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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우리의 강릉이 되기까지

by 로컬키트 localkit

강릉은 요즘 ‘잘 나가는 도시’다. SNS 속 카페는 매일 새롭게 생기고, 번화하며 골목길은 포토존이 된다. 여름에는 바다를 보러 가고 겨울에는 커피를 마시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렇게 강릉은 점점 더 ‘뜨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찾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데,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강릉은 주말이면 북적이지만 평일에는 조용하다. 사람이 많은 듯한 이 도시 안에서 정작 삶은 빠져나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바다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가는 곳이 됐다. 도시는 활기차 보이지만 거기서 살아가는 누군가는 조용히 밀려나고 있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언제부터인가 강릉은 21만명의 인구 장벽이 붕괴되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숫자보다 텅 빈 집, 닫힌 상점, 사라진 이름들에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도시가 뜨는 속도와, 그 안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속도 사이에는 어떤 균열 같은 게 있다. 그 균열을 사람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강릉은 단순한 재개발이나 젠트리케이션을 넘어서 이 도시에 어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지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누구의 도시였는지, 누구의 도시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다.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는 이곳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좋은 어른’이 되려는 김민섭 작가의 이야기이고 하나는 낡은 집을 고쳐 펜션을 열고, 마을에 남아 있는 정영희 대표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로컬은 주소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도시가 ‘당신의 강릉’에서 ‘우리의 강릉’이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건 빠른 변화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 머무는 방식이라는 것을.

김민섭 작가는 어느 날, 강릉에 자리를 잡았다. 수도권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아이와 손을 맞잡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 도시로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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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바다에 살면 안 되냐고 묻더라고요. 아빠는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날 바로 집을 내놓고 이사했습니다.”

강릉은 그에게 단순한 이주지가 아니라, 가족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한 자리였다. 그는 “사람의 잘됨에는 일상의 태도가 관여한다”고 믿는다. “다정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 생각해요.”

그가 연 서점의 이름은 ‘당신의 강릉’ 이다. 그곳은 단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작은 서가 옆에는 전시장이 있고, 머무는 이를 위한 소파가 놓여 있다. 로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단순한 책방을 넘어 사람과 작업이 함께 머무는 공간이다.

“책방이지만,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책방이 ‘괜찮은 어른’이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그의 말은 일종의 다짐처럼 들렸다. 도시가 너무 빨리 바뀌는 시대에, 김민섭 작가는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도시와 관계 맺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로컬은 허상이에요. 나는 서울에서도, 원주에서도 로컬이 될 수 있었어요. 결국은 내가 그곳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 공간을 운영하며 얻은 수익을 비영리 법인에 기부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성장하지만, 정확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제보다 조금은 좋은 사람이 돼 가는구나 하는 확신이 있으면, 그날들은 되게 행복해요.” 책방에서 나눈 글쓰기, 대화, 관계는 결국 지역 사회로 다시 환원된다. “착하게만 살면 온 세상이 얘네를 먹여 살리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어요. 안 오면 내가 먹여 살릴 테니 걱정 마라 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도시를 고민하는 어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사람을 밀어내는 구조라면, 그는 ‘머물 수 있는 방식’을 만드는 실험을 계속해왔다. 그 공간은 로컬의 상징이 되기보다는, 그저 좋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당신의 강릉’은 그래서 누군가의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머무는 구조에 가까웠다. 말보다는 태도가, 콘텐츠보다는 감정이, 공간보다 사람이 우선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는 이 도시가 자신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이렇게 묻는다. “내가 이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김민섭 작가가 도시의 중심에서 사람간의 관계와 사람과 도시 사이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면, 정영희 대표는 마을의 경계에서 남겨진 것들을 지켜내고 있었다. 정영희 대표는, 관광객이 떠나고 한적한 강릉 주문진의 한 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을 고쳐 펜션을 만들었다.

“네, 원래 가정집이었어요. 펜션 하려고 지은 건 아니었고, 작년까지 여기서 살다가 나왔어요.”

애 셋이 각자 방 하나씩 써보자고 시작한 집이었고, 지금은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됐다. 펜션의 이름은 ‘봄독채’이고 이 공간이 “단순한 펜션”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지인들을 초대하고, 주말에 사람들이 마음편히 쉬다 갈 수 있는 곳, 그거면 충분하다고 한다. “단체들이 와서 즐겁게 놀다 갈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는 자신을 “관광업을 하러 돌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냥 이 동네를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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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태어나 50년을 넘게 생활한 사람 그의 마을을 향한 애정은 남다르다. “어떻게든 유치하게라도 이 마을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거든요.” 그는 마을에 대해 말할 때,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를 지키는 감각을 강조한다.

“도로를 뚫어서 땅값을 올리려는 게 너무 싫어요. 지금 있는 집들, 조금만 칠해도 예쁜 시골이 돼요. 여기 살다 나가보니까… 밖에서 보면 여기가 더 좋아 보이더라고요. 놀러 온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예요.”

그는 새로운 건물을 짓기보다, 빈집을 활용해서 마을을 다시 잇는 상상을 한다. “비어있는 집들을 관광객,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서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는게 제 목표에요.” 그의 말은 ‘변화’가 아닌 ‘보존’을 말한다. 이 도시를 바꾸기보다, 남기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해결책은 행정 수치나 개발 계획이 아닌, 매일 동네에서 생활하고, 동네를 걸어다니며 비어 있는 집들 앞에 잠시 멈춰서는 생활자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마을은 더 느려져도 돼요.” “좋은 거 다 때려 넣는다고 로컬 되는 거 아니잖아요.”

그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곳엔 강릉에 남아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과 고집이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김민섭 작가의 이야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 두 사람 모두 빠르게 바꾸기보다, 천천히 살아내는 방식을 택했다. 공간을 소유하거나 장식하는 대신, 속도를 늦추고, 사람을 남기고, 관계를 오래 두는 방식으로 도시와 연결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고민하는 건 같다. 누군가 이곳에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과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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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작가는 ‘좋은 어른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정영희 대표는 ‘하나의 마을을 다시 잇는 상상’을 이어간다.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막기 보단 떠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로컬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속도를 늦추고, 손으로 짓고, 말보다 태도를 앞세우며 자신이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고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강릉은 이제 누군가의 강릉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보다는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했고,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구조를 만드는 일이 도시의 진짜 속도라는 걸, 나는 그들의 말을 통해 배웠다.

도시는 결국, 사람의 속도로 만들어진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게, 이 도시에서 삶이 사라지지 않게, 지금 이들이 지키고 있는 방식이 이미 하나의 대답이 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마음에 남았던 건, “좋은 사람이 머무는 방식이 도시를 만든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강릉에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어 가는 정영희 대표와 김민섭 작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이 도시가 ‘당신의 강릉’에서 ‘우리의 강릉’이 되기까지 어떤 마음들이 그 길을 만들어왔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글: <local.kit in 강릉> 김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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