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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21. 2023

책방, 제민천을 따라 모이다 (1)

공주 '데시그램북스'

과거에 '공주'는 '무령왕릉'이나 '공산성'과 같이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로만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공주는 기존의 고착화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젊은 사람들도 휴식을 위해 자주 찾아오는 지역이 되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공주 제민천 근처에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책방들이 모여있다. 로컬키트는 하루 종일 제민천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정오에는 ‘데시그램북스’, 오후 3시에는 ‘길담서원’,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는 ‘느리게 책방’을 방문하였고 각각의 책방에서 ‘공존의 가치’, ‘주도적인 삶의 의미’, ‘치유의 힘’을 발견하였다. 

여기 ‘제민천’이라는 하나의 마을에서, 책방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커다란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책방지기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1) 데시그램북스

“단순히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간다는 것이 의미 있는 거죠.”



1. 책방과 책방지기


안녕하세요, 책방지기님!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주에서 데시그램북스라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경화입니다. 영어 학원을 운영하다가 책이 좋아서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데시그램북스’는 무슨 뜻인가요?

데시그램은 1그램의 10분의 1을 뜻하는, 무게를 나타내는 아주 작은 단위예요. 사실 책 한 권은 300g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굉장한 무게가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오히려 가장 작은 단위로 책방의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데시그램북스만의 북 큐레이션 방법이 있나요?

90% 이상이 문학이에요. 유행을 타지 않는 것들을 좋아해서 고전 문학이 많은 편이고, 신작은 의외로 없어요. 스탠드에는 10% 정도의 에세이와 시집이 있고, 가운데에는 독서 모임을 했던 책들만을 모아놓기도 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이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인데, 절대 악과 절대 선이 만났을 때 누가 더 나쁜 것이고 좋은 것인지를 흥미롭게 표현한 환상문학이에요. 동화처럼 얇아서 앉은자리에서 소소하게 읽을 수 있어요.

들어오기 전, 건물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구경했어요! 데시그램북스의 한옥 건물을 자랑해 주세요.

감사해요. (웃음) 마당의 아담한 마루는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힐링되는 공간이에요. 특히, 비 오는 날 입구에 서서 처마 밑으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걸 가장 좋아해요.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나만 아는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이 나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2. 더불어 사는 삶


데시그램북스는 토종 곡물 브랜드인 곡물집 내부에서 같이 운영되고 있는 형태인 것 같아요. 곡물집과 책방을 함께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곡물은 몸의 양식이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그 밸런스를 맞추면서 조화로운 삶을 지향해 보자는 취지에서 같이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곡물집 대표가 제 친구인데요. 제가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아웃풋만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내면과 본질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책방을 계획하던 차에 서울에서 친구로부터  “곡물집을 하기에 괜찮은 장소가 있을까?”라고 연락이 왔어요. 저도 마침 책방을 찾고 있었는데, 복합적으로 맞아떨어진 거죠.


그러면 데시그램북스와 곡물집이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인 ‘푸드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안에 많은 음식들이 등장해요. 그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먹고 나누며 왜 이 음식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게 되었는지 작가님과 함께 이야기해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예를 들어, 김연수 작가님을 만났을 때는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 나오는 ‘카자흐스탄의 빵’을 같이 만들어 먹으면서 소설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고, 또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이곳에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유독 많은 책방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대학로 쪽보다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구도심 쪽인 이곳으로 많이 모이게 된 것 같아요. ‘가가책방’이 가장 먼저 생겼고 그다음에 ‘블루프린트북’, ‘데시그램북스’, ‘고마다락’ 등, 근처에 많은 책방이 생겼는데요. ‘가가책방’의 경우, 원래 책 쪽에서 일하시던 분이 공주로 여행을 오셨다가 너무 좋아서 이곳에 책방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해요. 가가책방을 주축으로, 책방을 하고 싶은 분들이 모여서 서로 상의하기도 하거든요. 인구수가 없는데 계속 책방이 생기는 것도 독특한 지역이죠. 매년 하나씩 생기거든요. 그런데 또 각 책방이 가진 고유한 특징과 분위기는 뚜렷해요. 찾아주시는 분들도 다들 이런 점을 신기해하세요. 


여러 책방이 모여 있다는 점이 데시그램북스에게 미친 영향이 있나요? 

공동체를 형성하는 느낌이 있죠. 다들 가깝게 지내고 있어서 자주 놀러 가고 서로 책도 사주고 해요. 또, 손님이 찾는 책이 우리 책방에 없으면 다른 책방에 연락해서 책을 찾아드리기도 하고요. 



3. 공주, 그리고 데시그램북스


데시그램북스는 왜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나요?

지금은 세종에 살고 있지만 제 고향이 공주이기도 하고, 공주의 분위기가 책방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책방을 하게 된다면 공주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사실 다른 지역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공주라는 지역과 책방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생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공주의 분위기에 책방이 어울려서 책방들이 생기는 거고, 또 책방이 생기면서 공주도 문화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기에 더 좋은 도시로 변하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과거의 소도시적이고 옛날 시골 같은 이미지만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기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요즘 공주를 많이 찾는 이유는, 책방이나 갤러리가 젊은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과 휴식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충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점점, 단순히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간다는 것이 의미 있는 거죠.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쉽게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사실 ‘책방’하면, 너무 조용할 것 같고, 꼭 책을 사야만 하는 곳이라는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데시그램북스만큼은 편안하게 들러서 자유롭게 머물고 갈 수 있는 책방이 되기를 바라요.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듦을 느낄 때에도 혼자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곳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데시그램북스의 책방지기로서 꼭 이루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양한 작가님들을 초청해서 북토크를 자주 열고 싶어요. 힘들어서 누구에게 말 한마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북토크에 오셔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응원의 말을 들으면 ‘내일은 또다시 열심히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작가님들을 모시는 것도 쉽지 않고 지원도 받아야 해서 그런 어려움 때문에 자주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행사를 좀 더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데시그램북스’에게 ‘공주’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설명해 주세요!

스테디셀러요. 몇십 년 뒤에도 몇 번이고 다시 펼쳐보고 싶은 스테디셀러처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면서 지속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도시라고 생각해요.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문화팀 김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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