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땅은 바다를 면하고 있어 온갖 것이 흘러 들어가는 모양이다. 물길을 따라 먼저는 고기가 다녔고 그 뒤로 사람이 따랐으며 개중엔 바람처럼 섞여 든 이야기도 있었다. 김 서방은 그렇게 드나드는 손이었다.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거였다.
홀연하다, 기이하다, 이야기가 많았지만 정작 그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다. 보았다 주장하는 이들이 더러는 있었으나 영 엇갈린 의견들만 오갔으니 그야말로 전설이라 여기는 편이 현명할 테다. 장난도 놀이도 즐긴다던 김 서방, 혹은 풍요를 가져다주니 도깨비라던… 이건 어떤 소문에 관한 이야기다.
올봄, 도깨비의 흔적을 찾던 서다솜 작가가 도착해 온 곳이 강릉이었다. 2019년부터 진행해 온 프로젝트 <Practice Makes Practice>의 일환으로 신작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는 손으로 하는 일의 귀함을 안다. 일상을 유지하는 데엔 공력이 드는 것이다. 요리나 바느질처럼 품이 드는 모든 일들은 곧 그의 언어가 된다.
손이 오래도록 닿은 물건들엔 종종 어떤 기운이 스미곤 한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쓴다는 것은 단지 사용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물건과 시간을 함께 축적하는 일이자, 말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다. 그렇게 정성스레 다듬고 고쳐 쓰다 보면, 어느새 그 물건이 말을 거는 순간이 온다. 도깨비는 그렇게 생겨나는 존재라 했다. 작가가 도깨비를 따라가 보기로 결심한 건 어쩌면 이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일곱칸짜리 여관’이었다. 이번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25)에서 서다솜 작가가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결정되며 이 이름을 얻었다. 원래는 1950년대에 여관숙으로 지어진 공간이다. 퍽 손때가 묻은 한옥이다. 한밤중 창문에 누군가의 모습이 어룽어룽 비치는 광경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형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말이다.
일곱칸짜리 여관에서는 강릉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청포다리가 바로 올려다 보인다. 도깨비는 예부터 음기 서린 곳, 그러니까 다리 밑이나 바닷가, 강가와 같이 물과 가까운 곳을 기꺼워한다고 하지 않던가. 물가에 자리 잡은 터, 일곱 칸이나 되는 여백, 그리고 그 한 칸 한 칸에 스며든 시간이 도깨비를 불러 내기에 충분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가 머물러온 공간일지도 몰랐다.
작가는 이곳에서 ‘도깨비 모임’을 열었다. 초대된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도깨비였다. 기꺼이 응달이 되어주는 도깨비, 마음보다 몸이 가벼운 도깨비, 그리고 그들 곁을 구경하며 사람들을 초대하는 도깨비까지. 그렇게 일곱칸자리 여관에는 각기 다른 도깨비들이 모여들었다. 저녁이 되면 그들은 식탁에 모여 앉았다. 도깨비들이 모이면 으레 그러하듯 음식과 술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 식탁에는 특별한 예법도, 정해진 순서도 없다. 누가 먼저 말문을 열든, 어떤 사연을 꺼내든, 모두가 그 흐름에 스며들었다. 진지한 이야기도 있었고, 엉뚱한 소리도 오갔지만,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이 술잔 사이를 건넜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 웃음 대신 눈을 맞추는 이, 숟가락을 멈추고 한참을 침묵하는 이. 그 모든 몸짓이 하나의 언어처럼 식탁 위에 흘렀다.
도깨비는 실은, 이런 순간에야말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말보다는 몸으로, 논리보다는 정서로, 어떤 기운과 감촉으로 곁에 머무는 존재. 그리고 그 기운은 함께 만든 음식과 함께 나눈 술을 통해 가장 깊이 스며든다.
이 도깨비 모임, 첫 번째 워크숍은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이후에는 GIAF25의 관람객 여섯 명을 초대한 두 번째 모임이 열렸다. 이전에 초대한 도깨비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금 도깨비의 음식을 함께 먹는 식탁이 차려졌다. 이 워크숍은 단순한 예술 프로그램이라기보단, 감각을 회복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일상의 틈에 잠시 파고든 비일상, 그러나 어쩐지 따뜻하고 익숙했던 감정들.
도깨비는 여전히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도시에서는 좀처럼 마주칠 수 없었던 감각이었다. 강릉은 그런 도깨비가 숨기 좋은 마을이다. 동해가 문을 열면 산이 응답하고, 산그림자가 마을 집집마다 스민다. 여긴 아직 자연과 사람이 완전히 나뉘지 않은 곳, 경계가 흐린 시간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 틈은 도깨비가 숨을 수 있는 여백이자 이 지역의 ‘생활 감각’이다. 단지 눈으로 보이는 풍경뿐이 아니라, 손에 닿는 습관과도 같다. 장독대 옆 그늘진 자리, 계절마다 바뀌는 부엌의 냄새, 절기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던 공기의 밀도 같은 것들. 강릉은 우리가 도시의 표준화된 일상에서 잃어버린, 삶의 온도를 기억하는 마을이다. 그래서 도깨비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년 음력 5월, 도깨비는 마을로 돌아온다. 강릉 단오제. 대관령 산신을 모시고, 용을 부르고, 도깨비가 춤춘다. 무당의 북소리 아래, 사람들은 탈을 쓰고 제사를 지낸다. 바닷바람이 부는 논둑길을 따라 웃음과 울음이 엇갈린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풀리는 단 하루. 도깨비는 그 틈을 타고 사람들 곁에 스며든다.
도깨비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바보 같고, 장난스럽고, 허술하면서도 현명하다. 도깨비는 사람들 속에서 어깨를 치고, 춤을 추고, 때론 흉내를 낸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지킨다. 풍년이든, 마을이든, 사람의 속마음이든.
그래서 도깨비가 머무른 자리는 특별하다. 낡은 여관의 창틀, 들판을 바라보는 창문, 길모퉁이의 가면 하나. 도깨비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생활 감각, 느리게 흐르던 시간, 몸이 기억하는 풍경. 강릉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품고, 오늘도 도깨비가 다녀갈 자리를 마련해 둔다.
아, 남대천은 예로부터 연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어부를 돕는다는 이름 모를 그림자가 고기를 몰아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메밀묵에 막걸리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다면 일곱칸짜리 여관을 찾아가 보자. 남대천 강가의 한옥, 그래 바로 그 골목 끝 집은 도깨비가 사는 곳이라고 하니들 말이다.
글: <local.kit> 소예린 에디터
사진: <local.kit> 소예린, 오지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