 이슈가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거라는 점이에요. 강릉도 예외는 아니고요. 저출산, 인구 유출로 인해 지방 도시들은 점점 일상적인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속 가능한 창업이 되려면, 지역이 일상적인 삶의 기반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육, 의료, 직장 같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관광뿐 아니라 ‘사는 곳’으로서의 매력이 생기고, 그게 진짜 지역을 지탱하는 힘이 되거든요. 지방에도 좋은 학교와 직장이 있고, 살기 좋은 환경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야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더 다양한 창업이 가능해질 거라 생각해요.

Q. 앞으로 주룩주룩 양조장이 로컬 브랜드로서 어떤 역할을 해나가길 바라나요?

저희가 바라는 건, 강릉의 주룩주룩 양조장 같은 모델을 우리 지역에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말하자면 지역 창업이나 지역 소멸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참조할 만한 레퍼런스가 되는 것, 그게 꿈이에요. 예전처럼 서울에서 하는 걸 여기서 대신 즐기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이제는 서울에선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로컬만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해야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강릉이라는 지역성과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양조장을 강릉의 ‘점집 거리’에 연 이유도, 강릉 최대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와 연결된 술 문화 때문이에요. 단오제는 예전엔 학교도 하루 쉬어가면서 온 동네가 일주일 내내 남대천 주변에서 술 마시고 즐겼던 축제예요. 원래는 신에게 술을 빚어 바치는 의식도 있고요. 이런 건 서울에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콘텐츠예요. 그래서 저희의 구름신 컨셉도 그런 지역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죠.

이런 스토리와 색깔이 있기에, 서울에서 단순히 베껴갈 수 없는 콘텐츠가 되고, 다른 지역에서도 “우린 저 브랜드처럼 뭘 해볼 수 있을까?” 하고 자기 지역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지역에 뿌리 내린 브랜드로서 영감을 줄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되는 것, 그게 주룩주룩양조장이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역할이에요.


그들이 꿈꾸는 강릉은


두 브랜드는 모두 로컬에서 시작했지만, 단순히 ‘강릉’이라는 이름에만 의존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건 어떻게 지역성뿐 아니라 정체성까지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강릉이라는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브랜드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었다.

솔방울 제과점과 주룩주룩 양조장은 강릉에서의 사업을 단지 이곳에서의 성공에 그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로컬이란,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의 총합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브랜드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이 꿈꾸는 건 단지 강릉에서 성공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도시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진짜 강릉’이란 무엇인지는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이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로컬을 고정된 이미지로 가두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발굴해내는 시도다. 강릉의 자연뿐만 아니라 작물들, 단오제와 점집거리 같은 지역 문화 자산도 그들에게는 ‘소비’가 아닌 ‘표현’의 대상이다.
김민경, 한빛찬 대표가 말했듯이, 로컬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그곳이 '사는 곳'으로서의 매력을 가졌는지에 따라 달려 있다. 단지 관광지로서 소비되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곳.
강릉의 얼굴이 흐릿해질수록, 그 흐릿함을 뚫고 이야기의 결을 다시 창조하는 브랜드들이 필요해진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단지 강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지역을 위한 다음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독자인 여러분이 바로 그 시작점에 서 있기를 바란다.

글: <local.kit in 강릉> 최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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